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독자 온라인 상담소 개설 "아베 따위가"로 정권 비판

스카이뷰2 2015. 1. 30. 14:00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는 홈페이지. 하루키의 모습을 만화로 표현해 친근한 느낌을 준다./'무라카미씨가 있는 곳' 사이트 캡쳐
  무라카미 하루키가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는 홈페이지. '무라카미씨가 있는 곳' 사이트 캡쳐
 

 신쵸사가 개설한 '무라카미씨가 있는 곳' 홈페이지/홈페이지 캡쳐

신쵸사가 개설한 '무라카미씨가 있는 곳' 홈페이지/홈페이지 캡쳐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하면 일단'거칠 것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란 이미지가 떠오른다. 66세 작가지만 여전히 청년기운이 넘친다. 영원한 '맨발의 청춘'같기도 하다.  그런 하루키가 일본 최고 권력자 아베에 대해 "'아베 따위'가 하는 말" 이라는 직설적 표현을 써 가며 아베 정권을 간접 비판했다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60대 중반의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박근혜 따위가'라는 말을 한 셈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선 '현역'으로 그 나이에 정부를 질타할 줄 아는 '예의 없는 작가'는 없다. 아예 60대 중반의 잘나가는 작가가 존재하질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무라카미 하루키 뿐 아니라 훨씬  더 나이가 많은 81세  노벨상 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 같은 작가도 정부에 대해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일종의 '전통'이 있는 듯하다.

 

예술가들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최고 권력자에 대해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는 건 어찌보면 '사회의 공기 청정기'역할을 해야만하는 아티스트들로선 당연한 의무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늘 정치권 인사들만 비판하는 건 아니다. 정치적으로 그런 '옳은 소리'도 하지만  삶에 지친 사람들의 의지처 노릇도 해주 활력소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작가가 건재하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르내리는 게 성가신 일"이라고 고백하기도 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요즘 바쁘다. 그의 작품을 많이 출판한 신초샤(新潮社)가  인터넷으로 진행 중인 독자들과의 대화에서 '하루키스러운 상담'을 하고 있어서다. 지난1월 15일 '무라카미씨의 거처'라는 제목의 홈페이지를 개설해 31일까지 세계 독자들로부터 일어·영어로 질문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하루키가 온라인을 매개로 독자와 대화하는 것은 2006년 이후 9년 만이다..  개통 나흘 만에 무려 1만여건이 넘는 질문이 들어왔다 '아베 따위'가라는 직설적 표현이 나온 것도 이 인터넷 상담소 에서 나온 말이다.

최근 한 여성 팬은 이 하루키 상담소 홈페이지에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는 내용을 담은 아베 정부의 '여성이 빛나는 일본' 정책을 언급하며 "나는 병 때문에 마음대로 일도 못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이도 낳지 못하고 있다. 빛나기가 참 어렵다"는 하소연을 올렸다고 한다. 이에 대한 하루키의 답변이 걸작이다.

 "제 주변의 '빛나는 여성'들은 모두 아베를 향해 '너 따위에게서 일일이 빛나라는 식의 말을 듣고 싶지 않네요'라고 합니다. 확실히 (여성들을 향해 빛나라고 하는 것은) 쓸데없는 간섭입니다. 특별히 빛나지 않아도 좋으니 여성들이 평범하게, 공평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되는 겁니다. 우리 사무실은 예전부터 전원이 여자였습니다. 남자라고 하는 존재는, 솔직히 말해 제가 하는 일에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대체로 여성들도 할 수 있고요." 맞는 말이다. 어쩌면 아베가 부르짖고 있는 '여성이 빛나는 일본' 어쩌구라는 말은 그저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 정치적 허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독자들의 하소연에 대한 하루키의 답글엔 하루키 특유의 '심드렁한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 독자가 "저도 (무라카미씨처럼) 와세다대에 들어가고 싶어요"라고  털어놓자 "제가 대학을 다닐 땐 이런저런 사정으로 술 마시고, 마작만 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래도 작가가 돼 글을 쓰고 번역도 합니다. 대학이라는 델 가든지 안 가든지 (미래는)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실제로 하루키는 '명문' 와세다대학을 나온뒤 7년동안이나 카페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인생을 "뭐 그저 흘러가는 대로 맡기고 살아가기"라는 하루키 식 삶의 태도가 묻어나는 답변이지만 그렇다고 하루키가 허랑방탕하게 살아왔다는 해석은 천만의 말씀이다. 작가가 된 이래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9시까지 책상머리에 꼼짝않고 달라붙어서 소설을 쓴다는 게 이 남자 작가의 일상의 모습이다. 글을 쓰지 않을 땐 의무처럼 10KM 이상을 매일 달린다. 그렇게해서 다져진 체력으로 보스턴 마라톤 코스에 참가하는 게 '하루키 스타일'이다. 

