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신촌캠퍼스 중앙도서관 앞에 붙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풍자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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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희대 사학과 학생이 <조선왕조실록> 형식을 빌려와 쓴 대자보 |
<교과서>를 고치는 것에 대한 논의
대통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전대(前代)의 대통령들이 선대통령의 교과서(敎科書)를 친히 고치지 않은 자가 없는 것 같은데, 전 대통령께서 검정교과서로 바꾸시매, 이 때 김무성 등은 이를 고치시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학자는 고치시지 않는 것이 옳다고 말하여, 전 대통령께서는 학자의 논의를 따랐던 것이나, 이제 검정교과서를 청와대(靑瓦臺)에 하니, 전국 각지의 사자가 집필을 거부하며 아뢰기를,
"이번에 사용하는 교과서는 모두 공적(功績)과 과오(過誤)가 실려 있어 다시 고칠 것도 없으려니와 하물며 각하께서 이를 고치시는 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러하오나> 각하께서 만일 이를 고치려 하신다면 후세의 대통령들이 반드시 이를 본받아서 고칠 것이며, 집필진(執筆陣) 또한 원수(元帥)가 볼 것을 의심하여 그 사실을 반드시 다 기록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그 진실함을 전하겠습니까."
하매, 대통령이 말하기를 "그래도 고칠 것이다" 하였다.
-원본 출처 :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 <태종실록>을 보는 것에 대한 논의 / 세종 51권, 13년(1431 신해) 3월 20일 (갑신)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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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식 대자보'에 이어, 각 학과 특성을 살린 '기발한' 국정화 반대 대자보가 연일 화제다. 20일 온라인에서는 국정화를 반대하며 '이 날, 목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뜻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인용해 쓴 대자보가 화제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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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각하'라 부르는 대자보도 눈길을 끌었다. |
대학가에서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대자보와 항의성 글들은 거의 블랙 코미디 같다. 개그콘서트보다 훨씬 재밌다. 아주 재기발랄하고 재치있다. 지난 19일 연세대에 붙여진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우리의 립장”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시작으로 쏟아져 나온 국정화 반대 대자보들은 풍요롭게 성장해온 우리 젊은이들이 '역경'에서도 여유를 갖는 넉넉한 심성과 유머 감각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젊은 세대들의 유머넘치는 의사표시를 보면서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래도 밝다는 생각이 든다.
연세대 학생에 이어 고려대 경희대 등 서울시내 소재 대학생들은 이제껏 듣도보도 못했던 기발한 패러디로 조선왕조실록이나 시일야방성대곡 심지어 1979년10월 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향해 총을 겨누면서 '각하 정치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고 했다는 말을 차용 '공주각하 역사교육을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는 대자보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젊은 두뇌'들의 패러디 수준은 기성세대들을 압도하는 것 같다.
자신을 '련세대 학생'으로 쓴 연대생은 두음법칙을 사용않는 북한식 문법을 사용해 이렇게 쓰고 있다.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이시며 존엄높이 받들어모실 경애하는 박근혜 최고지도자 동지께서 얼마전 력사교과서 국정화를 선포하시었다. 력사에 길이남을 3.15 부정선거를 만들어내신 위대한 리승만 대통령 각하와 유신체제를 세워 대통령선거제도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가장 숭고한 기쁨과 영광으로 받들어 모시려는 박근혜 최고지도자 동지의 무한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며 기발한 문투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어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존엄 높이'나 '경애하는 최고 지도자 동지''력사 교과서' '선포하시었다'등 북한 아나운서식 어투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
또 “그런데 오만불손한 좌파세력은 그 무슨 ‘친일독재 미화’니 ‘유신부활’이니 하는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지껄이며, 존엄높이 추앙해 마지않을 민족의 태양 리승만,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깎아내리는 망발을 일삼고 있다”며 “철천지 원쑤보다 못한 좌파세력은 국정교과서에 대해 “력사교육을 획일화하려는 독재적 발상,감히 우리 조국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경천동지할 만행을 저질렀다”며 북한 TV방송뉴스에 나올법한 화법을 그대로 차용해 역설적으로 국정화 교과서를 둘러싼 요즘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정도의 순발력이라면 이 학생은 정당쪽에서 스카웃해 가면 제법 쓸만한 인재로 성장할 것 같다.
