sbs화면캡처. "연아야 이제 다 끝났다"라고 위로하며 안아준 스승 앞에서 울먹이는 김연아 선수.
오전 3시 30분에 타이머를 맞춰놓고 새우잠을 자다가 설핏 깨보니 벨이 울리기 몇 분전, 일단 TV부터 켰다. 문제의 소트니코바가 막 경기를 마치고 부스에서 점수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화면엔 자신의 연기가 흡족했던지 활짝 웃는 소트니코바의 얼굴이 클로스업으로 비쳐졌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런 말하면 미신같은 소리라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만면에 웃음꽃이 만개한 소트니코바의 볼에 '행운점'이 살짝 보였다. 그 점을 보는 순간 김연아의 '불운'이 기정사실처럼 느껴졌고 카페인 독한 커피를 마셨을 때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운명이다!라는 체념마저 들었다. 새벽 3시반에 일어난 탓에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느낀 게 '운명', 그것도 '김연아의 비운'을 직감했다니 좀 가소롭기도 하지만 어쨌든 결과는 나의 어설픈 예감이 맞은 것으로 나왔다. 화가 났다. 이건 누가봐도 불공정한 게임이다. 금메달을 눈 뜨고 도둑 맞았다.
피겨에 대해 전문적 식견은 없지만 그냥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김연아가 프로 수준의 예술적 연기를 했다면 소트니 코바는 그저 여고생 수준으로 보였다. 그만큼 김연아는 연기가 물흐르듯 유연했고 소트니 코바는 공식을 외워서 하는 것 같은 경직된 모습이어서 어설퍼 보였다. 게다가 실수까지 했으니 말해 뭐하겠는가. 그런데도 메달이 바뀌었다. 금메달을 받아야할 김연아가 은메달을 받은 거다.
이런 말도 안되는 결과는 새벽잠 설치며 김연아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 수많은 한국인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보다 해외 유수의 언론들이 더 화가 났다는 보도도 쏟아졌다. 왜 아니겠는가, 러시아는 큰 실수를 했다. '러시아의 황제' 푸틴은 더 큰 실수를 했다.
전세계에 대고 러시아는 후진국이라는 실상을 만천하에 고백한 것이다. 세상이 모를 줄 알고 그런 '점수 퍼주기'로 자국 선수에게 억지 금메달을 안겼다는 '역사적 사실'은 그야말로 역사의 오점으로 남는다는 걸 푸틴은 모르고 있었나보다. 아니 알고도 금메달에 눈멀어 그런 '만행'을 지시했는지도 모르겠다.
54조원이라는 러시아 경제규모론 꽤나 부담이 됐을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러시아 전국체전'수준이었고 김연아라는 피겨계 여왕의 전설에 먹칠을 함으로써 오히려 자신들의 나라가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걸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공개한 것이다.
미셸 콴이나 카트리나 비트 같은 역대 피겨 여왕들도 한결같은 목소리로 '언빌리버블'을 외쳤다. 미국AP 통신을 비롯해 NBC, LA타임스, 등 미국 유수의 언론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에서도 김연아가 금메달을 찬탈당했다는 걸 대서특필하고 있는 중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러시아라는 나라의 수준이 그 모양인 걸...
러시아를 제외한 온 세계가 아쉬워하는 '김연아의 은메달'은 '인생은 바로 저런 것이다'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력만으로 통하는 세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어쩌면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한 자체도 이런 '억울한 인생살이'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경기에선 이기고 금메달은 빼앗긴' 김연아의 마지막 올림픽은 어쩌면 김연아에게 '큰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생공부'라면 너무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김연아는 이번 '금메달 도난사건'을 당하면서 더 큰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큰 공부를 했다고 본다. 선수생활의 대미를 올림픽 2연패 금메달로 장식했다면야 그 이상의 금상첨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김연아가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더라면 그 업적자체가 김연아의 인생에 꼭 좋은 영향만 미쳤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지난 벤쿠버 올림픽 이후 김연아는 명실상부한 '피겨 여왕'으로 이미 세계적인 명사로서 품격있는 삶을 누려왔다. 물론 고된 훈련이 그녀의 심신을 지치게 했겠지만 '김연아 브랜드'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고귀한 이름이었다. 물론 국내에서도 온갖 매스컴이 김연아를 '대접'했다. 20대 초반 어린 여성으로서 김연아만큼 '대성'한 케이스는 없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김연아는 이미 '모든 걸'이뤄놓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번 '김연아 은메달'은 김연아 본인에게 큰 충격과 상실감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길게 봤을 때 이번 시련은 구만리 같이 창창한 김연아의 인생에 오히려 보약효과를 줄 것이라는 말로 상심해 있을 김연아를 위로해주고 싶다. 김연아는 이미 부동의 '세계 정상' 선수이기에 그 누구도 메달의 색깔로 김연아를 폄하하지 않을 것이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격언이 이번 김연아의 불운을 더 큰 행운으로 바꿔줄 것으로 확신한다.
