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뉴스사진)
박근혜 대통령 사과와 쫓겨난 대통령 조화(弔花)
어제 안산에 새로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정부 합동 분향소를 찾은 대통령을 보는 순간 ‘상복(喪服)이 어울리는 로라’라는 노래제목이 떠올랐다. 평소와 달리 플레어 롱스커트 차림의 검은 상복을 입은 대통령은 그동안 대통령이 보여줬던 그 어떤 패션보다 대통령에게 어울렸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상복이 어울리는 대통령’이었다. 공들인 헤어스타일에 우아함마저 느껴지는 ‘상복 패션’의 여성 대통령을 보면서 박대통령은 악다구니 같은 ‘거친 세파’를 평정해 나가는 억척스러운 역할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다는 절망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니 해방이후 최악의 참사로 꼽힐 이번 세월호 참사를 대통령 혼자 수습해나간다는 건 역부족이었다는 게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곱게만 자라온' 여성 대통령이 헤쳐나가기엔 세월호 쓰나미는 너무 거셌다고나 할까.
사고 이튿날인가 대통령이 갈색 누비점퍼를 입고 실종자 가족들이 꽉 찬 진도 실내체육관에 들어가 그들과 ‘소통’하려고 애쓰던 모습은 보기에 좀 안쓰러웠지만 그래도 그 가족들이나 국민에겐 좋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래선지 그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71%로 치솟았다는 믿거나 말거나 여론조사까지 나왔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고운 여성 대통령’의 한계랄까. 우리네 일반인들의 바람은 대통령이 바로 그 자리에서 임시 야전사령부라도 설치하고 소매 걷어붙이고 불호령을 치면서 일일이 진두지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후 13일간 침묵만 지켰다. 만약 만약 대통령이 자갈치시장 아지매들처럼 거칠게 차려입고 사고현장에서 몸소 나섰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거다.
그랬더라면 아마 지금 이렇게 ‘구조자 0명’이라는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수치스런 결과를 빚지는 않았을 거라는 하마마나한 생각을 해본다. 그만큼 안타깝게 숨져간 어린 영혼들이 너무도 가여워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이다. 대통령이 분향소를 떠나기도 전에 유가족들은 큰소리로 절규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유가족들은 대통령 앞에 무릎까지 꿇고 억울한 사연을 말하며 통곡했다. 아직 젊어 보이는 한 엄마는 “우리 자식이지만 대통령 자식이기도 합니다. 9시 48분까지 우리애랑 통화했단 말이에요”라며 울부짖었다. 말 그대로 피맺힌 절규였다. 9시 46분에 악마같은 선장과 선원들이 구조됐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겟는가.
분노한 유가족들은 아직 대통령이 분향소를 떠나지 않았는데도 대통령이 보내온 ‘대통령 박근혜’라고 쓰여진 조화(弔花)를 분향소 밖으로 내보내라고 소리쳐 결국 현 대통령과 전 대통령 국회의장 등이 보내온 조화들은 ‘쫓겨나는 신세’로 분향소 밖으로 치워졌다고 한다. 현직 대통령의 조화가 그런 대우를 받았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엊그제 대통령의 지지율이 39.9%였다는 보도가 떠올랐다. '쫓겨난 대통령 조화'는 어쩌면 '조변석개'하는 민심이 이제 그토록 지지했던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는 신호탄인지도 모르겠다.
분향을 마친 대통령은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국무회의를 열고 그 자리에서 이른바 ‘대국민 사과’를 했고, ‘국가 개조론’에 가까운 ‘원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희생자 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 사과는 사과도 아니다"며 강력한 항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희생자 유가족 대책회의는 "5000만 국민이 있는데 박 대통령 국민은 국무위원뿐인가. 비공개 사과는 사과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그 심경을 이해할 것도 같다.
