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1Q84의 ‘2개의 달’과 수천만 년 동안 지구에 떠있던 진짜 2개의 달

스카이뷰2 2015. 7. 14. 10:52

                              

          ▲ 달과 같은 궤도를 따라 공전하던 ‘미니 달’이 달과 충돌해 달 뒤쪽에 산지가 형성되는 과정. 3차원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시뮬레이션한 모습이다. ① 달의 3분의 1 크기인 작은 달이 초속 약 2.4㎞의 비교적 느린 속도로 달과 부딪힌다. ② 완전히 굳지 않은 상태였던 달 표면이 작은 달과의 충돌로 일그러진다. ③ 작은 달은 큰 달과 합쳐져 혹 같이 높은 지형을 만들어낸다. ④ 시간이 지나며 달의 모양은 다시 구(球)에 가깝게 변해간다. 충돌할 때 밀려난 마그마는 달 뒤쪽 산지 주변에 광물이 풍부하고 지표가 두꺼운 지역(노란색)을 형성했다. /네이처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1Q84의 ‘2개의 달’과 "수천만년동안 지구에 떠있던 진짜 2개의 달”

 

 

 

무라카미 하루키의 방대한 장편소설 '1Q84'에는 묘한 자연 현상이 나온다.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이 바로 그것이다. 두 개의 달이 뜬 곳이 바로 1Q84의 세계인 것이다. 주인공 남녀는 이 두 개의 달을 보면서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두 개의 달'은 독자를 그가 이끄는 환상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한창 더웠던 여름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작품을 읽으면서 피서를 대신했던 기억이 난다.

 

영국에서 발행하는 세계 유수의 과학저널 네이처 잡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이 환상 속 '두 개의 달'이 더 이상 환상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논문을 실었다.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소식을 아는지 모르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소설 속에서 주요 장치로 등장하는 ‘두 개의 달’은 아주 먼 옛날 실재했던 것이라는 ‘과학의 증명’을 하루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퍽 궁금하다. 과문한 탓에 잘은 모르겠지만 혹시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연히 읽게 된 ‘사이언스 픽션’같은 데서 이 ‘두 개의 달’에 대한 힌트 혹은 영감(靈感)을 얻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설'을 '과학'으로 증명해낸 과학자들은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대 지구행성과학과 마틴 젓지 박사 연구팀.  이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달 뒤쪽의 거대한 산지(山地)가 지구를 함께 돌던 또 다른 위성과의 충돌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논문을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달 표면에 있는 다수의 구멍 등을 통해 볼 때 달 외에 지구를 도는 천체가 존재했었다고 추정해왔다. 그러나 이들 천체는 작은 운석이나 먼지 수준이며 만들어진 지 수 만 년 내에 지구나 달의 중력에 끌려 흡수됐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젓지 박사 팀은 거대한 산지를 연상케 하는 달 뒷면의 독특한 지형에 주목했다. 달 뒷면은 앞면보다 평균 고도가 높다. 지구의 산악지대와 지형이 비슷하며 산 주변의 지표 두께가 다른 지역보다 두껍다. 천체 움직임 분석 전문 프로그램인 '3차원 SPH'를 사용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이 같은 지형은 지름이 달의 3분의 1(약 1270㎞) 정도인 '미니 달'이 달과 충돌해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달과 같은 궤도를, 달과 떨어져 돌았던 작은 달은 지구와 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 달과 함께 수천만 년 동안 공생하다가 미묘한 궤도의 변화로 결국 달과 부딪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젓지 박사는 이 논문에서 "작은 달은 비교적 느린 속도인 초속 2~3km로 달과 충돌해 구멍이 아닌 산지를 남겼다. 달 뒤쪽 산지 주변의 두꺼운 표면은 충돌 당시 완전히 굳지 않았던 달의 마그마를 작은 달이 옆으로 밀어내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달 뒤쪽에 있는 암석의 연대 분석을 통해 정확한 충돌 시기를 밝혀낼 예정이다. 대단한 과학이다. 수 천만 년 전에 ‘존재했을 지도 모르는’ 두 개의 달의 존재와 정확한 충돌시기를 계산으로 입증해낸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문제적 작품’인 이 ‘1Q84’에서 이제까지 30 여 년 간 쌓아온 자신의 문학세계를 총 정리라도 하려는 듯 ‘무한 내공’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전 3권으로 일단 완결된 이 장편소설은 60세가 넘은 작가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도 보여주는 ‘신비한 작품’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두 개의 달이 하늘에 떠오르고, 리틀 피플이라는 존재가 사람들의 운명을 지배하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외톨이로 계속 살아가는 것보다 출구를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등장인물의 이야기는 ‘뻔한 공상’인줄 알면서도 이상하게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어쩌면 고독한 현대인의 초상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호소력이 높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소설 속의 이 ‘크고 작은 두 개의 달’의 존재는 이제 더 이상 하루키만의 공상이 아니라는 게 미국 과학자들에 의해 ‘증명’되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문학의 힘’ ‘인간의 무한 상상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어쩌면 하루키도 이 사실을 알고 무한대의 작가적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 ‘1Q84’ 는  덴고라는 학원 강사 겸 아마추어 소설가와 아오마메라는 스포츠강사겸 킬러인 두 남녀의 이야기가 각각 한 챕터 씩 교대로 이어진다. 방대한 분량이지만 하루키의 ‘소설가적 재능’덕분에 술술 읽힌다.  더군다나 남녀 주인공이 사실은 아주 어린 초등생시절 짧은 순간 진실한 사랑을 느꼈던 사이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점입가경으로 재미는 배가한다.

