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2일 청와대 5자회동 사진=뉴시스다음.
박대통령, 청와대 온 이종걸에게"예전에 저보고 '그년'이라고 하셨잖아요"-뒤끝 작렬
오늘 아침 신문에 난 이런 제목의 기사를 보고 시쳇말로 '깜놀'했다.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2일 여야(與野) 지도부 청와대 회동에 참석한 이종걸 새정련 원내대표에게 "아까 뵈니까 인상도 좋으시고, 말씀도 잘하시던데, 예전에 저보고 '그년''이년'이라고 하셨잖아요"라는 말을 했다고 요즘 한창 여성대통령과 친밀해져 스스로를 '신박'으로 불러달라고 고백했다는 새누리당 원내대표 원유철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폭로'했다는 것이다.
물론 웃자고 한 얘기겠지만서도 언중유골이라고 왠지 아무 상관 없는 나같은 사람도 뒷목이 잠시 서늘해졌다. 원유철은 그날 여성대통령이 청와대 회동이 끝나고 이종걸과 악수하면서 "인물도 훤하시고 오늘 말씀처럼 하시면 인기 많으시고 잘되실 텐데…예전에 저보고 그년이라고 하셨잖아요" 라고 전했다는 것이다. 이종걸 씨 그 순간 엄청 놀라고 황당했을 것 같다.
이런 말을 전하면서 원유철은 친절하게도 대통령의 공격적인 기습질문을 받은 이종걸의 표정까지 전했다. 대통령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순간 이종걸은 매우 놀라고 당황해 하면서 '그땐 죄송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거다. 왜 아니겠나. 세상에 대통령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야단을 맞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말이다. 아마도 이종걸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과거지사'를 꺼내며 자신을 대놓고 나무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거다. 그러니 그렇게 놀랐겠지...
이종걸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자 여성 대통령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오늘처럼 말 잘하고 하시면 인기 좋으시고 하실 거예요. 고맙습니다"라면서 표표히 떠났다는 게 '친절한 원유철의 설명이다. 자 이쯤 되면 블랙코미디에 개그 콘서트 장면보다 더 재밌다며 박수칠 관객이 한 둘이 아닐 것 같다.
이걸 두고 매스컴에선 여성 대통령이 '뒤끝 작렬'한 성품을 다시한번 보여줬다고 했고, 재담 잘하기로 소문난 새민련의 74세 현역의원은 좀전 자신의 트위터에 '박대통령 참 무서운 분'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아줌마들처럼 수다떨기 좋아하는 종편TV에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온 종일 '대통령의 그년'발언을 신나서 전하고 있는데 나라전체가 코미디 극장으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지체 높고 우아한 여성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신 것 자체에 대해 토달고 싶진 않지만 아무래도 일국의 대통령으로선 하지 않았어야할 말을 한 것 같다는 댓글여론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걸 보면 사람들 생각은 거기서 거긴 것 같다. 높디높은 대통령 입에서 그런 천한 비속어 욕설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신선한 충격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닌 듯하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이번 '대통령 그년'발언의 발단은 3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종걸은 2012년 8월 트위터에 새누리당 공천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 "공천 헌금이 아니라 공천 장사다. 장사의 수지 계산은 직원의 몫이 아니라 주인에게 돌아간다"며 "그들의 주인은 박근혜 의원인데 그년 서슬이 퍼레서 사과도 하지 않고 얼렁뚱땅…"이라고 했다.
이런 글을 올린 후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이종걸은 "'그년'은 '그녀는'의 줄임말이다. 나름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가, 논란이 더 커지자 이틀 뒤 다시 "'그년'은 '그녀는'의 오타다. 실수로 본의 아닌 표현이 욕이 돼 듣기 불편한 분들이 계셨다면 유감"이라는 듣기에도 아주 옹색한 변명의 트윗을 올렸다. 수준미달이다.
