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런 여자들은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이라는 이름의 ‘제단에 바친 제물들’이었을 뿐이다. 세상에 어떤 연인이 있어 물리학만큼 아인슈타인이라는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겠는가.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에게 있어서 알파요 오메가였다. 그야말로 물리학은 그 남자의 전부였던 것이다.
엘자가 죽은 후 아인슈타인은 더 이상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니 상대가 기혼녀가 아닌 이상 누구를 사귀든 ‘법’이나 도덕률에 저촉되지는 않았다. 늘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만 되는 그에게는 절호의 찬스였을 것이다.
1998년 소더비 경매에 나온 아인슈타인의 ‘연서’에 따르면 그는 소련 스파이 마가리타 코넨코바와 여러 해 동안 애인관계를 유지했었던 것 같다.
당시 FBI는 아인슈타인을 ‘불온 분자’로 낙인찍고 그에 대한 은밀한 내사를 진행해 1500장이나 되는 ‘아인슈타인 파일’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이 소련 스파이와의 ‘연애’는 그들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았었나 보다.
그녀는 조각가 세르게이 코넨코바의 아내였다. 마가리타의 임무는 아인슈타인을 소련 부영사에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두 남자는 그녀의 소개로 뉴욕에서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녀가 소련의 스파이라는 사실은 미처 몰랐던 것 같다. 1945년 마가리타가 모스크바로 떠난 뒤, 아인슈타인은 그녀에게 “프린스턴의 집은 은둔자의 감옥, 쓸쓸한 둥지”라고 적어 보냈다. 그의 나이 67세 때의 일이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청년시대 그 감미롭게 썼던 연애편지의 솜씨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다시 나의 둥지로 돌아오니 이 집이 당신에게 안부를 묻고 있네요.”
충직한 비서진의 막강한 보호막 속에 은둔자로 살던 아인슈타인에게 몰래 접근해 그에게 ‘개인교습’까지 받은 간 큰 사람도 있었다. 이웃집에 사는 초등 1년생 꼬마 숙녀였다. 그 소녀가 어떻게 헬렌의 눈을 피할 수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꼬마는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수학숙제를 지도받곤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소녀의 부모는 그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수학을 조금 가르쳐주었지만 따님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어요.” 후생이 가외라고, 세계 최고의 석학교수 할아버지가 일곱 살짜리 소녀로부터 ‘인생수업’을 배웠다니 그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잡힐 듯 선하다.
만년의 아인슈타인은 아주 인자한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곱게 늙어 보기에 참 푸근한 인상이었다. 워낙 젊어서도 인물은 좋았지만 그렇게 잘 늙어왔다는 건 그가 물리학이라는 거대한 우주에 온전히 자신을 바친 ‘반대급부’덕분이 아니었을까.
한 인간이 어떤 한 분야에 자신의 전 생애를 온전히 바쳤을 때 그 사람은 ‘일가’를 이뤄낸 보상을 어떤 식으로든 받게 마련이다. 그렇게 한 세상을 보내온 사람에겐 거의 누구에게나 온유하면서도 멋진 노년의 표정을 가질 확률이 높다. 아인슈타인 역시 그렇게 보기 좋은 노년의 표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60년 물리학 인생’에 대한 보너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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