*김연아 은메달에 대한 해외언론 반응을 소개합니다.*
한국보다 더 화난 해외언론 "김연아 敗? 완전한 스캔들" 비판
해외가 더 뿔이 났다. 김연아의 금메달 실패에 한국보다 해외 언론과 레전드, 피겨 관계자들이 날선 비판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물론 프랑스 독일, 또 피겨 레전드와 관계자들도 김연아의 2위 소식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미국 NBC 방송은 21일(한국시간) 2014 소치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프리 부문이 끝나자 마자 공식 트위터를 통해 "Yuna Kim wins Siver. 17 year old Sotnikova wins Gold. and Kostner wins bronze. Do you agree with the results?"라는 글을 게재했다. 해외 방송국마저 경기가 끝나자마자 경기 결과에 의문을 품으며 "Do you agree with the results?"라는, 올림픽이라는 세계 최고 축제 가운데서도 '꽃'이라 불리는 경기에 이와 같은 '더 이상 강할 수 없는' 의문 부호를 남겼다.
LA타임스 빌 플라시케 기자는 자신의 SNS에 "퀸유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고 소트니코바보다 나았다. 만약 김연아가 5분 후 올림픽 챔피언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면 이건 엄청난 스캔들이다"고 예상했다.
이윽고 점수가 발표되자 빌 플라시케 기자는 "김연아가 졌다니 믿을 수 없다. 이것은 완전한 스캔들이다. 러시아의 소트니코바가 이기고 팬들은 미쳐버리고 김연아는 사라지고. 완전히 잘못됐다"고 흥분했다.
이어 빌 플라시케 기자는 "러시아는 어젯밤 하키에서 진 뒤 챔피언이 필요했고 한국의 것을 뺏음으로서 (금메달을) 하나 얻었다. 어떻게완벽하게 연기하고 질 수가 있나?"고 비판 했다.
미국 ESPN 역시 마찬가지다. ESPN은 인터넷 판을 통해 최초 "Home cooking"이라는 제목으로 최초 보도 후 "Home Ice Advantage"로 제목을 바꿨다가 현재 "A nation's Heroine'으로 변경했다. 제목 자체 강도는 낮아졌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오히려 조롱의 의미가 더해졌다고 풀이하고 있다.
미국 뿐 아니다. 프랑스 스포츠 유력지 레퀴프지는 인터넷판을 통해 21일(한국시간) 열린 2014 소치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프리프로그램 경기가 끝난 후 Et un scandale, un"라는 제호의 기사를 게재했다. "스캔들 또!"라는 제목의 이 글은 "심판들이 러시아에게 첫 금메달을 줬지만 (러시아의 소트니코바는) 자격이 없다"라고 보도했다.
독일 방송 ARD는 인터넷 판을 통해 21일(한국시간) 열린 2014 소치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프리프로그램 경기가 끝난 후 러시아의 소트니코바가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전하며 소트니코바의 경기 점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심판 판정"이라고 분석했다.
ARD는 또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소냐헤니와 비트를 잇는 올림픽 경기를 김연아를 펼쳤다며 이후 김연아 점수에 대해 기사로 "이해하기 힘든 평가"라고 글을 남겼다.
또 김연아의 마지막 더블악셀 점프 후 김연아의 올림픽 승리가 확실했지만 219.11점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언론 외 피겨 레전드와 관계자들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1948,1952년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딕 버튼(미국)은 자신의 SNS에 "유나 네가 진정한 챔피언이다. 내가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네가 더 나은 스케이터가 될 수 있길 믿었기 때문이다. 넌 오늘 존재가 다른 스케이터였다. 축하한다"는 글을 남겼다.
영국 가디언지 수석 스포츠 특파원 오웬 깁슨은 이날 자신의 SNS에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채점 결과엔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고 미국 NBC 스포츠 리서처 알렉스 골드버거는 "소트니코바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김연아는 (금메달을) 강탈당했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뉴스엔 김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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