 

‘하루키적 수법(手法)’이라고나 할까. 아주 천연덕스럽게 픽션을 넌픽션처럼 느끼게 만드는 재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다. 여주인공 아오마메가 정체가 심한 고속도로에서 느닷없이 정상적인 1984년의 세계가 아닌 두개의 달이 떠있는 '1Q84'년으로 자신도 모르게 이동을 하게 된다는 설정은 흔한 듯 하면서도 하루키적이다.

 

소설 속 ‘두 개의 달이 하늘에 떠있는 한’이라는 장(章)에서 남자 주인공 덴고는 이런 환상적인 고백을 한다. “달의 수가 늘어났어. 아까 하늘을 봤더니 달이 두 개가 있었어. 크고 노란 달과 작고 초록 빛이 나는 달, 오래전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 하지만 나는 알아보지 못했었어. 아까서야 겨우 그 걸 알았어”

 

또 이런 구절도 나온다. “그는 그곳에 앉아 노랗고 큼직한 달과 이끼가 낀 듯한 초록색의 작고 일그러진 달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두 개의 달이 그곳에 나란이 존재하는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인간에게 두 개의 달이 보이는 건 아니다. 그는 혼자서 미끄럼틀 위에 앉아 난간에 머리를 기대고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을 똑바로 바라보며 기나긴 성찰에 빠져 있을 뿐이다.”

 

두개의 달을 통해 서로가 같은 곳에 있다고 느낀 두 남녀 주인공은 아쉽게도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사실 예전부터 ‘달’이 주는 이미지는 상당히 로맨틱했다. 연인들은 대체로 ‘달빛아래서’ 사랑을 맹세하지 ‘햇빛아래서’는 별로 하지 않았다. 유행가의 가사에서도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둥근달을 쳐다 보며는~”이라는 가사도 나온다. 아주 오래전 재밌게 봤던 영화 ‘문 스트럭’도 이 '달빛‘이 연인들을 어떻게 맺어주는 지를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즘은 이런 재밌는 영화가 없어서 안타깝다.

 

‘달’은 시공을 초월해 사랑의 상징으로 예술세계의 대모처럼 군림해왔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환갑 진갑이 다 지났지만 여전히 ‘철없는 남자’로 남고 싶어 하는 감수성 예민한 작가에겐 한 개로는 모자라 마침내 ‘두 개의 달’ 아래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을 하는 남녀를 우수에 젖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루키는 작가적 상상 속에 ‘두 개의 달’을 만들어 냈지만 미국의 젊은 과학자들은 그 ‘두 개의 달’은 “현실이었어!”라며 냉철한 과학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여봐란듯 성공하고 있는 현실도 재밌다. 아무튼 과학에선 ‘현실’이지만 문학에선 ‘환상’인 것, 그것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 적(的) 문학세계인지도 모르겠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알게 되었는지, 아니면 그 과학자들이 이 유명한 일본 작가의 작품 속에 ‘두 개의 달’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