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친자식처럼 따스하게 위로해주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미지는 '자애로운 할아버지'에 가깝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앞둔 22일 로마 교황청 바티칸 클레멘타인홀에서 마이크를 잡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준엄했다. '관료주의'에 빠져있는 교황청 관계자들의 '위선'을 '교황청의 15가지 질병'으로 규정하며 따끔하게 야단을 쳤다고 한다.
그래도 바티칸 회의실 정도에 가서 앉아있는 사제들이라면 어느 정도 '클래스'에 위치한 인사들일 텐데 그런 그들에게 교황은 '영적 치매'에 걸렸다거나 장례식에 간듯한 얼굴로 과도한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있고 세속적 이익 추구하며 으스대고 있다고 매섭게 질타했다는 거다. 우리나이로 곧 여든이 되는 이 '할아버지 교황'의 '입바른 소리'를 곰곰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고위 관료들이나 파워맨들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아 보인다.
특히 '보스에 대한 지나친 찬미'라는 대목은 지금 대한민국 권력자들이 읽다보면 뜨금해 할 것 같다. 오래전 망자가 된 전직 대통령을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추켜세우며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의 오늘은 없었을 거라는 '과찬의 언사'를 현직 대통령 들으라고 말하는 정치인들에겐 교황의 이런 지적이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본다. 단언컨대 우리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은 결코 한 사람의 공(功)으로 이뤄진 건 아니다.
교황청이 15가지 질병에 걸려 있다고 진단한 교황의 용기있는 발언은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특히 새겨들을 만한 부분이 꽤 많이 눈에 띈다. 교황은 영적·정신적으로 경직되는 것 또한 질병으로 꼽고 있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즐거워하는 이와 함께 축하해야 하는 인간으로서 감성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황의 이런 발언은 어쩌면 '최고의 정치 덕목'으로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우는 정신이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겐 한참 결여된 듯 보인다는 말이다. 세월호 유족들 들으라고 '세월호는 교통사고'라거나 '없는 집애들이 불국사 같은데나 가지 왜 제주도엘 갔나'라고 말한다는 건 지도자로서 자격미달 발언이다.
꼭 한번만 더 만나달라고 애원하는 세월호 유족들을 끝내 외면해 버린 최고지도자의 태도도 '인간적 감성'을 잃은 부분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더운 여름날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어루만지며 그들의 통곡을 들어주던 교황은 그런 면에선 위대해 보였다.
사제들이 신과의 만남을 잊는 걸 영적 치매로 규정한 교황은 “이곳 그리고 바로 지금만 생각한다. 자신의 열정·변덕·광기에만 의존한다. 주변에 담을 쌓고 자신의 손으로 만든 우상의 노예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위고하를 나타내는 제의(祭衣)의 색깔과 존칭, 외양을 삶의 1차적 목표로 삼는 듯한 태도를 우려하기도했다. 비싼차 고급옷 화려한 저택 등을 과시하는 정치인들이나 재벌들도 교황의 이런 지적을 달게 참고해야할 것이다.
교황이 ‘존재론적 정신분열증’이라고 명명한 질병도 눈길을 끈다. 그 병의 증세는 비단 사제뿐 아니라 어쩌면 인간세상에 사는 '좀 괜찮은 부류의 계층'사람들에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것 같다. 바로 이중생활·위선 등이다. 교황은 “영적 빈곤함과 진부함의 전형적 모습”이라며 “이런 질환에 걸리면 목회자로서의 봉사를 포기하고 관료적인 일에만 몰두하며 실제 사람들과의 접촉을 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장례식에 간 듯한 우울하고 딱딱한 표정은 가톨릭 신도는 물론이고 행정조직과 교구 등 개인과 조직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표현도 교황이 경직되어 있는교황청 고위인사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한 지적으로 보인다. 거들먹거리는 대한민국 위정자들에게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십’을 테러에 빗댔다. “직접적으로 말할 용기가 없는 겁쟁이들이 사람들 뒤에서 말한다”며 “험담은 사탄들이나 하는 짓”이라고도 했다. 또 전체보다는 파벌의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는 ‘암’으로 비유했다. “구성원을 노예로 만들고 (조직의) 균형을 깬다”는 의미에서다. '가십'이 난무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참고해야할 '금언'처럼 들린다.
역대 어느 정권도 요즘처럼 이상한 '가십'에 나라가 흔들린 사례는 없었던 것 같다. '가십'은 곧 '찌라시'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겠다. 여성 대통령의 입에서마저 '찌라시'라는 용어가 튀어나오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래서 우울하다. 언젠가는 지금 떠돌고 있는 '가십'이 '현실'로 밝혀질 거라고 믿는 국민이 60%가 넘는다는 여론조사 또한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다.
일반 조직이나 조직원들에게도 적용될 법한 얘기도 했다. “일만 열심히 하지 말라”거나 “계획을 지나치게 꼼꼼하게 세우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바티칸의 관료주의에 물들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선 교황청의 개혁을 위해 이런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교황의 이런 '15가지 질병'진단과 처방은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대한민국에서 눈여겨볼 사안으로 보인다. 진정한 개혁이 이뤄지려면 최고권력자를 비롯한 정치권 그리고 '경제민주화'가 절실히 필요한 대재벌 오너일가들의 진정성 있는 '참된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우선돼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박한 바람은 어쩌면 바람으로 끝날 것만 같은 비관적 생각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맙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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