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민선서를 하고 있는 아인슈타인.
1940년 6월 22일 아인슈타인은 뉴저지 트렌턴에서 의붓딸 마고 아인슈타인, 여비서 헬렌 듀카스(Helen Dukas)와 함께 오른 손을 높이 쳐들고 미국시민으로서의 선서를 했다. 아내 엘자는 세상을 뜬 뒤였다. 흐릿한 흑백 사진이지만 순수한 과학자를 내버려 두지 않았던 당시 위험한 세계정세에 피곤해져 있는 아인슈타인의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진다.
사진 상으로 볼 때 아인슈타인의 오른 편에 있던 헬렌 듀카스는 ‘평생 여비서’로 엘자가 떠난 뒤 아인슈타인을 보필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매우 충직한 여성이었다. 아인슈타인에겐 늘 이런 충성스런 여전사(女戰士)들이 버티고 있었기에 세계적인 학자로서의 길을 표표히 지켜나갈 수 있었다.
말하자면 ‘여복(女福)’이 좋은 남자였다. 그렇게나 많은 애인들이 그의 곁을 스쳐지나갔지만 ‘여난(女難)’으로 악화된 일은 거의 없었다. 첫 아내 밀레바와는 이혼 과정이 좀 힘들 긴 했지만 그녀 역시 오랜 시간 아인슈타인을 위해 헌신해온 공적이 있는 여성이다. 밀레바야말로 그가 상대성 이론을 창조하는데 큰 조력자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아인슈타인의 비서들 중엔 가끔 이 천재 상사와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지만 여비서 헬렌은 시종일관 충실한 비서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오로지 아인슈타인의 일상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그녀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고 평생을 독신으로 그의 곁을 지켰다.
항간에선 그녀가 ‘역사에서 사라진 아인슈타인의 첫 딸 리제를’이라는 말도 떠돌았고, 아인슈타인과 연인관계였다는 소문도 나돌았지만 어느 것 하나 과학적 증거를 찾아내긴 어려웠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엘자의 고향 후배이기도 한 헬렌은 1928년 처음 아인슈타인의 비서가 된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그를 보필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거의 가족 같은 비서였다.
그녀의 일과는 아인슈타인의 다양한 강의 준비와 받은 편지에 답장하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아인슈타인도 헬렌의 박학다식을 인정해 ‘마담 딕셔너리’라고 불렀다. 프린스턴의 아인슈타인의 저택을 방문한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헬렌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는 것을 자주 봤지만 그것은 임의로운 사이의 사람들끼리 믿고서 할 수 있는 반어법의 말투였다.
헬렌은 아인슈타인의 재산도 관리했다. 아인슈타인 연구자들은 그녀의 비상한 기억력과 자료조사 능력에 놀랐다. 아인슈타인의 ‘좋은 면’만 세상에 보여 지도록 조정하는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아인슈타인의 사생활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내는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맏아들 한스 알베르트가 아버지의 편지를 출판하는 것조차 막기 위해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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