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소한 것이라면 사소한 것일 수 있는데 자꾸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다.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이 기독교 목사들과 신자들이 참석한 조찬 기도회에서 한 연설의 한 문장도 별거 아닌 듯한데도 신경쓰이게 한다.
- 아무래도 그 연설문을 써서 대통령께 올린 연설담당 비서관의 기독교에 대한 '무지함'탓이 크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대통령으로선 '작은 실수'를 했다고 본다. 다름아니라 박대통령이 자신의 '통치스타일'을 "양떼를 돌보는 목자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라고 규정했다는 대목이다. 이 구절이 영 찜찜하다는 말이다.
-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1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47회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양떼를 돌보는 목자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대한민국의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거다. 기독교에선 '목자'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그렇기에 인간이 스스로를 '목자'라고 여기는 건 오만한 발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성경구절에 이런 대목이 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한 것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높게 하시며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 도다. 그가 내 혼을 소생시키고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들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시편 32장 1·2·3절)”.
- 그렇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목자의 마음으로'라고 한건 하나의 비유법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기독교인들에겐 한낱 인간이 말해서는 안되는 '실례'되는 비유라고 할 수 있겠다. 대통령 말 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목자시고 우리 국민은 양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이건 대한민국 헌법 1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에도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치인들은 더 이상 '목자'가 아니고 국민은 '순종하는 양떼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국민을 진정성 있게 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민을 아 래로 내려다 보는 그런 자세여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 박근혜 대통령은 또 연설에서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갈등과 분열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신뢰와 통합의 사회적 자본을 쌓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며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의 시련을 한 마음으로 이겨냈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다다를 수 있었듯이, 우리도 지금 이 갈등과 분열의 질곡을 극복해낸다면 새로운 축복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는 말도 했다. 그럴싸하게 들리는 문장이지만 별 감동없는 소위 말하는'영혼없는' 소리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조찬 기도회에 3년째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연설문을 작성하는 비서관들도
3년째 같은 일을 해오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목자'라는 합당치않은 어휘를 버젓이 썼다는 점은 연설문 작성비서들의 잘못임과 동시에 대통령도 신경을 미처 쓰지 못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니면 대통령이 스스로를 진짜 '목자'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7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박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을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어쨌든 박대통령은 1965년 성심여중 시절 영세를 받은 천주교 신자다. 세례명은 ‘율리아나’다. 당시 대모(代母)는 원로 여류시인 김남조(89세)씨가 맡았었다. 아주 옛날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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