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

일본 영화 해피 플라이트-회항 소동일으킨 항공기와 일본 블로거들

스카이뷰2 2014. 8. 11. 10:33

 

 

      

                 해피 플라이트, 기체결함 발견한 블로그의 힘


 

비행기 회항소동을 소재로 한 일본 영화 ‘해피 플라이트’는 일본인의 기질, 일본적인 정서를 ‘재간둥이 감독’이 깔끔하게 만들어 내놓은 담백한 일본 요리 같은 영화다.  40대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항공기회사 직원 출신처럼 ‘항공기 운행’에 관한 모든 것을 2년 취재 끝에 훤히 꿰뚫고 만들어낸 영화답게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이 나온다.

 

비단 비행기 이야기뿐 아니라 비행기 마니아들의 블로그 이야기도 흥미롭다. 젊은 감독답게 이런 시대조류를 재빨리 캐치해 재치있게 보여주고 있다. 공항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는 비행기 마니아들이 운영하는 ‘청공사진관(靑空寫眞館)’이라는 이색적인 블로그는 항공기 엔진 결함의 원인을 밝혀내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비행기 관찰이 취미인 은퇴노인들은 ‘비행중년’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며 이륙하는 항공기의 모습을 일일이 촬영하는 열성을 보여주고 있다.  

 

비행기에 열광하는 청년들이나 노인들이 블로그를 통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모습은 블로거들에게 동지애를 선사하는 것 같다. 어쩌면 감독 자신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고비마다 관객을 자연스럽게 웃길 수 있다는 것은 이 감독의 큰 ‘재능’같다. 울리는 건 쉬워도 웃기는 건 어려운 법인데 야구치 감독은 ‘워터 보이스’나 ‘스윙 걸스’같은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유쾌한 웃음을 끌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디테일한 일 이야기’에 솜씨를 발휘하는 것 역시 감독이 보통 재주꾼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평범한 스토리를 평범한 일본인들의 일에 대한 자긍심으로 잘 버무려  100분 동안 보여준 감독의 자부심 역시 대단해 보인다. 그 자긍심이란 바로 ‘일(事, しごと)’에 대한 그들의 거의 성스러운 자세와 생각에서 비롯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고토! 시고토!”를 외치며 맹수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달려드는 일본인들의 ‘시고토 제일주의’ 정서가 오늘날 경제대국 일본을 만든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일’에 목숨 걸며 사는 걸 당연시하는 것 같다. 

 

요즘이야 일본에서도 그런 ‘일 지상주의’는 많이 퇴락했다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내재해 있는 ‘일 중독 DNA’야말로 일본적인 힘을 느끼게 하는 에너지 중에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일이 ‘삶의 전부’인 듯한 그들의 결연한 자세는 비단 산업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학문이나 예술에까지 확장돼 그들의 저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중소기업의 연구원에 불과한 젊은 남자가 노벨화학상을 타고도 그냥 그가 다니던 연구소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계속 다니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 보이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만큼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게 그들의 ‘국민성’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일본사대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일본인들의 ‘일에 대한 열정’은 알아줘야 한다고 본다. 그네들은 아무리 시시한 일이라도 자신의 일에 관해선 그야말로 ‘헌신’한다. 언젠가 일본 지하철 역 구내에서 신출내기 역무원이 깃발을 올리고 내리는 것을 수없이 연습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비록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그렇게 성심을 다하는 자세가 평균적인 일본인들의 마인드인 듯하다.

 

이 영화 속에서도 ‘1분을 다투며’ 불호령을 칠 정도로 일에 대한 준엄한 자세가 대단하다. 사라진 작은 공구(工具) 하나를 찾기 위해 정비팀 전원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이야말로 그들의 일에 대한 자세가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해피 플라이트’는 이런 보편적 일본인의 정서를 깔끔하고 유쾌하게 그려냈기에 일본인들의 큰 박수를 받은 영화다. 일본 박스 오피스 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하니 꽤 히트 친 영화 같다. ‘회항하는 항공기 이야기’라는 단순한 소재로 일본인들을 웃기고 울린 이 ‘해피 플라이트’는 한국인이 봐도 뭉클해지기도 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도 울었듯’이 한 대의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합력’해야 한다는 것을 감독은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감독이 이렇게 ‘정밀한 비행기 영화’를 만들어내기까지는 일본 항공회사 ANA의 전폭적인 지지가 받침돌 역할을 단단히 했다. 점보 747 항공기를 보름간 무상으로 대여해줘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10억 엔 이상을 지원했다. 그밖에도 하네다 공항 정비장 등 일반인에겐 공개하지 않는 장소에서의 촬영도 허락해주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를 찍기 위해’ 범국가적 지원을 해준 셈이다. 

일반 승객들 입장에서야 그저 조종사나 스튜어디스, 티케팅 부스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눈에 보이는 전부이지만 공항과 항공기 관련 ‘일’에 종사하는 ‘숨어있는 일꾼’들의 ‘피 말리는 작업 이야기’는 상상이상이다.

 

 

관제실이나 오퍼레이션 디렉터, 정비사, 조류 퇴치반 등등 우리가 몰랐던 ‘직업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기장 승격 최종 비행을 앞둔 부기장 스즈키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선배 기장 하라다와 함께 호놀룰루를 향해 비행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을 보면 조종사들이 얼마나 ‘초긴장 상태’로 비행하는 지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간다.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식중독 같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같은 메뉴의 음식을 먹지 않는 장면도 흥미롭다.

 

국제선 첫 비행에 오른 새내기 스튜어디스 에츠코의 좌충우돌 근무 모습이 양념처럼 웃음을 선사한다. 화려한 직업세계로 보여 지는 스튜어디스아가씨들의 기내 근무모습은 여느 직업과 진배없이 고달프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딸이 처음으로 국제선에 타는 걸 축하하기 위해 공항에 나온 부모가 ‘정로환’과 ‘부적’을 쥐어주는 모습에선 국적을 초월한 부모의 마음이 느껴진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마지막 순간 카메오로 깜짝 출연해 코믹한 모습을 보여준 일본 최정상급 남자배우 다케나카 나오토의 모습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을 선사한다.

무더위와 일상에 권태를 느끼고 있는 분들에게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