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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쪽 소설가 복거일이 진단한 박근혜 대통령-민주 사회의 군주적 지도력

스카이뷰2 2015. 1. 16. 12:22

                

 복거일(소설가)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 외부위원으로 활동중인 소설가 복거일씨가 15일 중앙일보 시평에 작심하고 박근혜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퍼부었다. 특히 박대통령을 시대착오적인 '군주적 지도력'을 소유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렇게될 수밖에 없었던 '박근혜의 성장배경'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대통령의 딸'로 20대초반부터 퍼스트레이디를 해왔기에 "'맨땅'을 밟지 않고 살아왔고 자신이 뜻한 대로 모두 움직였고 자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 미소 한 점에 모두 감지덕지했다. 자연히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은혜를 바라는 탄원자들로 여기게 되었다."고 평했다. 

 

또 "군주적 지도자여서 고마움의 문턱이 높다. 백성은 당연히 충성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드러낸 적이 드물다. 좌파 이념의 확산을 막아 당선의 사상적 바탕을 마련한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한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자유주의 지식인'속에는 당연히 복거일 자신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문득 대선이 끝나고 나서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의 전화'를 받았다는 정윤회의 고백이 떠오른다. 항간엔 이 '감사 전화'받은 사람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소문이 퍼져있다. 그만큼 박대통령이 '고마움'표현에 인색하다는 얘기다.  

 

복거일씨는  박대통령에게 거의 모든 국민은 '신하'이지만 유일하게 '대등한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 3년전 죽은 김정일위원장을 꼽고 있다. " 유일한 예외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고맙게도, 김 위원장은 입지가 좁은 자신이 고귀한 혈통임을 알아보고 대등하게 대해주었다. 박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이나 처음으로 신분이 대등한 사람을 만나 대화다운 대화를 했으리라. 박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사악한 무력 공격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었던 일은 그런 사정을 고려해야 설명이 된다. 가장 우아하게 산 군주인 살라딘이 지적한 대로, “왕은 왕을 죽이지 않는다.

 

위에 올린 석 장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박대통령은 자신의 '방북기'에서 김위원장에 대해 비교적 '호평'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점을 복거일 소설가는 놓치지 않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시각이 요즘 소위 '탄압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종북인사'들에겐 좋은 공격거리가 되고 있다. 그들은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냐"라는 전단지까지 뿌려가면서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는 중이다. 이 점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문제적 소지가 많아 보인다.

 

'올해 70세가 된 복거일씨는 종편에도 가끔 출연, 소설보다는 보수쪽 논리를 전파하는데 힘써온 인물이다. 

1987년 '비명을 찾아서'라는 소설로 데뷔한 복씨는 이문열만큼 대중적 인기작가는 아니지만 '문제적 소설'을 간간히 발표해온 작가다. 한때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자'는 주장을 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어선지 요즘도 자본주의 경제논리의 '효율성'발언을  종종 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의 요청으로 이 위원회 멤버가 된 복거일씨가 주장한 박대통령의 '군주적 지도력'은 비교적 박대통령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는 듯하다. 보수쪽 인사치고는 꽤 솔직하고 과감한 '대통령 비판'글이다. 보수인사들 중 이제까지 박대통령을 향해 이렇게 용감한 돌직구 스타일의 '상소문'을 올린 선비는 없었던 것 같다. 박대통령으로선 그의 이런 글을 보면 눈쌀을 찌푸리며 화를 낼 것같다.

 

 

*아래 복거일씨의 시평을 조인스닷컴에서 스크랩했습니다.

