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대표가 졸지에 '무식한 정치인'소리를 여성 원로 역사학자로부터 들었다. 김대표는 얼마전엔 종편에 출연한 정치학 교수로부터 '양아치 같다'는 소리까지 들음으로써 '교수님'들로부터는 인기가 없다는 걸 다시한번 보여줬다.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그리 유쾌한 덕담은 아닌 듯해 보인다.
김무성을 단칼에 '무식한 정치인'으로 규정한 사람은 야당인사도 아니고 이명박 정부에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74세의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다. 사학계에서 신망이 두터운 그녀는 라디오 방송의 시사프로에 출연해 “역사학계 90%를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그런 무식한 정치인이 과연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그 자격이 의심스럽다”며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선봉장을 자임하고 맹활약중인 김무성을 정면 비판했다.
그래도 명색이 집권여당 대표이자 대한민국 권력서열 7위라는 '파워맨'에게 이 정도로 따끔한 쓴소리를 방송에 출연해 지적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원로 사학자로서 이번 '국정화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김무성은 며칠 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세계한인회장단 초청 재외동포정책 포럼에서 “우리나라 역사학자 90%를 좌파학자가 점령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었다. 이런 소리를 TV뉴스로 듣는 순간 나도 내 귀를 의심했었다. 아무리 국민들의 국정화 반대 여론이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어서 전세가 불리해진다해도 대한민국 집권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그렇게 함부로 90%좌파 운운하면서 사학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한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점잖은 원로 사학자'로부터 그런 싸늘한 비평을 받은 건 어쩌면 화를 자초했던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직전 정부에서 국사편찬위원장까지 지낸 이 원로 사학자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무성 대표의 그런 주장에 대해 이렇게 잘라 말하고 있다. 그 비판의 강도가 어떤 야당 의원들보다 세다.
“하도 우스워서 말이 안 나온다. 정부에 적극 동의하지 않으면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모양인데 현 정권이 우파 전매특허 냈냐? 어떻게 역사학계 90%가 좌파냐. 말도 안 되는 것이다. 10%가 그럴 수(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죠. 우리나라가 그런 사상(역사학자 90%가 좌파)의 자유까지도 어느 정도 허용하는 나라니까. 그런데 그런 무식한 정치인이 과연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그 자격이 의심스럽다”
자 이 정도라면 평생 학자로 살아온 꼬장꼬장한 '선비정신'이 무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나 이렇게 날선 비판을 권력자를 향해 날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원로교수는 “국정교과서가 올바른 교과서라는 그런 등식이 성립되는지 묻고 싶다”며 “검정이 소홀해서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이미 벌써 다 고쳤는데 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국정을 해야 올바른 교과서가 나온다는 그런 편협한 사고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동기 자체가 불순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지금 정치인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무식하고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역사학계를 난도질해가면서 강행을 하려고 하면 역사학계가 바보냐”라며 “가만히 있다고 바보 취급을 하나본데 그렇다면 우리도 그냥 있을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이라고 강력 경고했다고 한다.
이 정도 '결기에 찬 발언'이 원로 사학자로부터 터져 나오리라고는 김무성은 물론 여성대통령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워낙 원칙을 좋아하는 여성대통령으로선 이 정도 발언에 눈하나 깜짝하지 않으리라 본다. 어쩌면 '비극의 씨앗'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될 것도 같다. 관용이나 배려 소통이나 역지사지하는 발상의 전환 같은 게 부족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대통령으로선 원로사학자의 이런 '쓴소리'에 몹시 심기를 상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번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로교수는 기존 교과서가 패배주의를 가르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결국 학문이라는 게 일종의 자기반성이다. 특히 역사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런 전철은 우리가 밟지 말자,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게 역사니까 그런 측면이 없었다고 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일본의 극우처럼 무조건 ‘우리가 잘했다, 우리가 최고다’, 그런 식으로 아주 배타적인 쪽으로만 가면 이거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학자적 견해를 밝혔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국정화 강행 배경에 대해선 “국정으로 하면 어떠한 사람들을 동원해서 마음대로 농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나서지 않고 미흡한 사람들이 나서니까 교과서 수준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러면 기껏해야 그거 2년짜리다. 앞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 좌든 우든 그 교과서 폐기처분할 거다, 아마 틀림없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원로학자는 박 대통령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어른들이 무슨 사심과 정치적인 의도에서 이런 일을 벌여서 아이들을 피해자로 만들고 역사학계를 좌파로 몰아가면서 역사학계를 함부로 농단하고 이게 지금 할 일이 아니잖나. 정치판이 할 일이 아니잖나"라고 반문한 뒤, "지금 사회통합을 하는 게 대통령의 의무지, 갈등을 일으키는 게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지 않나. 평지풍파에요, 이건. 왜 이렇게 국력을 소모하고 국비를 낭비하나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 전교조 교사도 아닌 국사편찬위원장까지 지낸 원로 사학자가 이런 날카로운 비판을 내놓는다는 건 예삿일은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