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만 10명 배출하고 원로 영화감독들이 많은 일본이 부럽다

스카이뷰2 2015. 5. 9. 21:10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난부요이치로,고바야시 마코토,화학상 시라카와 히데키,다나카 고이치-

    아래는 영화감독들.오시마 나기사,야마다요지, 미야자키 하야오, 구로사와 아키라)

    

 아카사키 이사무 ,                 아마노 히로시 ,            나카무라 슈지  

           (201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      

 

 

                                          

 

 일본이 부러운 두 가지  이유 -

노벨상 받은 원로 과학자들, 영화감독들의 노익장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물리학자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특별영예교수가  대전 KAIST에서 개막한 아시안 사이언스 캠프에서 강연했다는 소식이 휠체어에 탄 노 교수의 모습과 함께 실린 기사를 보면서 일본이 부러웠다. 고시바 박사는 카이스트의 젊은 학생들에게 “137억 년 전에 일어난 우주대폭발(Big Bang, 빅뱅) 3초 뒤의 우주 모습을 보여 달라. 이론적으로는 빅뱅 때 나온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의 우주 분포를 정밀하게 관측할 수만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라고 당부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라고 알려진 고시바 교수는 도쿄대 출신으로 2002년 ‘중성미자 존재 입증’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물리학 분야에서 일본인으로는 세 번 째 수상자이다.

88세인 고시바 교수는 노령과 소아마비로 불편한 몸 탓에 휠체어를 타고 연단에 올라섰지만 그의 강연은 청중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어느 해 가을 오후 나는 도쿄 긴자의 번화가를 걷고 있었다. 유명한 백화점 앞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노신사’가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내 옆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이 아닌 긴자에서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 그 사람이구나라고 기억이 떴다. 일본에 가기 직전 서울에서 봤던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 ‘AERA'에서 노벨 화학상을 받은 도쿄대 시라카와 히데키라는 교수에 대해 소개한 기사와 사진을 봤다. 그날 긴자에서 본 사람은 바로 그 노벨 화학상을 받은 시라카와 교수였다. 그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목례로 답했다. 초가을 햇볕 좋은 긴자거리에서 부인과 함께 걸어가는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를 볼 수 있었던 건 일본인 뿐 아니라 내게도 이유 모를 산뜻한 기분을 선사했다.

 

그렇다고 노벨상이 뭐 대단하다는 얘긴 아니다. 어쨌든 우리 대한민국에선 지난 2000년 DJ가 한국인으로선 처음 ‘노벨상 평화상’을 받은 게 최초의 기록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일본과 비교한다는 건 어리석고 기분 나쁜 일이지만 오늘 아침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인 노 교수의 인터뷰 기사는 어쩔 수 없이 ‘노벨상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것 같다.

 

일본은 일찍이 1949년 유카와 히데키라는 물리학자가 ‘중간자 존재 예견’으로 일본인 최초(아시아 최초)로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 후 1965년 토모나가 신이치로 교토대학 교수가 ‘양자전기 역학’으로 두 번 째 물리학상을 받았다. 세계는 차츰 일본 물리학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오늘 신문기사에 실린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는 2002년 ‘중성미자 존재 입증’으로 세 번 째 노벨 물리학상을 탔다.

 

그 후 2008년엔 물리학자 난부 요이치로, 고바야시 마코토, 마스카와 도시히데 등 세 명이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14년에도 3명의 일본인 물리학자가 우루루 노벨상을 받으면서 일본의 실력을 세계에 뽐냈다.  ( http://blog.daum.net/skyview999/15972242)

물리학분야 뿐 아니라 화학분야에서도 일본은 지금까지 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밖에도 일본에선 노벨 문학상을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비롯 1994년 오에 겐자부로 등 두 명이 수상했다. 1974년 총리출신 정치인 사토 에이사쿠는 평화상도 받았다. 그러니까 노벨상 수상자만 모두 19명이나 된다. 대단하다. 특히 물리학이나 화학분야에서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건 우리를 기죽게 만든다. 

