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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법요식’ 건국 이래 처음 석탄일 기념식 참석한 박대통령의 사과
평소 ‘사과’를 별로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인 박근혜 대통령이 또 사과했다. 어제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참석한 자리에서였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대통령으로서 어린 학생들과 가족을 갑자기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께 무엇이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기념사를 읽어 내려갔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일 동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사실상 네 번째 사과를 한 셈이라고 한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전시도 아닌 평화시절에 어린 목숨 250명을 포함 302명이라는 엄청난 희생자가 난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해 대통령으로선 어쩌면 당연한 처신인지도 모르겠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소위 ‘간접사과’를 한 것이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제대로된 사과’가 아니라는 게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었다. 인터넷의 ‘반박(反朴)’사이트에선 ‘이런 대통령은 필요없다’는 극단의 칼럼이 최고의 인기를 끌 정도로 ‘성난 민심’은 대통령을 향해 질타를 아끼지 않았다.
평소 인터넷 서핑을 즐겨 한다는 ‘신세대 대통령’으로서 그 같은 네티즌 민심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에선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맹독한 비난’이 홍수를 이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분노한 네티즌들의 폭발은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급기야 김두식이라는 국립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대통령 당신이 바로 적폐(積幣)의 결과물이에요’라는 극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적폐’라는 어려운 단어는 박대통령이 먼저 사용했지만 그 말이 부메랑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줄은 대통령 자신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승려처럼 늘 머리를 밀고 다니는 노장 철학자 김용옥은 대통령을 '그대'라고 호칭하며 하야하라는 직격탄을 날렸다. 이 정도로 들끓은 민심 앞에 대통령은 ‘홀로 잠못 이루는 밤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다지도 사과하기를 아껴왔던 여성대통령은 이젠 틈만 나면 수시로 사과의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종교지도자 초청 간담회를 열었을 때도 "(책임자 처벌과 재난대응시스템 구축 등) 대안(代案)을 갖고 다시 대국민 사과도 드리고 말씀을 드리겠다"고 했다. 인자한 ‘할아버지 종교지도자들’은 그 자리에서 어떤 반론도 제시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이며 심상한 여성대통령을 위로해 줬다.
하지만 사과를 그렇게 질질 끌며 대안마련한 뒤 하겠다는 생각은 그다지 옳은 것 같지는 않다는 발언쯤은 나왔어야 했다. 원로 종교지도자들이라면 그 정도의 쓴소리는 마다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결과 대통령은 이제 수시로 사과하는 대통령이 돼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사과 먼저 확실하게하고 대안은 그 다음에 내놓는게 상식이라고 말해주는 원로가 대통령 곁엔 여전히 부재하다는 게 좀 씁쓸하다.
연휴 첫날인 3일 문재인의원이 진도 체육관과 팽목항을 찾아가 통곡하는 젊은 엄마들을 꼬옥 껴안아 주며 위로하는 장면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마자 깐죽거리기 잘하는 진중권은 “우리에겐 저런 대통령이 필요하다, 대통령이라면 저래야 한다”는 둥 ‘이런 대통령은 필요 없다’는 글을 쓴 여성감독의 명문장을 패러디한 듯한 글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화제를 모았다.
아닌게아니라 문재인의 진도 팽목항 방문은 여성대통령이 방문했던 때보다 ‘그림’이 보기 좋았던 건 사실이다. 뭐랄까, 남녀차별사상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같은 큰 재난 앞에선 그래도 ‘특전사 출신’ 남자가 듬직해 보였단 말이다. 그래선지 ‘문재인 진도’가 사흘 내내 검색어 1위에 떠 있을 정도로 인터넷 상에서 문재인의 진도 방문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일까, 여성 대통령은 바로 그 다음날 전격적으로 사고 현장을 방문했고 스킨십이 매우 약하다는 평소 지적을 의식해선지 여성대통령은 전에 없이 실종자 가족들의 손을 10초 이상 부여잡고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고 발생부터 수습까지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는 사과성 발언도 함께 했다. 평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근엄한 엘리자베스 여왕’풍의 여성대통령은 이렇게 차츰 마음의 빗장을 열기 시작한 것 같다. 사과 횟수와 함께 사과 강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사실 세월호 참사 직전 세상을 그리도 시끄럽게 했던 ‘국정원 댓글 ’사건에 관련해서도 대통령의 사과는 있긴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대통령의 지지율은 60% 중반을 넘나드는 ‘호기로운 시절’ 탓이었는지 대통령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결여’됐다는 안티 세력들의 비판조차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대통령의 ‘뜨거운 인기’는 식을 줄 몰랐었다. 화려한 패션외교의 잇단 성공과 통일 대박의 화려한 수사가 국민의 마음을 들뜨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의 지지율은 48%~39%, 심지어 35%라는 믿거나 말거나 야박한 수치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그래선지 대통령의 ‘초조한 사과 발언’은 자고나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공식 정부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지난달 29일 박 대통령은 그곳을 찾아 유가족을 만난 뒤 “적폐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너무도 한스럽다"며 '국가안전처 신설'과 '국가 개조'를 언급했다. 하지만 그런 국가기관이 없어서 그런 참사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기에 대통령의 그런 구상은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어쨌거나 대통령은 이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 전반의 최종책임자로서 이런 사고가 났는데 죄송한 마음이야 처음부터 당연히 있지 않았겠느냐, 대통령께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이 국민의 마음과 국가 분위기를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횟수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말도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왜 대통령은 ‘첫 사과’를 정식으로 제대로 엄중하게 하지 않았느냐하는 의문이 든다는 말이다. 옛말에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속담처럼 국무위원들 앞에서 한 대통령의 첫 사과 자체가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국무위원들이 참사에 대한 판단력과 대처능력이 미흡했다는 걸 반증한다는 지적들이 나왔다.
21세기 들어 가장 끔찍하고 슬픈 사건이 터졌는데도 대통령 이하 정부인사들의 수습능력이 너무도 국민기대에 못 미쳤다는 말이다.
어쨌거나 ‘사과 잘 안하던’ 여성 대통령이 거듭 사과를 하며 사태의 중대성을 인식했다는 건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선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타이밍을 놓친 사과들은 사후약방문처럼 약효가 약하다는 걸 대통령과 정부인사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 죽은 다음에 하는 사과야 어쩌면 아무 필요도 없다는 냉정한 비판들이 국민의식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건 향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 평화로운 시절에 302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한 안타까운 참사 앞에서 지난 20여일 간 대통령과 그 수하들이 보여준 대응책이 미흡했다는 아쉬운 느낌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바로 이어진다는 걸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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