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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선이 의미하는 것

스카이뷰2 2015. 2. 2. 13:11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왼쪽)과 러닝메이트 원유철 의원.(윤창원 기자 사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선이 의미하는 것

 

 

어제 오후 여의도 쪽에서 일하는 후배가 찾아왔다. 그 후배는 "내일(2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유승민 의원이 15표 정도차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반신반의했다. 상대후보인 이주영의원이 박대통령으로부터 ‘공공연한’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결과가 ‘감히’ 나올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그러나 좀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결과 유승민이 84표 이주영이 65표를 얻어 19표나 차이가 나면서 유승민이 이겼다. 어제 후배의 예측보다 4표나 더 나온 것이다. 퍽 이례적이다. 박대통령은 오늘 원내대표 선거를 의식해선지 몰라도 오늘 열릴 국무회의를 내일로 미루고 의원직을 겸하고 있는 황우여 최경환 김희정 등 3인의 각료가 투표권행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당연히 그들은 투표장에 모습을 드러내 대통령뜻이 어딨는지를 몸소 보여줬다.

 

하지만 이들 각료 3명이 보나마나 이주영을 찍었을 텐데도 승리의 여신은 대통령의 ‘간절한뜻’마저 거스른 채 ‘탈박(탈락한 친박)’이라는 유승민에게 월계관을 씌워줬다. 마침 오늘이 대통령의 64세 생일날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의 마음은 영 편치 않게 됐다.

 

오늘 선거결과로 인해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던 ‘박근혜 전성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정부 들어 국회 내에서 친박 친이 대결구도의 선거는 오늘까지 합해 모두 다섯 차례 치러졌지만 모두 ‘박근혜 계’가 완패하는 참담한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때 노골적으로 박대통령이 밀어준다고 주장했던 김황식이 대표적 비박계 정몽준에게 패한 것을 비롯해 국회의장 선출때도 비박 정의화가 친박 황우여를 가볍게 눌렀고 작년 7월 당대표 선거에선 김무성이 선출됨으로써 친박 좌장 서청원은 '말발'을 잃게됐다.

 

 

TK아성 대구시장 후보선출때도 친박을 누르고 비박이 이기는 이변도 일어났었다.  그리고 오늘 원내대표 선출에도 대통령이 음으로 양으로 밀었건만 저렇게 친박이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야말로 ‘박근혜 명령’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원래 국회의원들이란 ‘선거 승리’로 그 존재이유가 증명되는 특이한 부류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선 ‘선거에 떨어진 정치인은 사람도 아니다’라는 속언이 있을 정도다. 이 말은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2016년 4월 총선이 1년여 정도 남았지만 선거를 의식한 현역의원들은 자신들의 ‘명줄’을 쥐고 있는 당내 지도부의 ‘강력한 힘’이 절실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뜻’을 고분고분 받들 스타일인 이주영으로선 아무래도 내년 선거를 곱게 치를 수 없을 것 같은 계산이 나온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선거판에서 ‘박근혜의 힘’은 작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자 현역의원들은 앞다퉈 대통령과 ‘각’을 세울 줄 아는 남자로 소문난 유승민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다.

 

재밌는 건 당대표인 김무성과 국무총리 지명자로서 요즘 청문회 준비로 진땀을 빼고 있다는 이완구는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면서 기권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한 표'가 아쉬운 대통령으로선 이완구의 '기권'에 조금은 아쉬워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무성이 유승민이 당선돼야 일하기 편했을 텐데도 그런 제스처를 취한 건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표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 같은 평민도 어제 오후쯤 유승민이 15표차로 이길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당대표인 김무성은 어쩌면 당연히 유승민이 이긴다는 정보를 알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대통령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라도 기권을 했을 것으로 본다.

 

오늘 패배한 65세, 4선의원 이주영은 이번 도전으로 원내대표선거에만 무려 4차례나 입후보했지만 결국 이젠 더 이상 원내대표라는 ‘요직’은 해보기 어려워진 것 같다. 그가 원내대표가 되건말건 그런 건 별 관심없다. 단지 그가 지난 세월호 수습 국면에서 무슨 도인처럼 염색도 안한 백발의 장발에 수염까지 길게 기르고 왔다갔다했던 게 좀 이상해 보였다.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적잖은 사람들은 심지어 대통령까지 그를 ‘일 잘하는 장관’으로 인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좀 야속하게 말한다면 이주영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더 이상 정치일선에 나서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세월호 참사 때 3백명 가까운 어리디 어린 그 아까운 생명들을 하나도 구하지 못한 채 바다 속으로 사라지게 한 그 엄청난 사건에도 도대체 이 나라 정치권에선 누구하나  진정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진 않았었다. 그게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아무리 대통령 뜻이라지만 사의를 표한 국무총리의 사표를 반려하고 다시 그 자리에 눌러 앉혔던 것 자체부터 ‘우스운 쇼’ 같지 않았나 말이다. 당시 해수부 장관이었던 이주영의 경우에도 아무리 뒷 수습을 해야했다지만 일단 그는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나야했다고 본다. 정 뒷수습을 하고 싶었다면 그냥 ‘백의종군’ 민간인 신분으로 봉사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의 진정성은 보다 더 빛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턱수염 휘날리는 현역장관으로 화려하게 종횡무진 일 잘하는 장관의 이미지를 얻었고 그 여세를 몰아 오늘 저렇게 원내대표에까지 도전했다가 ‘고배(苦杯)’를 마신 것이다. 이주영이 19표차로 원내대표 선거에서 낙선했다는 건 박대통령에게도 큰 상처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세상민심이 냉정해졌다는 말이다.

 

유승민은 당선 일성으로 "대통령께서 민심에 더 귀를 기울이셔야 한다"는 특유의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예민한 A형 답게 유승민은 얼마전에도 “청와대 얼라들‘이 일을 망치는 거 아니냐는 날선 비판 멘트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현역 대통령‘을 어려워하고 잘 받들어 모시겠다는 이주영과는 아주 다른 스타일로, 아직은 '젊은 남자'티가 나는 57세 유승민이 선거에서 승리한 건 그만큼 '강한 힘'에 대한 현역의원들의 심리가 절박했던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제 새누리당은 더 이상 청와대 눈치만 보는 ’거대한 공룡집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박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훨씬 더 험난해 보인다. 세상일이 원래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대통령은 어쩜 뼈저리게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랑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제 26%까지 내려갔고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무려

63%나 된다. 그만큼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싸늘해졌다는 말이다. 그런 시점에서 한때 ’박근혜대표 비서실장‘이었지만 ’탈박‘으로 분류되는 유승민이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당선됐다는 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당연한’염량세태(炎凉世態)‘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대통령은 이제 ’왕년의 인기‘에 더 이상 연연해 하지말고 바른 소리 잘하는, ‘진정한 젊은 충신들' 의 새로운 직언에 귀를 기울이면서 허심탄회한 자세로 일해야만 할 때인 것 같다. ‘유승민 당선’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