 

벨상은 그렇다 치고 일본의 기라성 같은 원로 영화감독들의 존재감도 인정해주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하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전설적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는 일본 영화감독의 대명사이자 ‘최고의 문화상품’으로서 전 세계에 일본영화의 존재를 알리는데 큰 공헌을 세웠다.1990년 쯤 도쿄영화제에 갔다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그 분위기는 지금도 부럽다. 속된 표현으로 말하자면 뭔가 '있어 보이는 나라'같다고나 할까.

 

老감독을 ‘보물’대하듯 하는 일본 영화계 인사들의 깍듯한 언행이나 그 자리에 참석한 세계 각국 기자들의 ‘선망어린 눈빛’은 일본 영화계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구로사와 감독은 1950 제12회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모스크바영화제 그랑프리상, 칸 영화제 그랑프리상을 휩쓸었다.

 

1990년 아카데미 특별 공로상 수상 등 주로 국제영화계에서 명성을 높이 쌓았다. 일본에선 한 때 그를 ‘해외영화제 용 감독’이라며 비판하는 시선도 있었다. 결국 구로사와 감독은 ‘흥행실패’가 잇따르자 한때 자살기도까지 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리기도 했다. 일본 문화계나 정부 당국에서 ‘구로사와 살리기 작전’을 성공시킴으로써 그는 말년까지 영화세계에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었다.

 

1997년 칸 영화제에서 ‘우나기’라는 작품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1926년~2006년)도 구로사와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준 감독이다. 72세 때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는 것만 해도 그의 ‘노익장’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 와세다대 출신인 이마무라 감독 역시 작고 직전까지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2013년 타계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 역시 일본 영화계의 대부같은 존재로 오랫동안 군림했다. 교토대학 출신의 이 ‘미남 감독’은 그 유명한 ‘감각의 제국’으로 일본은 물론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78년 만든‘열정의 제국’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오시마 감독 역시 70대 중반 무렵 까지 영화계에서 활동했다.

 

일본의 ‘국민영화’로 대접 받는 ‘남자는 괴로워’라는 시리즈 영화를 만든 1931년생 야마다 요지 감독은 도쿄대 출신으로 80세의 나이로 ‘남동생’이라는 영화를 만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금년 초인가 회색 슈트에 분홍색 스카프를 걸치고 나온 야마다 감독은 80세가 넘은 감독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멋쟁이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그는 한때 일본 최고의 여배우로 유명했던 요시나가 사유리(65)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로 여전히 정정한 현역임을 과시했다. 그의 ‘남자는 괴로워’시리즈 영화는 북한 故김일성주석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해 한때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영화감독 인생 50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3년에 만든 '동경가족'이라는 영화는 서울에서 도 상영했다.   

 

이들 80대 감독보다 조금 어린(?) 70대 감독 중에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도 여전히 현역이다. ‘만화영화’로 1300만 관객을 동원해 화제를 모았던 미야자키 감독의 명성 역시 세계적이다. 며칠전 그는 아카데미 영화제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본 영화가 한국영화보다 더 낫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영화라는 예술장르는 그렇게 케이스바이케이스로  어느 나라가 잘 한다 못한다며 획일적인 재단(裁斷)을 할 수는 없는 분야다.

 

하지만 일본에선 이렇게 80대 감독부터 70대, 60대,50대 감독군(群)이 탄탄하게 짜여져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우리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분위기 덕분인지 몰라도 2009년엔 당시 55세인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영화 '굿` 바이(Good &Bye)'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기도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감독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1936년생인 임권택 감독만이 유일하게 현역 감독으로 명함을 내밀 뿐, 70대는커녕 60대, 50대 감독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만큼 한국 영화계에서 ‘감독으로 살아남기’는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게 바로 ‘국력과 문화의 수준 차’라 할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과학이건 영화건 일본에선 각 분야마다 이렇게 ‘든든한 원로’들과 ‘젊은 세대’가 합력하며, ‘일본의 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일본의 저력’이 만만치 않다는 방증이다. 제일 어려운 학문이라는 물리학분야나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종합예술인 영화분야에서까지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이 ‘일본이 부러운 두 가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