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래픽=김성규 기자
권력은 腦(뇌)를 바꾼다… 당신도 권력자가 된다면 어쩔 수 없다
살벌한 정치뉴스들로 가득찬 신문 한 구석에서 아주 재미난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읽고 웃음이 나왔다.
요즘 한창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유출사건'이나 '조현아 땅콩회항 사건'같은 게 어쩌면 이 글을 읽고 계실 '평범한 국민 여러분'은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평범한 이 블로거에게도 해당되는 '보편적 인간 본성'에서 기인된 것이라는 사실을 캐나다와 미국의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는 얘기다.
복잡하게 말할 것 없이 쉽게 요약한다면 재벌이나 최고권력실세들이 소위 말하는 '슈퍼 갑질'을 한다는 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 인간의 '뇌구조'가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현재로는 쥐꼬리만한 권력도 없는 '백면서생'일지라도 '쥐꼬리 권력'이라도 잡게 되면 거들먹 거리고 아랫사람 괴롭히고 이러는 '못된 근성'이 생태적으로 발동한다는 서글픈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말이다.
그렇지않아도 '대통령과 친한 남자'로 알려진 정윤회가 말쑥한 정장차림에 한치의 꿀림도 없이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섰고 대통령도 거쳐야한다는 검찰 보안검색대조차 거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조사하려는 검사들에게 "언론을 통해 알게된 저에대한 어떤 이미지도 신경쓰지 마시고 궁금하신 점, 의문스런 부분을 다 물어보시라"고 통크게 말했다는 보도를 보고 '참 간 큰 사내로다'싶었는데 그런 정황이 '뇌'가 시켜서 한다는 얘기라는 '학설'을 읽고보니 조금은 이해가 간다.
'베일에 감싸여져' 국민의 관심을 증폭시켜온 정윤회가 "박대통령은 애처로운 분"이라고 방송에 나와 공공연하게 떠들었다는 보도를 보자마자 정씨가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었는데 이 역시 '권력학설'에 따르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이야기다. 감히 대한민국 검찰에게 '어려워 말라'거나 대통령을 직접 호명하며 애처롭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자체가 바로 '권력실세'라는 걸 말해주는 한 단면인데 이런 호탕한 언행은 바로 권력실세의 '뇌구조'에서 자연스레 나올 수 있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읽은 '권력과 뇌의 함수 관계'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높은 곳'에 올라가면 '뇌구조'가 바뀌면서 자연스레 '갑질'도 하게 되고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라는 단어는 쓰레기 통 속에 던져버린다는 거다. 그러니까 엊그제 끝난 드라마 '미생(未生)'에서 부하 직원에게 폭언을 일삼는 마 부장이나 박 과장 같은 상사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쥐꼬리 권력이 쥐어지면서 그런 '되먹지 못한 인간 말종'으로 변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출세하고나더니 사람이 달라졌다, 좀 높아지더니 목에 하도 힘을 줘서 밥맛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모두 '그놈의 권력에 빠진 뇌탓'이라는 게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권력을 가지면 뇌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마약중독과 같은 상태에 빠진다는 실험결과를 내놨다.
캐나다 윌프리드 로리어대와 토론토대 공동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남에게 의존했거나 반대로 다른 사람을 압도했던 경험을 글로 쓰게 했다. 자신을 미약한 존재이거나 반대로 상사처럼 힘을 가진 존재로 잠시 생각하게 한 것이다. 이 상태에서 누군가 손으로 고무공을 쥐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뇌 활동을 측정했다.
