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중인 아인슈타인 자전거로 귀가중인 아인슈타인-인생은 자전거타기와 같다는 말을 했다.
엘자가 죽은 지 이틀 뒤, 뉴욕타임스에는 엘자가 생전에 했던 이런 말이 실렸다. “천재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당신의 삶이라고 해서 그게 온전히 당신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이 만인에게 속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나는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남편에게 쏟습니다. 그건 모든 시간을 타인들을 위해 사용한다는 뜻이지요.”
엘자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그녀 자신이 아인슈타인을 내조하기 위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얘기다. 안 봐도 비디오가 아니겠는가. 그 힘든 신산의 세월을. 아무리 외면적으로 화려하고 부유한 상류층 삶이었다 해도.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말도 있듯 천재 남편을 '모시고 '살아야하는 엘자의 삶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엄청 고달펐을 것이다.
엘자가 죽자 아인슈타인은 깊은 상실감으로 한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연구에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의 건강을 걱정한 주변 사람들이 잠시 연구를 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다른 어느 때보다 일이 필요하네. 나는 연구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돼.”라고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인슈타인의 인생을 100으로 봤을 때 물리학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99, 나머지 1로 그는 일상생활을 영위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의 상식적인 생활을 그에게 요구한다는 건 갓난아기에게 달음박질을 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생전에 엘자는 아인슈타인에게 활발한 강연과 여행 스케줄을 안겨줬다. 그런 엘자가 세상을 뜨자 아인슈타인은 연구소와 집만을 오갔다. 점점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절친한 친구 막스 보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동굴 속 곰처럼 살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지금까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비해 편안한 생활이네. 나의 이런 곰같은 성격은 아내의 죽음으로 더 심해졌다네.” 배우자의 죽음이 스트레스중 가장 극심한 것이라는 연구결과와도 합치되는 아인슈타인의 고백이다.
아인슈타인이 일상생활에 서툴렀던 일화는 꽤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귀가 도중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려 연구소에 전화해서 물어봤다거나 점잖은 모임에 양말을 신고 가는 것을 잊어버려 맨발로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는 일화다. 아내 엘자가 세상을 뜬 이후로는 아무 옷이나 걸치고 다녀 허름한 노숙자 같은 모습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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