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신문

국정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오바마는 토론의 달인-전문가들 압도하는 미국 대통령의 실력

스카이뷰2 2015. 5. 14. 11:43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둘째)이 12일 워싱턴DC의 조지타운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의견을 말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왼쪽에서 둘째)이 12일 워싱턴DC의 조지타운대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의견을 말하고 있다.  /AP 뉴시스

 

 

국정 토론회 패널로 나서 격론 벌이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실력! 

 

아침신문을 보면서 미국은 대통령을 잘 만난 나라같다는 '단순하고 어리석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건 워낙 총명하고 탁월한 오바마의 '달변'덕분이다. 오바마가 각계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즉석 토론'을 하면서 그 전문가들을 누르고 자신의 국정철학을 명쾌히 설명할 수 있다는 건 그가 그만큼 뭘 제대로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냥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인들의 흔한 립서비스가 아닌 명철한 두뇌로 국정 전반을 두루 알고 있는데다가 흑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살이 체험으로부터 얻어낸 삶을 보는 지혜가 '책상물림' 전문가들의 탁상이론을 제압한 것으로 보인다.      

 

아침신문에 따르면 오바마는 지난 12일 오전 11시 워싱턴DC의 조지타운대의 토론회에 참석했다. 700여명이 참석한 개스톤홀 무대 위 의자로 '현직 미국 대통령'이 3명의 다른  전문가 패널들과 함께 앉아서 토론할 것이라는 걸 참석자들은 그 순간까지 잘 몰랐던 모양이다.  이 대학의 존 드지오이아  총장이 '오늘의 손님'으로  소개한 오바마 대통령이 '축사' 정도는 할 것으로 예상했던 청중들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바마는 바로 패널용 의자로 가서 앉았다. 

 

빈곤 극복을 주제로 하는 난상토론회에 현직 대통령이 직접 패널로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수준이 어느 정도라는 걸 어림짐작할 수 있다. 토론 내내 대통령에 대한 무슨 '특혜'는 전혀 없었다. 우리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한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조차 1년에 겨우 한 차례 큰 '시혜'를 베풀듯 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대통령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은 아예 사전봉쇄당한다는 풍문도 떠도는 게 한국실정이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 1월 기자회견 때 우리 여성대통령은 기자가 좀 예민한 질문을 하자 대번에 안색부터 변했었다. 이러니 무슨 자유로운 기자회견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바마처럼 '시정 패널'들과 똑 같은 대우를 받으며 '좌충우돌 토론회'에 나섰다는 건 바로 '소통'을 논할 필요조차 없이 대통령과 국민이 같은 눈높이로 세상일을 논한다는 얘기로 그 자체로 평가받을 만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토론회에서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 J 디온, 하버드대 로버트 푸트남 교수, 보수 성향인 미국기업연구소 아서 브룩스 회장 등과 나란히 앉아 빈곤 극복의 방안, 기아에서 벗어나는 정책,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정치의 역할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대통령이라서 특별 대우한다는 게 고작 첫 질문을 하도록 한 것이었다.

 

 대통령이라고 시간을 더 주거나 발언 기회를 더 주지도 않았다. 오바마는 자신의 주장을 5분 하고는 다른 패널 주장을 10분 이상 경청했다. 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겠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처럼 국무회의 석상에서 한숨이나 쉬고 국회를 향해 훈계를 하는 모습을 TV 로 지켜봐온 우리 한국인들에겐 매우 낯선 풍경이다.  

한 시간 이상  열린 이 토론회에서 오바마는 미국의 양극화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을 했다.  "25명의 헤지 펀드 운영자 모두의 연봉을 합치면 미국 내 유치원 교사 모두의 연봉보다 많은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오바마는 또  "과거의 인종차별이 이제는 계층 차별로 나타나고 있다"고 미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미국의 대통령들이 금기시해왔던 인종 문제에 대해서도 오바마는 스스럼없이 말했다.  아버지 없이 자라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다 알다시피 오바마는 어린 시절 흑인 아버지와 이혼한 백인 어머니가 재혼하는 바람에 '의붓아버지'와  인도네시아에서도 잠시 살았다. 

 

오바마는 다시 하와이로 돌아와서는 백인 외조부모 밑에서 컸다. 말하자면 결손 가정에다 조손(祖孫)가정에서 자란 흑백 혼혈아동으로서 많은 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니 좀 할 말이 많겠는가. 어쩌면 이날 토론회에선 오바마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따라잡을 만한 패널은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는 자신을 자주 공격하기도 하는  보수 성향 폭스TV뉴스가 가난한 사람을 벌레 보듯 묘사한다는 지적을 하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이 이렇게 소외계층을 편드는 발언을 함으로써 국민과의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뤄낸 것이다. 대통령이라면 거의 '제왕'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으로선 미국 대통령의 소탈하고 친서민적인 발언이 그저 부럽고 낯설 뿐이다. 

 

메모지 한 장 들지 않고 맨손으로 나와 세계적 석학, 싱크탱크 대표와 맞짱 토론을 벌이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모습에서 바로 '미국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계 최고권력자가 쟁쟁한 변호사 출신으로 그 스스로 직접 체험했던 서민층 생활을 바탕으로 훤히 꿰뚫고 있는 국정전반 문제를 소상히 말하려고 토론에 나섰다는 건 미국 정치의 수준이 어느 정도라는 걸 증명해주는 바로미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토록 판단력이 뛰어난 오바마에겐 '문고리 3인방'이나 '십상시' 같은 국정농단의 혐의가 짙은 정치모리배들이 끼어들 염려가 없기에 미국 국민들은 오바마의 국정철학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직 대통령이 소탈한 모습으로 각계 전문가들을 실력으로 압도하면서 난상 토론을 좌지우지하는 모습! 미국이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는 걸 확인해주는 광경이다.

 

한국대통령이 저렇게 전문가나 공정성을 인정받는 언론인, 바른말하는 학자들과 함께 총명한 대학생들이 지켜보는 대학 강당에서 '라이브'로 토론을 한다는 건 지금으로선 아예 불가능한 현실이라는 게 좀 서글프다. 이런 자유토론이 아무렇지도 않게 열릴 수 있어야 대한민국은 정치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 정치, 아직은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