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신문

“메르스는 사스와 다르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

스카이뷰2 2015. 6. 9. 12:44

dong a.com 그림.

 

 

 

 

 

박원순 서울시장이 심야에 기습적으로 TV기자회견을 한 바로 다음날인 6월 5일 박근혜 대통령은 노란색 점퍼 차림으로 국립의료원을 긴급 방문했다. 이 모습을 보고 세간에선 대통령이 박원순땜에 열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울시장이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얘기도 나왔다.  

 

어쨌든 메르스 거점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이 “메르스 양상이 사스하고는 다르다”고 말했다는 신문보도를 보고 순간적으로 훔칫했다. 요즘 젊은이들 용어로는 '심쿵'했을 정도로 놀랐다. 이제까지 대통령이 메르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가 터져나온 기사여서 더  놀란 거다. 메르스가 사스보다 훨씬 더 다스리기 어려운 병이라는 게 메르스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인식인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사스의 경우엔 중국이나 동남아에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그런 질병 유입을 막아내는 것이었고 이번 메르스는 내국인에 의해 그 어떤 질병이 유입된 후에 의료기관 내의 여러 접촉을 거쳐 감염이 계속되고 있다”며 대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는 메르스는 '특이한 형태'여서 사스처럼 '쉽게' 막아낼 수 있는 병이 아니라는 뜻도 포함돼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좀 찬찬히 생각해보면 대통령의 그 발언은 어딘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 이런 보도를 보면서 며칠 전 지상파는 물론 종편에서까지 10 여년 전 노무현 정부시절 고건총리 지휘 하에 '사스 대응'을 딱 부러지게 잘 막아냈다는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온 걸 대통령도 어쩌면 '직접' 본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 뉴스를 보는 순간 대통령은 창피하기도 하고 화도 엄청 났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남하고 비교당하는 것이다. 어린애들도 다른 애들보다 잘한다고 할 경우엔 좋아하지만 남보다 못하다면 화내거나 짜증부린다. 오죽하면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하물며 최고 권력자가 흘러간 최고 권력자보다 못하다는 비교를 당할 경우, 그것도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대응책에서 뒤졌다는 지적에 대해선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이라는 우리 여성대통령으로선 당연히 더 화가 났을 법도 하다. 그러니까 '메르스와 사스는 다르다'는 얘기를 공개석상에서 한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 말은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말처럼 보여진다. 좀 궁색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어른스럽지 못하다고나 할까.   


어쨌든 여론에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박 대통령으로선 노무현 정부 때의 사스 대응과 비교해 현 정부의 메르스 대응이 한참 뒤졌다는 비판에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통령 말대로  노무현시절 쳐들어온 사스는 주변국들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퍼졌기 때문에 정부가 초기부터 범정부 대책반을 꾸려 강력히 대응해 잘 막았다고 치자, 또  메르스가 머나먼 중동에서 발생한 병이라 경계심을 덜 가졌을 수도 있다치자.

 

하지만 국내에 환자가 발생한 뒤에도 20일 가까이 컨트롤 타워 하나 없이 우왕좌왕했던 것에 대해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더구나 지금 이 시각까지 '그놈의 컨트롤 타워'는 어디 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메르스 무슨무슨 본부라는 기구가 대 여섯개는 된다지만 어디가 '진짜 본부'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오바마는  미국에 에볼라 환자가 한 명 발생했을 때 바로 백악관 내에 컨트롤 타워를 설치하고 진두지휘해 에볼라 환자 발생을 막아냈었다. 이런 국가재난 상황이 된다면 당연히 컨트롤 타워는 대통령이 맡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 측은 자꾸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는 이상한 말만 하고 있다.

 

더구나 5월 20일  첫 환자가 발생한 뒤 무려 엿새나 지난 뒤에야 보건 복지부 장관 문형표가 처음으로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했다는 뉴스에선 그저 한 숨만 나온다. 그것도 국무회의 석상에서 지나가는 소리로 했다니 이런 늑장 보고에 대해서 대통령은 또 뭐라 말할 지 궁금하지도 않다. 세월호때를 굳이 떠올리고 싶지조차 않다. 

 

꼭 1주일 전인 6월 3일 집으로 배달돼 온 일간신문 1면 사진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때 이미 메르스 사망자가 발생했고  3차 감염자가 나왔다는데도 대통령은 한가하게도 전남 여수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했다. 대통령이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탤런트처럼 화사하게 웃는 사진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간을 역산하면 대통령은 그렇게 '한가한 모습'의 사진을 찍은 1주일 전 이미 '메르스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평소처럼' 대통령은 이렇다할 '특별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메르스사태가 전적으로 대통령 책임이라는 말을 하자는 건  아니다. 단지 대통령이 자꾸 '변명' 비슷한 이야기를 하려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거다.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메르스의 경우 우리가 이전에 경험을 한 번도 못해봤던 감염병”이라는 말도 했다. 그건  사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메르스는 사스와 비슷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2012년부터 이미 알려진 병이었다. 작년 말쯤 질병관리본부라는 곳에서 2015년 봄엔 메르스를 조심해야한다는 보고서까지 만들었다는 보도도 어제 나왔다. 그런데도 막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메르스는 예견된 질병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정부가 저토록 우왕좌왕하면서 국민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는 와중에 대통령이 메르스와 사스는 다르다는 식으로 발언했다는 건 '대통령의 인식'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