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

추억의 일본 영화 <박치기!>

스카이뷰2 2015. 4. 6. 10:11

 

 

 

    일본 영화 <박치기!>를 보고


 우연히 본 영화 한편이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영화의 주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의 멜로디가 저절로 입속에 맴돌면서 가슴이 찡해지곤 합니다. 일본 영화 <메종 드 히미코>의 주인공 배우인 오다기리 죠가 ‘주연보다 더 빛나는 조연’으로 나온다는 소리만 듣고 무턱대고 보러 간 영화가 바로 일본 영화 <박치기!>였습니다.

 

대개 영화를 보러가기 전 그 영화의 감독이나 주연배우, 줄거리 등을 웬만큼은 알고 갔었는데 이번 영화는

오직 ‘꽃미남’ 오다기리 죠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영화관을 찾았으니 거의 ‘충동구매’나 마찬가지였죠.^^

그야말로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식으로 ‘조연배우’ 하나만 믿고 무작정 영화관을 갔으니 조금은 무모한 상품선택이었던 셈이었습니다.


그러니 영화 초입에 등장하는 ‘학원 폭력배들의 난투극’같은 수준의 활극이 벌어지는 걸 보고 ‘잘못 들어왔나’싶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감독의 ‘숙수(熟手)의 솜씨’가 느껴지기 시작하더군요.

몇 해 전인가요, 영국영화 <비밀과 거짓말>을 보면서 감독이 최소한 50대 이상이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역시 감독은 50대의 역량있는 중견 감독이었습니다.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꽤 유명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었을 겁니다.


<박치기!> 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아하 감독이 최소한 50대는 되었겠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팸플릿을 통해 감독의 프로필을 보니 55세였습니다. ^^  뭐랄까요, 인생의 신산함을 충분히 겪은 사람들만이 나타낼 수 있는 ‘인생의 다양성’과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감독의 시선’을 감지해낼 수 있었거든요.

 

 <메종 드 히미코>도 40대 중반의 감독 작품다운 솜씨가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영화라는 예술은 종합예술인 만큼 인생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이 만들었을 때 더 깊이있는 작품세계를 보여줄 수 있나봅니다.


그렇다고 20대 30대의 젊은 감독들은 미숙하다는 얘긴 아니구요, 그들은 또 그들 나름의 세계를 그려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인생’이라는 미스테리 투성이의 세계를 설득력있게 그려내려면 역시 감독의 물리적 연륜은 무시하지 못한다는 걸 이번 영화를 보면서 다시한번 느꼈답니다. 


아무튼 오랜만에 ‘눈물 콧물’ 흘리며 가슴으로 본 영화였습니다. 감독의 서사(敍事)를 이끌어가는 ‘뚝심있는 역량’이 느껴져 감동의 깊이가 더했습니다. 극히 일상적이면서 소소한 삶의 단면을 촘촘히 엮어내는 솜씨에서 바로 감독의 ‘연륜’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68년 일본 교토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의 삶의 애환을 조총련에서 세운 조선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그려나갑니다. 피 끓는 청춘들인 학생들은 동급생 여학생들을 괴롭힌 히가시 고교생들과 끊임없이 부닥뜨리며 ‘박치기’로 결판을 내려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소위 ‘학원 폭력배’들의 문제가 시끄럽지만 30여 년 전 일본 교토에서도 역시 학생들은 민족이 다르다는 ‘특수성’이 더해져 더 첨예하게 사사건건 부닥칩니다. 거의 생사를 걸 정도로 격렬한 싸움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가운데 ‘국경을 초월한 순수한 10대들의 사랑’이 피어납니다.   

 

<박치기!>는 일본에서도 가타카나를 사용해 그대로 < パッチギ! (박치기!)>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다는군요. 그러니까 영화가 지향하는 메시지를 바로 보여준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밀림의 법칙’이 있듯이 이들 조선고교생들은 ‘박치기’를 생존의 법칙으로 삼은 듯합니다. 일본애들도 이들의 ‘박치기’에 벌벌 떱니다.