소설가 지망생과의 문답 중에서는 작가의 글쓰기 철학을 이렇게 드러내고 있다. "소설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작년 난생 처음 소설을 써서 공모전에 응모했는데, 결과는 탈락이었어요. 이런 식으로 기분이 가라앉을 때, 무라카미씨는 다음 소설에 착수하기 위해 어떻게 마음을 다잡나요?"(남성, 24세, 서점 직원) 

 

 "자신의 글을 스스로 평가하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직업으로 소설을 써왔지만 여전히 내가 쓴 것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리는 게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상대가 누구든지 자기 작품을 비판하면 아마 화가 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판은 글을 수정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나는 비판에 화가 나면 그 반대로 다시 씁니다. '이 부분은 짧게 하는 게 좋아'라고 지적하면 반대로 길게 쓴다든지. '여기는 길게 가는 게 좋아'라고 하면 반대로 짧게 한다거나. 하지만 그렇게 하는 동안 작품이 잘 돼가는 겁니다. 이상하지만, 힘내세요."(무라카미 하루키)


한 44세 회사원 남성의 "결혼한 지 8년이 지났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안 생기겠지요. 아이가 없는 인생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라는 질문은 하루키에겐 마치 '자화상'을 보는 듯한 소리였을 거다 . 자식을 낳지 않고 아내와 함께 고양이를 키우며 살아온 66세작가는  이런 답변을 내놨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작업의 퀄리티가 자식의 유무에 따라 좌우되지는 않습니다. 작업의 방향성이 조금 바뀔 뿐입니다.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그저 언제가 됐든 성실하게 삶의 퀄리티를 높여가는 겁니다." 이 말은 어쩌면 하루키가 '좌우명'처럼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말일 지도 모르겠다. 전업작가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하루키로선 삶의 퀄리티를 높여간다는 건 바로 '작품활동'에 매진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판당하는 것이 두렵다"는 한 독자에게 하루키는 이런 답글을 달았다. "비판받거나 미움받는 것은 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에 비판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스팅의 노래 중에도 'I am a legal alien'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나는 합법적인 이방인'이라는 뜻이죠. 그 말처럼 인간은 모두 기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입니다."  이보다 저 좋은 위로의 말씀은 만들어내기 어려울 듯한 '모범 답글'로 보인다.

 

 

아래 문답들을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소탈함이 느껴진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독자 사이의 대화 라기보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같기도 하다. 

 

"무라카미씨, 안녕하세요. 공중목욕탕을 경영하는 39세입니다. 요즘 손님이 줄어 곤란합니다. 손님이 많아질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독자)
"우리 사무실 근처 아오야마의 목욕탕은 락커 서비스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달리고 땀을 흘린 후 목욕하고 옷 갈아입고… 이런 건 편리하고 좋지요. 뭔가 그런 플러스 알파가 있으면 좋겠죠. 그러고 보니 나도 목욕탕에 한동안 가지 않았네요."(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씨, 요즘 도너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보다 선택권이 늘었다고 생각하는데(참고로 크로와상 도너츠를 좋아합니다) 무라카미씨의 반응이 궁금해서 편지했습니다. 좋아하시는 도너츠가 ‘프렌치 크롤러’였던 것 같습니다만, 변화는 없나요? 꼭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여성, 38세)

"나는 평범한 일반 도너츠나 올드패션드, 계피 도너츠밖에 먹지 않습니다. 너무 단 건 질색입니다. 크로와상 도너츠? 어떤 도너츠인지 상상도 되지 않네요. 내가 찾는 건 소금 도너츠입니다. 그런 건 어디에 있는 걸까요?"(하루키)

"맛있는 식사 때마다 초대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연락을 필요할 때만 하는 타입의 사람이인데, 맛있는 식사에 초대할 때만 연락이 옵니다. 나한테 관심을 갖고 있는 건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나도 여러가지를 물어보거나 하지 않네요. 싫진 않아서 1~2개월에 한번 정도 식사를 해 온게 거의 1년이 됩니다. 이 사람은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맛있는 밥에 관심이 있는 걸까요? 이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괜찮을지 몰라서 상담합니다."(여성, 33세)

"어려운 질문이네요. 아마 당신을 좋아하지만 잘 표현을 안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항상 밥 먹는 걸로 끝나버리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자기 감정을 밖으로 잘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 문제는 당신의 생각이군요. 끌리는 건지, 아닌지. 당신의 문맥으론 그걸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조언할 수가 없습니다. 보통 여성은 이럴 때 조금씩 상대의 기분을 탐구해 가는 건데, 그 부분을 연구해 보세요. 항상 식사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씨, 어떻게 지내세요? 무라카미씨의 수필을 사랑해요. 에세이집을 낼 계획이 있나요?"(51세, 여성, 의사)   "내 수필은 맥주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겁니다. 본작(본업)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또 곧 (에세이를) 쓰게 되죠."(무라카미 하루키)

 

아닌게 아니라 개인적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수필이 더 재밌게 읽힌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만큼 하루키라는 작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소질이 있다는 얘기다. 이번 '온라인 하루키 상담소'에 소개되고 있는 수많은 '질의 응답'들도 가만 보다보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마음 상태'나 '사고방식'이 어떻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번 질의응답들도 어쩌면 '장삿속'이 훤한 신쵸사 출판사에서 바로 책으로 엮어낼 것 같다. 아무튼 일본 작가 하루키는 '세계성'과 '인간적 보편성'을 동시에 갖춘 보기드문 '재간둥이'처럼 느껴진다. 본인 스스로는 부인할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