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

'콘돌' -미국 CIA의 내막을 다룬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 옛날 영화

스카이뷰2 2015. 11. 17. 17:42

 

▲ 영화 '콘돌'의 한장면.

 

 
                    

 

                                                                                 64 회 칸영화제 포스터 페이 더너웨이    

 

 

 

            로버트 레드포드, 페이 더너웨이의 '콘돌'

 

 

 

시드니 폴락, 로버트 레드포드, 페이 더너웨이, 막스 폰 시도우 이런 이름들이 반가운 영화팬이라면 당신은 ‘올드세대’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겐 ‘선댄스 영화제’주최자로 더 알려져 있을 미국의 대표적 명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콘돌’이라는 영화는 그저 생소한 흘러간 영화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물론 5060세대들도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로버트 레드포드는 누구며 콘돌이란 영화는 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EBS 토요명화극장을 통해 다시 본 추억의 영화 ‘콘돌’은 시드니폴락 감독이 1975년 만든 영화다. ‘콘돌(Three Days Of The Condor)은 1989년 크리스마스 즈음 서울에서 개봉했다. 지금은 사라진 ’호암 아트홀‘극장에서 ’콘돌‘을 봤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수십년전 본 영화를 TV에서 다시보는 것도 쏠쏠하게 재밌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페이 더너웨이가 나온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무조건 보러갔던 기억이 난다. 요즘엔 신문에 영화광고가 사라진지 오래됐지만 그 시절엔 영화는 신문광고를 통해 알려졌었다.크리스마스나 설날 추석 등 명절 대목엔 영화광고가 신문의 주요 광고수입원이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 포털의 영화정보란을 통해 온갖 영화가 다 소개되는 마당이니 신문광고업자들은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지금 기억으로 콘돌은 당시 젊은층에게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어느 시절이건 젊은이들은 힘없는 일 개인이 막강한 조직에 의해 핍박당하는 꼴만은 좌시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젊음의, 요즘 부쩍 유행어가 된 듯한 '청춘'들의 특권이었다.

청춘들은 자신의 누추함보다 불의에 신음하는 타인의 고통을 참지 못하는 특성을 갖고 있는 족속들이니까. 그렇기에 '청춘들'은 늘 모반을 꿈꾸며 정의가 늘 이기는 세상을 꿈꾸며 세월을 이기려고 하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 그런 게 바로 청춘의 특권이자 자존심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국가정보기관의 일개 말단직원인 조셉(로버트 레드포드)은 본의아니게 쫓기는 몸이 되면서 비로소 '조직의 쓴맛', 국가의 비양심성에 분노하게 된다.

러닝 타임 117분간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봤다. 특히 라스트 신에 나오는 로버트레드포드의 그 표정은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오늘 새벽으로 이어지는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도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시간이란 건 어쩌면 ’얼어붙은 겨울 강‘같은 것이어서 20여년 전 본 영화의 라스트신이 20여년이 흐른 지금으로 자연스레 ’공간 이동‘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건 어쩌면 공간 이동과 함께 '감성이동'으로도 이어져 '녹슬지 않은 감성'에 자부심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35년 전 미국사회, 특히 CIA라는 특수 조직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범죄행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미국의 미래’는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의 현실과 신통하게도 맞아떨어진다.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에서 ‘국익’과 ‘조직’을 지키기 위해선 개인의 목숨쯤이야 몇 명이 희생되건 말건 상관 않을 것이고, 암암리에 지금도 자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아프카니스탄에서 민간인들을 사격하는 미군에 대한 위키리크스의  첫 폭로가 그 좋은 예인 것 같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75년 무렵은 월남이 패망하고 미국의 체면은 엄청 구겨진 시절이었다. 미국 내에서 ‘반전 데모’가 극에 달했고, ‘누구를 위해’ 그 귀한 목숨을 내놓는지도 모르고 죽어간 젊은이들과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정신적 전사자(戰死者)’가 되어 돌아온 수많은 젊은이들의 방황으로 미국은 지금 우리 대한민국 현실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영화 ‘콘돌’은 원래 제임스 그래디의 첩보 소설 '콘돌의 6일'을 각색, CIA 조직의 희생양이 될 뻔했던 말단 조직원이 겪어낸 3일간의 사투(死鬪)를 팽팽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대강 이런 줄거리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맡은 주인공 조 터너는 아메리칸 문학상협회로 위장한 CIA의 하부조직에서 일하는 말단 조사원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날 동료들의 점심을 사러 햄버거 집으로 간 사이 복면괴한들이 사무실을 습격, 조의 상사와 동료 전 직원을 사살한 뒤 사라져 버린다.

