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전경.
1933년 10월 아인슈타인은 엘자와 비서 헬렌 듀카스, 그의 계산기로 불린 수학자 빌터 마이어와 함께 프린스턴에 도착, 라이브러리 플레이스 2번가에 임시로 집을 얻었다. 1935년에 프린스턴의 메르세가 112번지의 참나무로 지어진 작은 집을 한 채 샀다. 자신의 상대성 이론 원본을 팔면서 생긴 돈과 갖고 있던 현금을 합해 구입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집이었다.
독일을 쫓겨나듯 떠나온 아인슈타인은 1935년 5월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직접 항해해 미국령 버뮤다로 갔다 왔다. 그 후 한 번도 미국을 떠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을 프린스턴의 고등과학기술원으로 영입한 플렉스너는 그에게 정치적 소신을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미국에서 안전하게 지내려면 말을 삼가고 공공행사에는 참석하지 마십시오.”
플렉스너는 후원자들로부터 기금이 끊길 것을 지나치게 걱정한 나머지 아인슈타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제약을 가하려 들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에게 오는 편지까지 미리 개봉하는 횡포도 부렸다. 그는 아인슈타인에겐 알리지도 않고 백악관의 루즈벨트 대통령으로부터의 초대마저 거절하는 최고의 결례를 저질렀다. 아인슈타인의 연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며칠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인슈타인은 백악관에 사과편지를 보내고 즉시 초대에 응했다. 세상에 어떻게 대통령에의 초대를 본인에겐 알리지도 않고 거절할 수 있는지. 아인슈타인 자신도 아마 굉장히 놀라고 화가 났을 것 같다. 아무리 물리학에 몰두한 아인슈타인이라지만 현직 미국대통령의 만찬파티에 초대받았다는 건 기분괜찮은 일 아니겠는가. 하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귀한 초대'를 거절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1934년 1월 24일 아인슈타인은 엘자와 백악관 만찬에 초대돼 루즈벨트 대통령 내외와 함께 식사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들은 또 그날 백악관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국빈급 대접을 받은 것이다. 대통령과 물리학자와의 대화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인슈타인이 “루즈벨트가 대통령인 것이 유감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를 더 자주 만났을 텐데”라는 말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서로는 상당히 의기투합했던 것 같다.
아인슈타인은 백악관을 다녀온 뒤 백악관의 초대를 주선한 친구이자 랍비인 와이즈에게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으면서 자신이 ‘프린스턴 수용소’에 있다고 적었다. 랍비 친구는 플렉스너에게 아인슈타인을 더 이상 구속하려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 후로 플렉스너의 횡포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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