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없었던 일로 한다는 정부의 황급한 정정발표가 있긴 했지만 지난 2월3일 박대통령이 “골프 활성화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를 받들어 특별소비세 인하 필요성을 밝혔다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인터넷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최 부총리가 “국내에서 골프 관련해서 특별소비세, 개별소비세 말씀하신 대로 너무 침체가 되어 있어서 해외에 가서 많이 한다”며 한국에서 골프장을 이용할 때 특별소비세나 개별소비세가 부담이 돼 해외 골프장으로 가니 관련 세금을 인하해 국내 골프장 이용을 유도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게 네티즌들의 화를 돋운 것이다.
가뜩이나 담배값 인상이나 연말정산 등의 각종 '꼼수 증세'로 머리끝까지 화가 오른 국민들은 인터넷상에서 한껏 목청을 돋우며 대통령과 정부를 성토했다. 대통령의 뜬금없는 '골프 활성화' 지시는 그야말로 불붙은 민심에 휘발유를 끼얹은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네티즌들은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발언”이라고 성토하고 나섰다.
쓴소리 잘하는 진보 인사 진중권은 "서민 증세, 골프 감세. 이분들이 드디어 정신 줄 놓으신 듯"이라는 말로 비아냥 댔다. 어제 TV뉴스에 나온 박대통령의 얼굴은 요근래 보기 드물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좀 잘해볼려고 말한 골프 활성화' 방안 마련하라는 대통령 말씀 탓에 지지율은 철통 지지파였다던
60대 이상 노인들조차도 등을 돌리고 있다니 대통령의 얼굴빛이 사색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골프 활성화 지시는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기 전 티타임에서 나왔다. 찻잔을 들고 대통령 앞에 우루루 서있는 각료들의 모습이 영 어설펐지만 그래도 공무원들이 골프를 쳐도 된다는 뉘앙스의 말이 나오자 각료들은 모처럼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곧 물러나는 정홍원총리가 문체부 장관부터 치시죠라는 '덕담'을 하자 별 우습지도 않은 말인데도 각료들은 일제히 웃었고 대통령은 언중유골처럼 "골프치시라니까 그렇게 기쁘세요 호호호"하는 해석하기 쉽지 않은 멘트를 날렸다. 이를 놓고 각종 매스컴에선 골프해제령이다 아니다로 갑론을박을 하루종일 해댔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SNS와 온라인 뉴스 댓글엔 “박 대통령은 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아웃 오브 안중(신경 끔)”이라는 강한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골프가 뭐길래!
................................................................
*아래는 오래전 우리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다시 보는 읽을 거리로 소개합니다.
골프가 뭐 길래!
한 5백년쯤 전 옛날, 영국 시골에 사는 양몰이 목동이 있었다.
어느 날 이 목동은 발에 걸린 작은 돌을 양몰이 작대기의 구부러진 부분으로 내리쳤다. 그랬더니 공교롭게도 그 돌이 언덕 토끼굴에 들어가고 말았다. 신기하게 생각한 그 목동은 친구 목동들과 함께 그 굴속에 다시 돌을 쳐 넣으려고 했다. 이것이 요즘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는 골프라는 운동의 기원이다.
그러니까 맨 처음에는 시쳇말로 서민층 아니 하류층 스포츠였던 셈이다.
‘그 시작은 미미하되 나중은 창성하리라’는 말처럼 화려하게 성장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위풍당당한 골프’가 된 것이다. 요새야 골프는 ‘클래스 있는’ ‘인품을 알 수 있는’ ‘인생을 배우는’ 아주 고귀한 스포츠에 속하는 것 같다. 게다가 ‘자본주의 도망’은 못가, 아무나 칠 수 있는 게 아니라 ‘돈’이 받쳐줘야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물심양면의 귀족스포츠’가 되고 만 것 같다.
다른 스포츠보다 더 ‘돈’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서 골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권력’으로도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신예 사회학자라면 골프와 계급에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 좀 극단적인 표현이겠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골프를 치는 계급과 치지 못하는 계급’으로 나뉘어 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골프는 단순한 ‘취미’의 경지를 벗어나 한 인간을 가름하는 ‘잣대’역할마저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 국민처럼 ‘평등’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골프 치는, 있는 사람들’ 꼴은 그냥 봐주기 좀 뭐한 것 같다는 것도 이해가 갈만하다.
더구나 ‘사회지도층’ 행세를 하는 국회의원쯤 되는 사람들이 그 ‘특권’을 이용해 평일 골프를 즐겼다는 소식을 접하면 ‘국민 분노’는 유독 강하게 불타오르는 것 같다.