유가족 대책회의는 29일 오후 6시 30분쯤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분향소에서도 그냥 광고 찍으러 온 것 같았다. 진정한 대통령 모습이 아니다. 실천과 실행도 없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며 울분을 토해냈다는 것이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멋진 상복’을 입고 단아한 모습으로 조문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왠지 거리감을 느꼈을 법하다. 오죽하면 ‘광고 찍으러 온 것 같다’는 조롱 섞인 말들을 했겠는가. 자식을 잃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극한의 슬픔에 빠진 부모의 심정으론 모든 게 헛되고 분하고 가증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진심으로 아파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단지 대통령의 평소 라이프스타일이 워낙 조신하고 격식과 예절에 맞는 고전적 스타일을 추구해오다 보니 깊은 슬픔에 빠진 유족들 눈엔 거리감 있게 보였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희생자 유족들의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을 위로할 사람은 이 지상엔 아무도 없다고 본다. 자식을 잃었는데 도대체 무슨 위로의 말이 소용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기에 대통령의 조문에 대해 그런 극단적인 말을 했다는 건 일견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 박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노심초사하며 깊은 시름에 빠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선 ‘이런 대통령은 필요 없다’ ‘대통령은 하야하라’ 등등 대통령에게 ‘정면 도전’하는 신랄한 비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한 여성 감독이 단숨에 써내려간 듯한 ‘대통령 하야를 원한다’는 장문의 글이 하룻밤 새
50만 명 이상이 읽고 공감할 정도로 지금 민심은 극단적으로 대통령과 정부를 불신하고 있다. 대통령이 그 글을 읽었더라면 속이 많이 상했을 것 같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은 앉아서 하는 ‘국무회의 사과’형식을 취하면서 상처받은 수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한 사과가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네티즌 사이에선 노무현 이명박 등 전 대통령들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90각도로 절하는 사진들을 올리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가 충분치 않았다는 여론이 64%나 된다는 조사도 나왔다.
그만큼 온 국민이 세월호 참사에 가슴아파하며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어제 대통령은 사죄라는 단어를 두번이나 쓰는 등 나름 '사과'표현에 공을 들이긴 했다 하지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참모들이라면 대통령에게 '정식 사과'회견을 권했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민심이 얼마나 흉흉한 걸 그들은 여전히 모르는 듯하다.
그러니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세월호 유족들의 반박 성명에 유감을 표한다'는 이상한 헛소리를 했을 것이라고 본다. 세상 무엇보다 귀한 자식을 잃고 잔뜩 화가 난 부모에게 '유감'이라니...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된지 얼마 안 된 이 남자는 얼핏 보기에도 지나칠 정도로 '과잉 충성'의 태도가 어느새 몸에 밴 듯해 보인다. 경직된 충성심의 뒷끝엔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청와대 대변인은 공부 좀 해둬야겠다.
아직 수습되지 못한 희생자가 100명 가까이 될 정도로 이번 참사는 ‘진행중’이다. 그렇기에 대통령이나 정부에서 내놓은 ‘어떤 대책’도 국민의 공감을 얻어내기엔 어려운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총리실
직속의 ‘국가 안전처’를 신설하겠다는 발표에 박수 보내는 국민은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기관이 없어서 이번처럼 최악의 사태가 일어난 건 아닌지 않는가.
행정안전부를 굳이 엄청난 비용을 써가며 '안전'행정부로 고쳤지만 이번 참사에서 안전행정부 장,차관이 우왕좌왕했던 건 뭘 말하겠는가. 실속도 없이 이름만 거창한 '안전 부서'는 백개가 세워져도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국민은 그만큼 ‘박근혜 정부’를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민심은 그만큼 야멸차게 등을 돌리고 있다.
어쩌면 이번 참사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신뢰'를 잃은 대통령을 누가 지지하겠는가. 게다가 대통령 스스로가 워낙 견고한 ‘자기 안의 성(城)’에 갇혀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그걸 깨고 천지개벽할 수준의 '시원한 정치'를 이뤄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저 우리 대한민국에 신의 가호가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분향소 밖으로 쫓겨난 대통령 조화.(노컷뉴스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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