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스타일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고령자 우대'라는 점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76세 '노인'을 국정원장같이 매우 중요한 직책에 등용한 적은 없다. 하지만 박대통령은
이번 인사에서 69세 이병기 국정원장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불러들인 뒤 그 후임 자리에 76세이병호 씨를 앉힌 것이다. 1940년생으로 20년 전 안기부 제2차장을 지낸 인사다.
공무원 정년이 60세, 정무직이라도 보통 65세엔 공직을 마무리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병호 신임 국정원장은 그야말로 초고령 고위공직자의 '표상'이 된 셈이다. 이 원장은 무려 20년전 국정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말그대로 '올드보이의 귀환'인 셈이다.
다 알려진대로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고령 인사들을 중용해 왔다. 정홍원 전 총리는 2013년 임명 당시 만 69세였고, 허태열 전 비서실장도 임명 당시 68세였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도 69세에 원장직을 맡았다. 비록 60대 후반이지만 어쨌든 만만치 않은 고령자들이다.
사임예고까지하고서도 50일 가까이 질질 끌다 드디어 퇴임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1939년생으로 2013년 임명 당시 75세였다. 후임인 이병기 비서실장은 1947년생으로 김 전 실장보다는 젊지만 그래도 65세 이상부터 노인으로 규정하는 법적 시각에서 보자면 엄연히 고령인 셈이다.
물론 요새야 100세 장수시대이기에 60대는 '신중년'이라는 귀여운 별칭으로 불리긴 하지만 대한민국 공직 중 제일 '격무'에 시달린다는 대통령비서실장직을 수행하기엔 물리적으로 좀 나이가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오바마대통령 비서실장 데니스 맥도너는 45세다.
이 실장 직전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유력 후보 현명관 마사회장도 1941년생으로 75세의 고령이다. 그밖에도 고령으로 요직을 맡은 인사들은 이 정부 들어 유독 많다. 4성 장군출신으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내다가 며칠 전 주중대사로 내정된 김장수씨도 68세다.
지난해 임명된 이인호 KBS 이사장과 윤종승(방송인 자니윤)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는 1936년생으로 올해 팔순이다. 임명 당시 79세였다. 2013년 임명된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도 이 이사장, 윤 감사와 팔순 동갑이다. 유흥수 주일대사도 1937년생이다. 역대 주일대사 중 최고령자다. 정부 출범 초기 초대 국무총리로 내정됐다 낙마한 김용준씨도 75세 고령이었다.
전세계적으로 고령화시대에 접어든 세계적 트렌드를 감안해 볼 때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순 없다. 고령자들 입장에선 대통령의 '노인 기용'을 희망적 징표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 유독 ‘올드보이’들의 귀환이 많아진 것에 우려를 표명하는 시각들도 적잖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의 '고령자 요직 기용'에 걱정들을 많이 하고 있는 듯하다. 21세기 '총성 없는 정보전 시대'에 76세의 고령자가 국정원장을 맡았다는 건 그리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박근혜대통령이 '아버지 시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단순히 고령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박정희시대’의 인물들에 천착하는 경향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김기춘 전 실장과 허태열 전 실장 모두 박정희시대 고시 출신으로 박정희 전대통령 밑에서 관료 일을 시작했던 '까마득한 사람들'이다. 일각에선 대통령이 22세때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왔기에 '고령자'들에 익숙해진 점도 무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남재준 전국정원장이나 신임이병호 국정원장 내정자 등도 박정희시절 당시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이 정부 초기 국방장관에 내정됐다가 낙마한 김병관씨 같은 사람은 40여년전 육사수석졸업생으로 박정희전대통령으로부터 상장을 받은 인연으로 장관직에 내정됐다가 결국 낙마했다. 웃지못할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한 시사평론가는 이런 현상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본받고 싶은 사람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일 것이고, 아버지를 많이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일해 보면서 검증이 됐던 사람들을 쓴다. 박 대통령 선거 때 활동한 ‘7인회’가 주요 요직에 있는데 그 분들이 추천할 만한 나이대가 대부분 60-70대”라는 것이다.
또 다른 시사평론가는 ‘부성결핍 콤플렉스’로 박근혜 정부 인사를 설명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어머니를 먼저 잃어서 어머니 역할을 했고,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의 모습이 반반씩 섞여 있다”며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이제 박정희 대통령을 닮아야 하는데 박 대통령에겐 아버지 같은 선도형 리더십은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이 꼭 들어맞는 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령자 기용'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의 중요 프레임으로 볼 수있다. 이런 현상을 개인의 호, 불호로 따지기 앞서 '국가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우려섞인 진단에 대해 박대통령이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측근참모들의 평균 연령이 40대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젊은 게 꼭 좋은 게 아니고 나이든게 꼭 나쁜 건 아니겠지만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할 엄중한 국사(國事)를 돌보는데는 어느 정도 물리적인 체력이 뒷받침되어야한다는 걸 감안할 때 70세 이상 고령자를 국정의 고위 관직에 앉힌다는 건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닌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