하지만 그다음 날 당 회의에서는 "'그 표현은 약하다. 더 세게 하지'라는 말씀을 해준 분도 많았다"고 또 뒤집는 해프닝을 벌였다. 당시 '그년 '발언은 국회 차원의 징계 없이 넘어갔는데, 그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는지 3년여 만에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된 '피해자'가 이를 직접 꺼낸 것이다. 일종의 '귀여운 보복'이라고 좋게 말해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청와대를 장식할 언어가 아니다.
이종걸은 이날 기자들이 '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말을 했느냐'고 묻자, "아니 뭐… 그렇죠"라며 "3년 됐지만, 뭐 오타였지만…"이라고 더듬거리며 응답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스타일 완전 구긴 이종걸로선 안팎곱사등이란 말처럼 자신의 처량한 신세가 부끄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누가 그런 비속어를 쓰라했는가 말이다. 좀 조심해야지ㅉㅉㅉ
이종걸을 편들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 식의 막된 표현을 올렸다는 건 욕먹어 싸다. 하지만 말이다. 대통령이라는 최고존엄의 지위에까지 올라가신 분이라면 다른 자리도 아니고 모처럼 야당 대표들을 초청한 청와대회동 석상에서 굳이 좋지도 않은 발음인 '그년'을 친히 입에 올리시면서까지 상대(가해자)를 코너로 몰아붙였다는 건 그리 좋게 보이진 않는다. 대통령까지 됐는데 용서못할 일이 뭐 있겠는가 말이다.
이번 일은 차밍한 우리 여성대통령이 실수하신 걸로 판정내리고 싶다. 가뜩이나 화합이나 소통에 역부족처럼 보인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녀로선 그야말로 '체신머리'없는 발언을 하심으로써 스타일 구기셨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가뜩이나 국사 교과서 국정화문제로 대통령 지지율이 2주 사이에 무려 5%나 빠지고 있고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자책골'을 넣은 셈이다.
어쨌거나 지금 대한민국은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온힘을 다해 마치 1인시위'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로 밀어붙이고 있는 대통령의 '이상한 국정화 열망'탓에 너무 시끄럽다. 오늘 오후 4시부터는 1960년 4.19 때 이후 처음으로 원로 대학교수들이 거리행진을 벌인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건 아무래도 좋지 않은 조짐처럼 비쳐진다. 교수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여론은 급악화되게 마련이다.
엊그제 손석희 뉴스룸에 나온 서울대 국사학과의 정용욱이라는 교수는 "정부가 어떻게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는지 모르겠다"며 '준공무원'인 서울대 교수 신분도 잊은듯 내놓고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했다. 그의 그 발언 이후 서울대 역사관련 교수 36명이 국정화 반대 선언을 발표했고 전국적으론 고대 연대 등 사학과교수 700여명이 국정화 반대는 물론 집필거부와 자문거부를 선언했다고 한다.
국정화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11% 이상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 회사는 다른데 약속이나 한 듯 국정화 반대가 11% 높게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여론이 돌아섰다는 얘기일 것이다. 여당지지도 야당지지도 아닌 무당층에선 무려 80% 이상이 반대의사를 보인다고 한다. 여당으로선 아무래도 속이 타들어갈 것 같다.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온 마당에 수도권 민심이 그렇게 나빠지면 선거는 끝났다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나라가 시끄러운데 섬세한 여성대통령은 청와대에 '손님'으로 온 야당 원내대표의 3년전 과거발언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다는 건 아무래도 그림이 안 좋아 보인다. 시중에선 "여자들은 부부싸움 할 때도 수십년전 일도 어젯일처럼 말한다"면서 대통령이 말한 걸 안주거리 삼고 있을 정도다. 물론 그런 발언을 한 원인제공자가 '못됐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자꾸 얘기하지만 대통령이라는 그야말로 최고존엄의 자리에까지 오르신 분이 소소한 과거 원한에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 국민들 보기에 좀 안쓰럽다. 이번 국정교과서 문제도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대다수 국민들의 의심어린 눈초리를 의식한다면 대통령은 이 문제를 다시한번 심사숙고하는 게 좋을 듯 싶다. 물론 효심이 지극한 효녀대통령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랏일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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