사람의 뇌(腦)에는 다른 사람의 몸짓을 보거나 말을 들으면 그 사람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신경세포가 있다. 바로 '거울 뉴런(mirror neu ron)'이다. 1990년대 이탈리아 과학자들이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한 현상으로, 상대가 공을 쥐는 모습을 바라보면 내 뇌에서도 공을 쥐는 것과 관련된 신경이 작동하는 식이다.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 모두가 거울 뉴런을 갖고 있어 동료의 고통을 제 것인 양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실험 결과 권력을 가졌던 기억을 떠올린 사람은 거울 뉴런이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반면 힘이 약한 존재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거울 뉴런이 활발하게 작동했다. 결국 폭압적인 상사는 부하 직원이 느끼는 고통을 보고도 죄책감 같은 건 별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병상련의 정'이란 말도 출세한 사람들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속담에서 굳이 찾는다면 '과부 홀아비사정 잘 안다'는 옛말처럼 같은 고통을 겪어봐야 상대의 아픔을 알고 없어봐야 없는 사람의 고통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어렵게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엔 더 지독하게 아랫사람을 밟는 경향이 없진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벼락출세를 하거나 대한항공같은 대재벌 회사의 3세로 태어난 '오너 따님'이라면 '하늘 같은' 부사장님의 호통에 벌벌 떨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사무장이나 스튜어디스의 고통은 죽었다깨나도 모른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그러니 조현아라는 여성이 눈물을 떨궜다해서 그게 곧바로 진정한 반성과 회한으로 연결되는건 절대 아니라는 거다. 한 네티즌말처럼 그 눈물엔 '복수의 다짐'이 담겨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그놈의 뇌'는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서도 헤어나기 어렵다고 한다. 권력이라는 이름의 마약에 중독돼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의 이언 로버트슨 교수는 2013년 발표한 책 '승자의 뇌(The Win ner Effect)'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은 남녀 구분없이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이 증가한다"고 밝혔다. 테스토스테론은 뇌에 만족감을 주는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마약인 코카인에 중독돼도 도파민 분비가 늘어난다. 그러니까 마약을 끊기가 몹시 어렵듯이 이 권력 중독 현상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뇌는 권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점점 악질이 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권력이 더 큰 권력을 추구하는 '이론'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미국 스탠퍼드대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교도소 실험'에서 이런 사실이 밝혀졌다. 짐바르도 교수는 대학생 24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죄수, 다른 쪽은 간수 역할을 시켰다. 그랬더니 간수 역할을 한 학생들은 그것도 권력이랍시고 아무런 지시를 받지 않았는데도 죄수 역할의 학생들을 학대하기 시작했고 학대 행위는 갈수록 더 악랄해졌다고 한다. 바로 권력 중독에 빠졌다는 얘기다.
심지어 권력에 빠진 사람은 뇌의 '안와 전두엽(眼窩 前頭葉)'이 손상된 환자처럼 행동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국 UC버클리의 대처 켈트너 교수에 따르면 안구가 있는 곳 바로 뒤의 이곳이 손상되면 충동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는 거다.
켈트너 교수는 "권력의 경험은 누군가 두개골을 열고 감정이입을 하는 뇌 영역을 끄집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서운 얘기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은 '구제불능성' 권력 중독에 빠져 자신으로 인해 '타인'이 혹은 '아랫사람'이 고통받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렵다는 거다. 오죽하면 "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는 유행가까지 있겠는가!
그러니까 이 이론에 따른다면 박근혜 대통령을 '소통부족의 리더십'이라고 비판하는 건 어찌보면 온당치 못한 지적인지도 모르겠다. 한발 더 나아가면 오히려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좀 비관적 이야기지만 최고 권력자에게 평범한 사람처럼 소통하라고 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요구라고 할 수 있겠다. 재벌 3세딸에게 '개과천선'하라는 말도 소귀에 경읽기라는 말이다.
누구나 그 자리에 가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허무 개그'같은 이야기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은 과장법 같긴해도 '과학'이 뒷받침해준다는 점에서 비관적이다. 당신도 권력자가 된다면 어쩔 수 없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힘 없는 사람들을 맥빠지게 만드는 '못된 격언'같다. 하지만 할 수 없다. 그게 인간 세상의 법칙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오십보 백보라는 말도 나왔나보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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