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내외.
아인슈타인은 아침에 자신의 연구실인 파인홀(Fine Hall)209호로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걸어서 출근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연구를 돕는 젊은이들과 함께 수학과 물리학에 대해 토론했다. 점심은 집으로 돌아와서 먹고 낮잠을 잠시 잔 뒤, 비서 헬렌과 함께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는데 시간을 보냈다. 거의 매일 규칙적으로 이 일상은 반복됐다. 죽음이 찾아오기 직전까지.
그는 프린스턴에 대해 점점 애착을 느꼈다. “나는 프린스턴이 참 좋은 곳임을 알았다. 그곳에는 사용하지 않은 담배 파이프와 같은 젊음과 신선함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행복은 짧았다. 아내 엘자가 새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뒤, 심장과 신장의 이상으로 쓰러졌다. 그 전 해에 엘자는 맏딸 일제가 파리에서 요절한 뒤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여파로 그녀는 몸져눕게 되었는데 결국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아인슈타인은 엘자의 침대 옆에 앉아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어주었다.
일찍이 이렇게 자상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남편을 보고 엘자는 죽어가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행복해 했다. 엘자는 지난 20여년 간 아인슈타인의 충실한 내조자로 그가 연구실과 여인들 사이를 오가느라 그녀를 돌봐주지 않았을 때도 속으로만 삭혔지 웬만해선 내색을 안 하는 아주 너그러운 아내였다. 그림자 내조였다고나 할까.
자신의 일상은 엘자가 없다면 매끄럽게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아인슈타인은 엘자가 살아생전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엘자의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엘자는 그런 아인슈타인을 보고 친구 안토니나 발렌틴에게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방 저방 돌아다녀. 그가 나를 이토록 사랑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 사실이 나를 위로해줘”라고 말했다.
참 숙연해지는고백이다. 죽음의 문 앞에서야 겨우 공사다망한 남편에게서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위로받고 있다는 여인의 처절한 심정은 듣는 이를 울컥하게 만든다. 통속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인줄 알았는데...
1936년 12월 20일 60세에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은 채 영원의 길로 떠나갔다. 마지막 순간에 위로받고 떠날 수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혹시 엘자는 아인슈타인의 힘든 뒷바라지 탓에 일찍 떠난 것은 아니었을까?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까다로운 세계적 석학을 한집에서 모시고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엘자보다 한 살 많은 아인슈타인의 첫 부인 밀레바는 재혼하지 않고 살았는데 그녀보다 12년이나 더 살았다. 물론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그 ‘재천’에는 수많은 환경적 요소와 내면적 요소가 복합되어 있다고 본다. 까다롭고 괴팍한 천재 남편을 아들처럼 일일이 보살펴 준다는 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끊이지 않는 미녀들과의 염문설이 터질 때마다 아무리 너그러운 연상의 아내였다지만 그녀의 마음엔 치명적인 독이 될 회복되기 어려운 앙금이 쌓여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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