우리는 종종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그 위세 좋던 국회의원들이 혼비백산해 화장실로 ‘대피’하거나 ‘딸 같은’ 어린 여기자에게 구구하게 변명을 늘어놓는 의원들의 평소와는 다른 ‘비굴한 톤’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럴때면 참 딱하다는 느낌과 함께 섬광처럼 ‘골프가 뭐 길래!’라는 의문이 떠오른다.
정치인들의 ‘골프 스캔들’ 은 심심하면 터져나온다. 여당의원들이 수해때 다른 곳도 아닌 바로 그 수해현장의 골프장에서 유유자적 골프를 치다 들통 나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그때도 나라가 떠나갈 듯이 매스컴에선 ‘골프 친 죄인’들을 단죄하고 나섰지만 그 이후 야당 의원들은 외국 나가서 ‘쳤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정치인에 대한 불신만 깊어지는 꼴이 되고 만적도 있다.
평범한 소시민인 나로선 동네에 있는 골프연습장 옆을 버스를 타고 가다 구경한 것이 골프에 대해 아는 전부여서 ‘골프가 뭔지’ 전혀 모른다. 그래선지 왜 정치인들이 그토록 골프 삼매경에 빠지고 마는지 신기하기도하다.
정치인과 골프 스캔들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몇 해 전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가 펴낸 ‘골프장에서의 대통령, 백악관의 골프이야기’라는 책에 따르면 ‘미국인의 우상’ 케네디 대통령도 ‘국민들 몰래 골프를 쳤다’고 한다.
클린턴 대통령도 ‘골프장 구설수’가 끊이질 않았다. 그는 기자들에게 아예 대놓고 “골프장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골프중독증세가 심했다고 한다. 미셸 위나 박세리가 클린턴과 골프라운딩을 함께 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매너 좋기로 소문난 클린턴이지만 ‘골프 매너’만큼은 별로라고 할 정도로 골프는 그 사람의 ‘인격’과는 별개로 ‘맹목적 골프 추수주의’를 요구하는 별난 스포츠인가보다.
그래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골프에서 인생을 배웠다. 골프는 필수 과목”이라면서 삼성 임직원에게 골프를 거의‘강요’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고 보면 골프는 예사 운동은 아닌 것 같다.
듣기로 골프장은 우선 경관이 수려한 한적한 교외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다고 한다. 물론 지금이야 우리 같은 서민도 ‘자가용은 굴리고 살지만’, 그 차를 몰고 골프장까지는 아직 가보지 않은 형편이어서 골프장 주변 경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친구들 말로는 ‘그곳에 가면 스트레스가 좍 풀릴 정도로 시원하다’고 한다. 우선 공기가 좋고, 눈에 좋다는 ‘녹색의 잔디’가 한없이 펼쳐져 있으니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줄 것만은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중 우스개 말로 ‘한번 발 잘 못 들였다가 빠져 나오기 어려운 3대 성인 오락’ 중 하나가 바로 골프라고 한다. 나머지 두 가지로는 춤과 도박이라는데 우리같이 무미건조하게 그날그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인지 불행인지 이 3대 오락과는 ‘연분’이 전혀 닿지 않은 인생이라서 그런지 그 ‘신비의 세계’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오죽하면 신종도박 ‘바다이야기’에 빠져 ‘자살’로 막을 내린 사람이 그렇게도 많겠는가. ‘춤바람’이야 이젠 고전 오락이 됐지만 이것도 여성들이 빠져들 경우엔 ‘가정’도 버릴 정도라니 그 ‘중독성’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골프중독’은 도박이나 춤바람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것 같다. 아무래도 골프에는 들어가는 기본경비가 주로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이어서 그 중독성이 더 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골프장에 서기위해선 장비와 의복, 차량까지 ‘돈’과 연결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한번 ‘필드’에 나가면 최소 30만원은 들어가야 하니까 평범한 월급쟁이나 구멍가게 주인이라면 언감생심으로 넘보기 어려운 운동이다. 그러니 그걸 ‘누리는 사람들’에 대해선 거의 ‘적개심’수준의 질시가 따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는 정치지도자 연하는 사람들의 갖가지 ‘추태’를 보면서 여당에 대한 기대는 접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와중에 이번 ‘골프사태’가 아예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꼴이 된 것 같다.
골프는 국민정서를 재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이상하게 우리 국민들은 골프에 대해서만큼은 용서가 안 된다는 정서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국민정서를 외면할 정도로 ‘골프에 빠져버린’ 여당의원들을 보면서 골프에서 ‘인생을 배운다’는 말이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골프가 뭐 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