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후보의 장녀 캔디 고.[페이스북 캡처]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선거를 지켜봤지만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처럼 '황당한 구경'은 난생처음이다. 비단 나 뿐이 아닐 것이다. 저 머나먼 미국땅에 살고 있는 친딸이 친아버지를 교육감 후보자격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리고, 그 아버지는 공작정치 운운하며 사퇴하지 않겠다며 기자회견까지 연 사례는 아마 세계사에도 유례가 없을 듯싶다.
'고승덕 사태'의 장본인인 고 후보의 장녀 ‘캔디 고’(Candy Koh)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어머니가 나와 동생을 미국으로 데려온 뒤 그는 우리와 연락을 끊었다”며 “전화·인터넷이 있는 데도 나와 동생의 안부를 물은 적이 없고, 금전적인 부분을 포함해 교육을 지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혈육을 가르칠 의지가 없으면서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을 이끌 수 있느냐”고도 했다.
또 언론과의 e메일 인터뷰에선 “고 후보가 ‘선거에서 아들은 건드리지 말아 달라’며 울었다는 보도를 보고 공개 글을 쓸 결심을 했다”며 “그 눈물은 아들을 위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수신제가(修身齊家)도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치국평천하( 治國平天下)를 하겠느냐는게 딸의 주장인 것 같다.
하지만 '아빠 노릇'을 잘 못했다해서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물론 딸의 입장에서야 서운했겠지만 그렇다해서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동양적 사고방식에서 본다면 캔디고의 그런 행동은 그리 칭찬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 매스컴을 뒤흔들고 있는 '고승덕 친딸의 아버지 비판'은 좀 미안한 얘기지만 제3자의 입장에선 그저 시시한 TV드라마보다는 훨씬 재밌는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아버지의 그딸'이라는 냉소적 시각이 설득력이 있다는 말이다. 이 자리에서 누구를 비판하고 싶진 않다.
상상 밖의 이번 사태에 대해 어쩌면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이런 구경은 처음이네'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교육열이 대단한 엄마들 사이에선 '딸을 버린 냉정한 아버지'는 찍고 싶지 않다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교육감 선거에 뜻하지 않게 터져나온 폭로전은 해외토픽감인 듯하다.
부모의 이혼으로 이른바 '결손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성장한 뒤 부모를 '원망'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봐왔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 '비뚤어진 아이어른'들의 가슴아픈 이야기들은 드라마로도 많이 다뤄져 왔다. 하지만 이번 고승덕 친딸의 경우는 국무총리까지 지낸 박태준 포스코 전회장이 외할아버지이자 정신적 물질적 멘토였다는 점에서 좀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이혼후 물질적으로 전혀 지원하지 않았다는 친딸의 비판은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별로 설득력이 없는 듯하다. 아버지를 공개비판한 그 딸은 국무총리출신의 '대단한 외할아버지'를 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로도 평민들과는 동떨어진 환경에서 살아왔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당돌하게도' 아버지는 자격이 없다는 폭로성 편지를 인터넷에 올리는 '돌출행동'을 일으켰을 지도 모르겠다.
웬만한 평민들이라면 선거에 출마한 아버지의 '비행'을 선거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만천하에 폭로하는 '해프닝'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미국식 교육'을 받았기에 가능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 친딸만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오죽했으면 '친부'를 고발했겠는가 말이다.
오늘 아침 한 종편TV에 패널로 출연한 여기자는 자신이 고승덕 전처와 10여년간 친분을 맺어왔던 사실을 밝히면서 "고승덕씨는 교활한 인간이다"는 극언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글쎄다. 부부간의 '속내사정'이야 부부만이 아는 것이니까 아무리 친분을 맺어왔다해도 그들 부부가 왜 이혼했는지에 대해선 한쪽 이야기만 들어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쯤 되면 보통사람들은 후보직을 사퇴했을 텐데 고승덕은 어제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경쟁상대인 문용린후보가 자신의 전 처남과 꾸민 '공작정치'의 정황이 의심된다는 희한한 성명을 발표했다. '보통아빠'들이라면 이런식의 정치적 대응은 하지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딸에게 일말의 애정이 있는 아빠라면 딸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 같은 그런 '정치적 발언'은 하지 못하는 법이다. 아무리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더라도 딸이 공작정치의 공모자인양 말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언사다. 어쩌면 그의 이런 처세가 친딸로부터 배척당하는 한 원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고승덕은 “문 후보와 박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과 총리로 재임하는 등 끈끈한 관계”라며 “딸의 글이 박 전 회장의 아들과 문 후보의 야합에 기인한 게 아닌지 정황을 의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문 후보는 박성빈씨와 포스코청암재단 이사로도 함께 일했다”며 “문 후보가 공작정치에도 능하다는 걸 안 이상 문 후보에게 서울 교육을 맡길 수 없다”는 주장도 했다.
고승덕의 이런 기자회견에 대해 그 친딸은 한 언론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나는 나만의 판단을 내릴 만한 의견과 능력을 가진 27세의 성인”이라며 “아버지에게 화를 품고 싶은 생각이 없고 다만 그가 자녀 교육에 참여한 바가 없다는 점을 유권자에게 알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딸도 '27세 성인'이라지만 아버지의 선거를 방해한 세상물정 모르는 풋내기라는 세상의 비판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현 교육감출신으로 고승덕에게 밀리고 있던 문용린은 '호재'라도 만난 듯 발빠른 성명을 내놓고 있다.심지어 고승덕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검찰에 고소할 계획이라는 발표도 했다. 문 용린은 또 고승덕을 보면서 “세월호 선장이 팬티 바람으로 도망가는 장면이 생각났다”며 “딸이 아버지를 흠집 내고 아버지는 딸을 돌보지 않는 것은 패륜 아니냐”고 싸압아 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면서 박 전 회장의 장남 박성빈(희경씨 외삼촌)씨가 “조카의 뜻과 가족이 생각하는 게 다르지 않다. 잘 싸워달라”고 전화를 걸어왔다는 말까지 소개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문 후보로선 상대방에게 터진 '악재'가 자신에겐 승기를 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세월호 선장 운운한다는 건 문용린의 '품격'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해선 안될 말이라고 본다.
이렇게 이전투구의 '개같은 상황' 이 벌어진 건 어쨌거나 고승덕의 잘못이 적잖은 것 같다. 사시 외시 행시를 대학시절 모두 붙은 '고시 3관왕'출신으로 '공부의 신'으로까지 불렸던 그로선 수신제가를 제대로 하지 못해온 '가장으로서의 처세'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듯싶다.
하지만 그의 그런 가족사가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해선 곤란하다고 본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는 말도 있듯이 개인사와 공적 업무는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감후보로서 지지율이 제일 높았다던 고승덕은 친딸의 폭로편지로 이번 선거에서 타격을 받을 듯싶다.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틀 후 선거결과가 퍽이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