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로로피아나 실크 블라우스(212만원)와 바지(111만원). ② 쿠치넬리 자켓(248만원)과바지(148만원).
③ 끌로에 자켓(175만원)과 바지(138만원). ④ 랑방의 원피스(295만원).<조인스-다음뉴스 사진>
대한민국 상위 1% ‘사모님’의 명품 VS 하위 1% ‘사랑 노동자’의 명품
오래 전 온라인 뉴스 코너에서 본 극과 극에 위치한 두 부류 여성들에 대한 기사제목이 내 눈에 오래 머물렀다. 대한민국 상위 1% ‘사모님’들과 하위 1% ‘사랑 노동자’들의 공통 코드는 ‘명품!’이라는 거다. 대한민국 최상위 1% 사모님들과 영등포 뒷골목 집창촌에서 ‘성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가는 젊은 아가씨들은 서로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양 쪽으로부터 ‘돌팔매’를 당할 지도 모르겠다.
사모님들은 그럴 것이다. “감히 얻다 대고 누굴 누구와 비교해? 그런 상것들과 우리를 같은 라인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모욕이다!” ‘性 노동자’ 아가씨들도 도끼눈을 뜨고 절규할 것 같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너희만 명품을 좋아할 권리가 있냐! 우리에게도 눈이 있고 감정이 있어. 이 잘난 X들아!”
실크 블라우스 한 장에 212만원, 바지 한 벌 111만원, 쿠치넬리 자켓 248만원, 바지 한 벌 148만 원, 끌로에 자켓 한 벌 175만 원, 바지 한 벌 138만원, 랑방 원피스 한 벌 295만원. 이런 가격표가 붙은 소위 ‘명품’들을 보면 이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등골이 찌릿해진다. 가슴 한 구석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도 들려온다.
물론 이 나이 되도록 ‘명품류’에 환호할 줄 모르는 명품치(痴)여서 단 한 벌의 명품 옷도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명품녀’들을 부러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명품을 사기 위해 ‘계(契)’를 들거나 적금을 붓는다는 소리를 듣고 웃다가 소태 씹은 듯 입맛이 썼다. 그렇게까지해서라도 명품하나 소유하려드는 가여운 서민들이 가엽다.
알뜰하게 돈 모아 명품을 입거나 걸치거나 신는다고 그녀들의 ‘신분’이 변화되진 않을 텐데. 물론 그런 그녀들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기분학적으로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됐다는 ‘망상(妄想)’이 선사하는 잠깐의 기분전환, 단 10분만이라도 행복한 환상을 만들어 주기에 ‘그 맛’에 산다면 이해는 간다. ‘마약 중독자’들과 '워너비 명품녀‘들의 정서적 행태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아무튼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한 장에 212만원이라는 가격을 보면서 오늘 아침 역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정 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연민과 서글픔, 그리고 그런 ‘명품’에 환호작약(歡呼雀躍)하는 상위 1% 사모님들과 그녀들을 적개심과 증오에 찬 눈길로 쏘아볼 하위1% ‘바닥녀’들의 한탄에 마음이 편치 않다. 여름 원피스 한벌에 무려 3백만원이나 한다니...(요즘은 3백만원짜리는 차라리 싼 축에 속한다.)
‘명품족’ 사모님들에게 일대일로 스타일 컨설팅을 해주고 쇼핑할 제품을 골라주는 ‘쇼핑 상담원’인 ‘퍼스널 쇼퍼’라는 직업도 있다.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옷 판매원인데 요즘은 이렇게 그럴싸한 영어 단어로 말하는 것 같다. 주로 백화점의 명품매장에서 일하는 그녀들의 연봉은 억대를 넘는다는 소문도 들린다.
잘나가는 퍼스널 쇼퍼에 의하면 요즘 명품족들은 똑 떨어지는 정장 대신 ‘크로스 코디(맞춰서 이것저것 조합해 입을 수 있는)’할 수 있는 캐주얼한 분위기의 세미 정장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가방 브랜드로 VIP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건 옛날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샤넬이나 루이뷔통이나 구찌다. 몇 해전 어느 대선후보 사모님은 같은 당 국회의원사모님들에게 한개 250만원하는 구찌 핸드백을 돌렸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물론 그 후보는 아깝게도 낙선했다.
그래서일까 영등포 집창촌에서 ‘생계를 보장하라’며 시위를 벌인 그곳 아가씨들 몇 명은 인근 쇼핑몰에 입점한 백화점 내 명품 매장에 몰려가 100원짜리와 50원짜리 동전으로 루이뷔통 가방(162만원)과 구찌 가방(126만원)을 구입하려고 했다.
놀란 매장직원들은 본사 측에 문의한 뒤 동전 결제를 거부했고, 성매매 여성들이 항의하자 112에 신고해 경찰이 출동했다고 한다. 그녀들은 경찰과 두 어 시간 대치하다 자진 해산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집창촌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루이뷔통’가방이 좋다는 ‘정보’를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녀들이 그렇게 ‘동전시위’로 명품구매 해프닝을 벌인 건 ‘살기위해서’라고 한다. 그녀들의 그런 모습이 처절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한터 여성종사자 연맹’이라는 모임까지 만든 그녀들은 영등포가 지역구인 아무개 여성의원 사무실에도 몰려갔지만 면담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화난 ‘한터’ 여성들은 ‘아무개야 내년 총선에서 보자’는 피켓까지 들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결국 그 여성국회의원은 총선때 공천조차 못받고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 뱃지를 달지 못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집창촌여성들의 ‘동전으로 명품구입하기’는 ‘동정(同情)없는 세상’에 대한 야유와 조소와 절규 같기도 하다.
문득 프랑스 영화 ‘동정 없는 세상’에서 주인공의 대사가 생각난다. “누구한테 화라도 낼 수 있다면.우리에게 삶의 목적이란 게 있다면. 우리에겐 뭐가 있지? 새로운 내일, 아무것도 없어! 남은 건 사랑밖에 없고, 그것처럼 힘든 건 없다.’
우루과이의 저널리스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밤거리의 여성’들을 일컬어 ‘사랑노동자’라고 명명했다. ‘성노동자’보다는 듣기에 덜 거북할 것 같다. 이 ‘사랑노동자’들이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동전’으로 사려했던 건 ‘명품’이 아니라 세상의 관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말한다. 가장 무서운 포주는 국가라고...
‘상위 1% 사모님들’이 “매우 중요한 파티에 가야 하는데 30분 만에 어울리는 명품 옷과 구두·가방을 골라 달라”는 식의 주문을 한 뒤 1천만 원짜리 자기앞 수표로 ‘신분’을 과시하는 그 순간 ‘사랑노동자들’은 100원짜리 동전만도 못한 자신들의 삶을 반짝반짝 윤이 나는 명품매장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해프닝을 하며 세상은 ‘명품족’들만의 것이 아니다는 절규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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