 

햄버거 봉지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온 조는 동료들의 끔찍한 시신들을 목격하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 사건을 보고하기 위해 상부 조직에 전화를 하고 ‘지시’대로 움직였지만 오히려 그들로부터 총격을 받으면서 그는 CIA조직이 자신을 보호해주기는 커녕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자 스키용품 판매점에서 우연히 만난 여류사진작가 캐시(페이 다나웨이)를 납치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 비정한 국가권력에 환멸을 느낀 조는 캐시와 함께 모든 사실을 신문에 폭로하기로 결심, 온갖 사투 끝에 '뉴욕 타임스‘에 사건의 전말을 제보한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마주친 CIA의 부장은 냉소와 함께 조롱하면서 기사는 실리지 않을 것이며 너 역시 길거리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말을 뒤로하고 인파 속에 사라져가면서 힐끗 뒤돌아 보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표정이 압권이다.

 

거대 조직에 맞서 싸우는 힘 없는 개인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이런 스토리는 그 후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만들어진 수많은 첩보영화의 ‘전범(典範)’으로 자리 잡았다. 30여년 전 미국 ‘물질문명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에선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핸드 폰’이 없던 시절이던 만큼 로버트 레드포드가 필사적으로 길거리를 달리면서 ‘공중전화’로 상부조직과 연락을 하는 모습이나 아날로그적 설정들이 곳곳에 등장해 웃음과 재미를 선사한다.

CIA의 정예 요원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 습득한 추리력과 노하우로 거대조직을 상대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활약에서 ‘시대적 낭만’마저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옛날 영화’가 주는 재미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하지만 요즘 같은 ‘스마트폰 키즈’들에겐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명장면’들 덕분에 긴박한 장면마저 코믹하게 보여지는 게 옥의 티가 될 수도 있다. '그 시절을 아십니까'라는 다큐멘터리가 생각나기도 한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스티브잡스나 빌게이츠 같은 천재들 덕분에 요즘 세대들은 아날로그 시대적 정서를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30대 중반 페이 더너웨이의 매력적인 모습도 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다.

보스톤대학 출신의 지적인 여배우로 알려진 페이 더너웨이는 ‘연극배우’로 시작한 연기자여서 어떤 영화에서든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재주가 있는 여배우다.

 

프랑스 여배우들이나 중국 여배우들의 좋은 이미지를 함께 모아 만든 듯한 그녀의 ‘수수한 이미지’의 미모는 페이 더너웨이만이 갖고 있는 묘한 매력이다. 그래선지 칸 영화제는 페이 더너웨이를 제64회 칸영화제 공식 포스터 모델로 모셨다. 포스터속 페이 더너웨이의 흑백사진은 1970년 제리 샤츠버그 작품이다. 40여년 전 사진 같지 않게 세련미가 돋보인다.

 

1941년 미국 플로리다 태생의 페이 더너웨는 출세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를 비롯해 1968년작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파리는 안개에 젖어' '타워링' '차이나타운' '네트워크' 등에 출연, 한국 영화팬들의 갈채를 받았던 여배우다.

 

이젠 75세 원로배우가 되었지만 페이 더너웨이의 카리스마 있는 표정연기는 지금 봐도 대단하다. 더구나 ‘11월의 우수(憂愁)’를 찍을 줄 아는 재주있는 사진작가라는 이 영화 속 그녀의 ‘직업’과 그녀의 예술적인 작품성을 알아봐 주는 로버트레드포드의 ‘명대사’들은 살벌한 첩보영화 속에서도 낭만을 느끼게 해준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이 영화를 포함해 7편의 작품을 시드니 폴락 감독과 함께 했다.

가장 미국적인 남자배우로 꼽히기도 했던 로버트 레드포드는 지적인 연기에서 더 돋보이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배우 출신 명감독이기도 한 그는 1980년 그 유명한 ‘보통사람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보통사람들'은 당시 미국사회현상을 예리하게 보여준 명작이다. 그로부터 8년 후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에선 노태우후보캠프에서 이 제목을 차용 '보통사람들'로 선거 재미 좀 봤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페이 더너웨이 이 두 명배우의 연기를 다시 보는 것이나 모두들 잠든 밤 혼자 옛날 영화가 주는 매력에 빠질 수 있다는 것, 그 기분 꽤 괜찮다. 여러분에게도 권하고 싶다. 물론 개인적 정서는 다 다르니까 '흥행 재미'까지 보장해주긴 어렵다. 

 

어쨌든 심야 '안방 극장'에서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도 놓치기 아까운 소소한 행복이다.  요즘처럼 시끄러운 시대엔 매사를 초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생존 전략'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Don't Worry, Be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