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항쟁때 희생된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는 다섯살 어린이.
이젠 이 어린이도 마흔이다. 세월무상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5·18 광주 항쟁’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면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운동권도 아니고 피 끓는 청춘도 더 이상 아니고 이 노래와는 별 관계가 없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인데도 이상하게도 이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어떤 마성(魔性)이 있는 것 같다. 가사도 처연하고 곡조도 슬프다. 특히 안치환이나 최도은 같은 가수들이 부를 때는 슬픔의 정조가 더 진하게 밀려온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5·18 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식’을 생중계하는 TV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오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다. 완전히 기습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선택이라고나 해야할까. 어쩌면 5·18 때 희생된 젊은 영혼을 위로하려고 만들었다는 이 노래에 얽힌 가슴 아픈 사연이 사람의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행사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정부와 정치인들 그리고 행사주최 측인 시민단체에선 이 노래를 ‘합창’하느냐 ‘제창’하느냐를 놓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보훈처장의 강력한 주장으로 ‘합창’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왔었다. 대한민국의 보훈처장 힘이 그렇게 센 줄 처음 알았다.
제창을 하면 국민통합에 저해된다는 보훈처의 궤변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결국은 대통령의 묵언의 지지를 얻은 듯한 육군중장 출신 보훈처장의 ‘강력한 추진력’덕분인지 ‘제창’은 금지됐고 합창만 했다는 게 아무리 봐도 개그 콘서트 한 장면 같다. 합창은 되고 제창은 안 된다는 게 21세기 개명천지에 될 법한 소린가 말이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은 취임첫해 광주 5·18 기념식에 참여는 했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부르지 않았다. 온라인에선 10여 년 전 노무현전대통령 내외가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해서 '우렁차게' 이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이 나돌고 있다. 이 노래를 입모아 부르고 있는 대통령 부부의 금실이 매우 좋아 보일 정도다.
이렇게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통령의 취향’이나 ‘사상’에 따라 불려지기도 하고 외면되기도 하는 ‘얄궂은 운명’의 노래인가보다.
어쨌든 대한민국 권력 서열 2위라는 국회의장이나 여야 양당 대표들이 입을 모아 ‘제창’을 주장했다지만 이
상하게도 정부가 힘이 더 센 탓인지 올해도 이 노래는 공식적으론 ‘합창’으로 그쳤다. 하지만 오늘 기념식에서 외과의사 출신이라는 정의화 국회의장과 김무성 문재인 여, 야당 대표가 ‘제창’했고, 국회의장 옆에 서 있던 부총리 최경환과 보훈처장은 화난 사람들처럼 입을 꽉 다문 채 서 있는 모습이 TV화면으로 생중계됐다. 그 모습이 사뭇 코믹스러웠다.
지난 대선 때 당시 박근혜 후보는 광주에 들러 “제가 광주의 눈물을 닦아 드리겠습니다.”는 감성어린 말로써 지지를 호소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5.18에 대한 평가가 다르고, 지정곡 제정은 보훈처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함으로써 ‘대통령의 뜻’이 어디에 있다는 걸 은연중 드러냈다. 우리나라처럼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그냥 제창으로 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넌지시 한마디 했더라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번에 공식적인 ‘제창곡’이 됐을 것이다.
사실 노래 한곡을 놓고 이렇게 논쟁을 하는 걸 보다보면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함께 ‘숭고한 광주의 그날’ 5·18을 기념하며 노래하겠다는데 그걸 정부가 말린다는 건 그 자체가 ‘국민대통합’ 정신에 어긋난다고 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이념 투쟁에 휘말려 ‘비공식적 제창’으로 불려진다는 걸 알면 ‘5·18 광주항쟁의
슬픈 영령’들은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정의화 김무성 문재인과 입다물고 있는 최경환과 보훈처장.(다음뉴시스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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