 

민주 사회의 군주적 지도력-소설가 복거일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온 지도력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사정이 ‘소통’ 문제를 부각시킨 듯하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렸고 높은 지지율을 누려 왔는데, 시민들과 소통하지 못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 독특한 지도력을 이해하려면, 고귀한 신분을 누린 박 대통령의 이력을 고려해야 한다. 6·25전쟁이 한창일 때 고급 장교의 딸로 태어나 5·16 군부정변으로 절대권력을 쥔 집안에서 자랐고 스물이 되기 전에 ‘퍼스트 레이디’로 국가 운영에 참여했다. 정당 정치에 참여한 뒤엔 단숨에 인기 높은 지도자로 떠올랐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덕분에 박 대통령은 평생 맨땅을 딛지 않았다. 자신이 뜻한 대로 모두 움직였고 자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 미소 한 점에 모두 감지덕지했다. 자연히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은혜를 바라는 탄원자들로 여기게 되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신분적으로 높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았고 차츰 군주적 지도자가 되었다. 박 대통령의 지도력이 본질적으로 군주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설명된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영국 엘리자베스 1세를 본받으려 한다고 했다. 민주 사회의 지도자가 절대군주제가 자리 잡았던 16세기 유럽의 군주를 역할 모형(role model)으로 삼은 것은 시사적이다.
 군주적 지도자는 고마움의 문턱이 높다. 백성은 당연히 충성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드러낸 적이 드물다. 좌파 이념의 확산을 막아 당선의 사상적 바탕을 마련한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한 적도 없다. ‘경제민주화’라는 사회주의 공약을 느닷없이 내걸 때도 그들에게 설명하거나 양해를 구한 적이 없다. 군주가 언제 백성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던가?

 물론 모든 것들이 자신의 신분에 걸맞아야 했다. 직책 없는 국회의원일 때도 비서실장을 두었다. 모든 문제에서 자신의 말은 최종적 권위를 지녀야 했다. 어떤 추문이든 “근거 없다”고 자신이 얘기하면, 그것으로 끝나야 했다.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대사에서도 자신이 전에 한 말을 바꾸지 않는 것이 유일한 원칙이라고 선언했다. 장기적 비용과 혜택을 비교해서 결정한다는 보편적 원칙은 백성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군주제에선 군주의 의사가 법이나 도덕보다 앞선다. 군주가 말을 바꾸지 않아서 백성들이 군주를 믿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자연스럽게 궁정이 되었다. 궁정에선 탄원자들의 상소와 군주의 윤허만이 오간다. 승지들과 내시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재상들이 군주와 대면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모두 군주의 명쾌한 지시대로 움직이면 된다. 국무위원들의 어지러운 토론은 우아한 어전회의의 품격을 낮출 뿐이다.

군주와 신하들 사이엔 대화가 있을 수 없다. 누가 신분이 낮은 사람들과 대등하게 흉금을 털어놓는가?

유일한 예외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고맙게도, 김 위원장은 입지가 좁은 자신이 고귀한 혈통임을 알아보고 대등하게 대해주었다. 박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이나 처음으로 신분이 대등한 사람을 만나 대화다운 대화를 했으리라. 박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사악한 무력 공격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었던 일은 그런 사정을 고려해야 설명이 된다. 가장 우아하게 산 군주인 살라딘이 지적한 대로, “왕은 왕을 죽이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지녀온 취향과 생각은 나이 들어서 바꿀 수 없다. 시민들이 무슨 얘기를 해도, 박 대통령은 자신의 행태를 바꿀 수 없다. 이제 바꾸려 들면, 혼란만 나온다. 바꿀 수 없는 지도력의 특질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은 좋은 추종력(followership)이라 할 수 없다. 한 지도자가 보이는 지도력에서 장점들과 단점들은 한 특질의 다른 면들인 경우가 흔하다. 단점을 억지로 고치려 들면, 장점이 약화될 수도 있다.

 민주 사회에선 추종력이 지도력보다 오히려 중요하다. 응집력이 약한 우리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궁극적으로, 시민들이 지도자를 뽑지 않는가? 박 대통령의 지도력엔 비판받을 면들이 물론 적지 않지만, 장점들도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세운 이상을 이루려 나름의 원칙에 따라 처신한다. 그런 자세는 우아하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지도자의 우아함이 숭상받는 시대가 아니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취향을 지도자에게 강요하는 시대다. 시민들의 눈 밖에 난 측근 몇 사람을 바꾸는 것이 그리도 힘든가? 미국 시인 시어도어 레트키의 성찰대로, “자신에게 구애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자세가 아무리 우아하더라도. (It is fatal to woo yourself, However graceful the posture.) [중앙일보] 입력 2015.01.15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