이 대자보는 “앞으로 우리 조국에서 쓰여질 교과서는 북조선, 로씨아, 베트남의 국정교과서만큼 영광스럽고 긍지높은 교과서가 될 것”이라며 “만일 좌파세력들이 지금처럼 국정교과서를 비판하며 우리의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처사를 계속한다면 치솟는 분노와 경천동지할 불벼락으로 본때를 보여줄 것”이라면서
마지막에는 “박정희 각하 탄신 98년(서기 2015년) 각하를 존경해 마지않는 련세대학교 학생”이라고 썼다.
보도에 따르면 대자보를 쓴 이 연세대생은 언론과의 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일이 북한이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쪽에서 ‘북한이 싫다면서 왜 북한처럼 교과서 국정화를 따라하느냐’는 비판을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대자보에서) 국정 교과서를 찬성한다고 주장했지만, 반어법으로 풍자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연세대에 이런 '북한식 대자보'가 붙던 날 고려대에도 같은 형식의 대자보가 19일 붙었다 "고등중학교 력사교과서 국정화는 우리공화국 인민의 시종일관한 립장"이라는 이 대자보는 연세대 대자보처럼 북한식 글투를 패러디했다. 또 마찬가지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어적으로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이 대자보는 “위대한 반인반신 박정희 동지의 5·16 군사혁명과 유신의 유지를 받드신, 경애하는 지도자 박근혜 동지께서 고증 력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결정하시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국정화 결정에 대해서는 “국론분열 이념책동을 저질러 불신의 연륜을 새기는 매국역적 반동 종북주의자들의 놀라운 망동을 일시에 종식시키고, 우리 공화국의 내일을 위하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사상과 교육으로 정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자 값 높은 혜안“이라고 비꼰다.
또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 확립을 위하여 열어 나가도록 종북논란이 일어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여 미성숙한 중고등학생들의 사상을 정화하여야 하는 것은 인민의 강렬한 지향이며 어길 수 없는 민족적과제로 이를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 것이다”라며 여성 대통령이 언젠가 말했던 ‘우주의 도움’도 패러디했다.
이 대자보는 앞서 같은 형식으로 대자보를 쓴 연세대를 “참새를 학교 상징으로 쓰는 데”라고 지칭한 뒤 “(연세대를 위시한)각급 대학 좌빨 역사학계는 혹여 자기들 밥그릇이 줄어들까 반기를 드는 수작을 부리었다”고 썼다. '라이벌 대학'인 연세대의 상징물 독수리를 참새로 표현한 것도 대학생답게 재치있어 보인다.
경희대 사학과의 한 학생도 국정화를 반대하며 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이 날, 목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뜻)'을 인용한 대자보를 붙여 화제가 됐다. 1905년 구한말 당시 장지연이 쓴 이 사설은, 일본 압박에 못 이겨 체결한 을사늑약(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이에 찬성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한 대신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 대자보에는 시일야방성대곡에 등장하는 '이등 후작', 즉 이토히로부미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을사조약 체결을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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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형식을 빌려 쓴 대자보도 나왔다. '세종 51권, <태종실록>을 보는 것에 대한 논의'를 '<교과서>를 고치는 것에 대한 논의'로 바꾼 뒤, "(박근혜) 대통령께서 말씀하시기를 (…) 내가 검정교과서를 한번 고치려고 하는데 어떤가"라고 썼다.
대자보는 이어 "이에 전국 각지의 사자가 집필을 거부하며 아뢰기를 '이번에 사용하는 교과서는 모두 공과 과가 실려 있어 다시 고칠 것도 없으려니와 하물며 각하께서 이를 고치시는 일이야 있겠습니까'(…) 라고 하매, 대통령이 말하기를 '그래도 고칠 것이다' 하였다"라고 썼다.
여성 대통령을 '공주 각하'라 칭하며 '김재규'식 화법으로 쓴 대자보도 눈길을 끌고 있다.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한 대학생'이 붙인 이 대자보엔 '각하! 역사 교육을 대국적으로 좀 하십시오!'라고 적혀 있다. 이는 10.26 사건 때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쏘기 직전 말했다고 알려진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는 말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국정화 반대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대담한 여대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