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대학교 캠퍼스 풍경.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의 자부심에 넘치는 학자들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는 오랜 친구로 지낸 벨기에의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린스턴은 굉장히 멋진 곳이라고 소개하면서 가느다란 팔다리를 가진 반신반인(半神半人)들이 매우 재미있는 축제를 벌이는 한적한 소도시라고 소개했다.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가 누구에게도 구속받기를 꺼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아인슈타인과는 딱 어울렸다.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이라는 작은 학문의 도시를 좋아했듯 프린스턴 사람들도 이 세계적인 학자의 이주를 축하해주었다. 과학 평론가 에드 레지스(Ed Regis)는 ‘프린스턴은 어떻게 하룻밤 새 점잖은 대학도시에서 물리학의 세계적인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는가’라는 글을 썼다. 그 이유는 일찍이 마담 퀴리의 연인이었던 폴 랑주뱅의 말을 인용해 “물리학계의 교황이 이사를 온 덕분이다”고 했다.
프린스턴이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프린스턴의 은자(隱者)로, 프린스턴의 성자(聖者)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아인슈타인이라는 세계최고 석학을 보호하기 위해 온 마을이 합동 작전을 펴듯 노력을 함께 기울였다. 어린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하다는 인디안 속담도 있지만 세상의 ‘큰 바위 얼굴’같은 당대의 정신적 지주를 지켜주기 위해서도 그렇게 온 도시가 힘을 합해야 했을 것이다.
프린스턴의 한 작은 호텔에선 아인슈타인을 만나러 왔다는 방문객에겐 ‘방문 약속을 했나’를 먼저 물었다. 그가 아니라고 하면 한 시간 뒤에 다시 와달라고 했다. 그 사이에 확인 작업과 함께 아인슈타인의 비서에게 허락을 얻어내곤 했다. 그 누구도 불쑥 그를 방문 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는 택시를 타고 메르세가 112번지로 가자고 하면 택시기사가 ‘방문 약속은 하고 오셨냐’고 물을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인슈타인 가족은 모처럼 편안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아인슈타인은 동생 마야에게 “코네티컷 강가에서 요트를 타는 게 최고의 즐거움이다. 유럽에서는 이렇게 깨끗하고 야성적인 자연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엘자 역시 프린스턴은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나무들로 가득한 큰 공원 같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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