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박론과 북한 무인기 추락 소동
올 초 대통령 취임 후 최초로 열린 연두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 넘친 목소리로 ‘통일은 한 마디로 대박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상하게 좀 불길한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렇게 통일에 대해 명쾌하고 후련한 정의를 내린 이후 신문 방송 등 매스컴에선 ‘통일 대박’을 뒷받침 해주는 ‘대한민국의 환상적인 미래’ 에 대해 앞 다퉈 화려한 보도를 쏟아냈다.
통일대박이 보여주는 비전은 ‘천국’이 따로 없어 보였다. 한 신문사에선 세계적 석학과 최고의 투자전문가 등을 초청해 ‘통일 세미나’까지 열었고 그 자리에선 통일후 대한민국의 화창함에 대한 기분 좋은 덕담들만 쏟아져 나왔다. 당장 먹기엔 곶감이 최고라고 우선 귀에 들려오는 달콤한 통일 후 세상에 대한 예측들은 정초 대한민국의 사회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던 것 같다. 금세 통일이 될 것처럼.
그런데도 나의 ‘기우’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통일을 어떻게 이뤄내겠는가’에 대해선 그 누구도 이렇다 할 ‘정답’을 내놓지 않았기에 나의 걱정은 점점 커졌다. 우리 대한민국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이뤄낸다면야 무슨 걱정이겠는가 하는 소박한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통일 대박’ 전제는 당연히 우리가 북한을 평화롭게 통일시킨다는 게 기본일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누구인가. 우리 대통령을 ‘괴벽한 노처녀’라며 악담을 하거나 ‘청와대 타격’운운하는 몰상식한 호전적 세력 아닌가 말이다. 이제 겨우 서른 살밖에 안된 청년을 조선시대 왕처럼 떠받들며 적화통일을 부르짖고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통일을 이뤄낼 수 있을 지는 정말 궁금한 사안이다.
물론 박대통령은 최고의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기에 ‘통일은 대박’이라고 자신있게 말했겠지만 대통령 역시 ‘어떻게’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 이후 석 달 정도가 흐른 요 며칠 새 대한민국은 파주, 삼척 등지에 잇따라 떨어져 있는 ‘수상한 무인기’를 민간인들이 발견해 군 당국에 신고하면서 ‘냉전의 추억’에 다시 빠져 들기 시작한 것 같다.
매스컴에선 또 난리가 났다. ‘통일 대박’의 환상을 열나게 쏟아냈던 매스컴에선 북한 발 무인기들이 핵이나 세균들이라도 싣고 왔다면 어찌됐을까, 북한에서 청와대까지 무인기로 불과 2분40초! 등등 온갖 불길한 추측 보도를 토해내고 있다. 모처럼 대통령의 정초 덕담 한마디로 평화로운 통일대박을 꿈꾸고 있던 평범한 국민들은 ‘그놈의 무인기’ 탓에 ‘자칫하면 언제 죽을 지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의 시원하고 자신에 넘친 ‘통일 대박론’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선 대통령도 군 당국의 ‘무방비’에 “방공망 문제 있다”며 싸늘한 시선으로 질책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곧 국방부 장관이 경질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그래선지 TV 뉴스에서 늘 ‘씩씩한 장군’처럼 보이던 육군 참모총장출신 국방장관의 얼굴빛엔 우수의 기가 서려있는 듯하다.
이런 사회분위기 탓인지 오늘 아침 신문 1면엔 ‘북의 기습위협..무인기만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사람을 겁주고 있다. ‘통일 대박세미나’를 신나게 보도했던 바로 그 신문이다. 이런 보도를 보면서 ‘북한 무인기’가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연초부터 통일, 통일하면서 통일 대박환상을 부추기던 신문에서 보도한 북한의 핵, 미사일, 생화학무기, 장사정포, 특수부대, 사이버전, 무인기 등등 우리를 겁주는 북한무기들은 ‘통일 대박’을 구름 속 이야기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연초 대통령의 통일 대박은 전적으로 대한민국이 ‘주관’하는 통일이었지 ‘상대방’도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그렇다면 자칫 ‘통일 쪽박’의 대재앙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이 좋다는 건 북쪽도 우리만큼 절실히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말이다.
지난 달 독일을 방문한 박대통령이 ‘드레스덴 제안’을 내놓은 이후 북한 방송에선 듣기에도 괴로운 ‘폭언’들을 쏟아내면서 우리 대통령의 ‘통일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쪽 사람들이 ‘물자 지원’을 약속하는 우리를 고깝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못 사는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린 측면도 없지 않았다는 말이다.
한창 ‘폼재기’ 좋아할 젊은 김정은에게 북한의 신생아들을 위한 분유를 지원하겠다는 우리 대통령의 제안은 썩 유쾌한 소리로 들리진 않았을 수도 있겠다. 그래선지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 이후 북한은 서해안에 미사일을 쐈고, 4차 핵실험을 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런 와중에 오비이락인지는 몰라도 ‘수상한 무인기’들이 발견된 것이다.
박대통령은 통일 롤 모델로 ‘서독과 동독의 통일’을 꼽고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선지 메르켈 독일 총리는 박대통령에게 나름 ‘통일 훈수’를 하기도 했다. ‘북한주민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줘야 한다는 메르켈의 ‘충고’가 기억에 남는다. 보도에 따르면 서독은 통일 이전에 정부차원에선 공식적으론 ‘통일 독일’을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한다. 상대를 ‘자극’하는 용어는 자제했다는 얘기다. 과연 대한민국의 '통일 전문가'들이나 정부요인들도 서독 사람들처럼 '속깊은'배려를 해왔는지 궁금하다.
통일 전문가들이 차고 넘치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까지 ‘통일 대박’을 들고 나와 모처럼 ‘붕’떠있었던 국민의 마음은 요 며칠 새 벌어진 ‘무인기 추락 소동’을 보면서 금세 ‘전쟁 공포’에 휩싸였을 수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통일 대박을 이뤄내려면 ‘북한 무인기’들이 대한민국의 영공을 휘젓고 다니는 불상사부터 막아놔야 할 것 같다. ‘통일 대박’은 환상이 아닌 현실에 발을 붙이고 논해야 할 무거운 주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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