조선고의 ‘싸움짱’인 ‘박치기왕’  리안성과 청초한 여동생 경자를 중심으로 경자를 사랑하게 되는 일본인 코우스케, 안성을 사랑하는 일본여성 모모코의 ‘청춘시대’가 이 영화의 주요 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은 어쩌면 이들의 사랑을 통해 ‘한일민족간의 화해’를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개처럼’ 끌려와 한 많은 ‘조센징’의 인생을 살아온 그들의 부모세대들의 한탄  섞인 대사는 가슴을 저밉니다. 부모세대들은 ‘이코마 터널 누가 판 건지 알아’ ‘국회의사당 대리석 어디서 갖고 와서 누가 쌓았는지 알기는 하나’라고 절규합니다. 모두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센징들이 강제노동으로 이루어낸 ‘눈물의 축조물’이라는 겁니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주제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임진강’이라는 노래가 모든 걸 상징해 줍니다. 북한의 애국가를 작사한 걸로 알려진 박세영이 쓴 노랫말에 고종한이 작곡한 ‘임진강’을 1968년 일본의 포크 그룹인 ‘더 포크 크루세더스’가 번역해 처음 불렀다고 합니다.


노래가 나오자마자 일본 당국으로부터 ‘금지곡’ 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당시 한창 기승부리던 학생운동 무드를 타고 소위 ‘운동권 노래’로 크게 유행했답니다. 더구나 유선방송을 타고 점점 확산돼 거의 ‘청춘의 통과의례 곡’ 정도로 일본 젊은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는군요.

영화를 본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저절로 입가를 맴돌 정도이고 보면 ‘임진강’이라는 노래의 친화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공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멜로디는 단순하지만 사람의 가슴을 뒤흔드는 저력이 있는 노래인 것 같습니다.


문득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씨가 오래 전 평양에 가서 김정일 앞에서 불렀다는 ‘이름 없는 영웅들’이라는 영화주제곡이 떠오르는군요. 그 노래도 처음 들었을 때 심금을 흔들어놓을 듯이 슬픈 정조의 멜로디여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임진강’도 사람의 마음을 서글프게 만들어 버립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북한 혁명가’ 스타일의 노래들이 이런 정조를 바탕으로 깔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묘한 것이어서 이렇게 ‘슬픈 멜로디’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이런 노래를 일본인도 좋아한다는 걸 보면 노래에도 국경은 없나봅니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물새들도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라는 가사가 상징하듯 ‘분단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만 이 분단이 꼭 ‘남북의 분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 같은 소통의 문제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 일본인에게도 어필할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남자 주인공인 코우스케가 첫눈에 반한 조선인여학생 경자에게 바치는 사랑노래도 바로 이 ‘임진강’입니다. 심혈을 기울여 임진강노래를  배우고 부르는 코우스케의 신실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경자도 결국 이런 코우스케에게 마음을 열게 되지요. 


경자의 오빠 안성과 모모코의 사랑도 ‘아기가 탄생’함으로써 공고해집니다. 갓 태어난 새 생명을 품에 안고 눈물을 글썽이는 안성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안성은 ‘조국으로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일본에서 ‘가정’의 울타리를 칩니다.


<박치기!>는 일본에서 상을 많이 받은 영화입니다. 2005년 일본 아사히 신문 선정 베스트 영화 1위였고, 같은 해 영화잡지 키네마 준보 선정 베스트 영화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밖에도 마이니치 영화상 대상을 받았고, 감독상 신인상등을 휩쓸었다고 합니다. 흥행에서도 짭짤한 수익을 거두었다는군요.


제작은 조총련 출신의 재일동포 실업가 이봉우씨가 맡았지만 감독은 일본의 중견 이즈츠 카즈유키, 배우도 주연과 조연급은 거의 대부분 일본인들이 맡았던 게 조금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영화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꽤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재일동포문제를 클로스 업 시켜 이만한 작품으로 내놓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영화제작자와 감독은 상을 받을 만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