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8월 서울 마포구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인 YH무역 여성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있는 김영삼 당시 야당 대표.
金泳三 전 대통령 서거와 뉴욕 타임스와 YH여공들의 눈물
88년간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한 金泳三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크나큰 업적을 남긴 ‘탁월한 정치인’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워온 정치인으로서의 업적뿐 아니라 대통령이 되고나서 군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전격 해체함으로써 이 땅에서 ‘군정종식’이라는 확실한 계기를 마련한 것 하나만으로도 김전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빛나는 업적’을 세웠다고 할 수 있겠다.
멸치어장을 하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통령이 되고나서도 부친으로부터 ‘용돈’을 받았다는 이른바 ‘금수저’출신의 김전대통령에게 ‘파란만장’이란 수식어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야당 대표로 그 엄혹했던 박정희유신시절 ‘야당대표 제명’이라는 전무후무한 수모까지 당했기에 그가 걸어온 정치인생은 대한민국 정치인 중에선 거의 유일하게 파란만장했었다고 볼 수 있겠다.
생각해보라! 1979년 당시 대통령의 명령 하에 여당의원들이 야당대표를 국회문밖으로 쫓아내버린
상황을!! 어찌 보면 좀 코믹해보이기까지하는 이 기괴한 정치상황은 당시 중정부장이었던 김재규가 자신의 정치대부격인 ‘18년 장기집권자’ 대통령 박정희에게 총부리를 겨누면서 종료됐다. 그 유명한 ‘궁정동의 밤’에 벌어진 그날의 ‘대통령암살사건’은 그만큼 상징성이 컸다. 당시 그 누구도 예상못했던 ' 최고권력자의 유고(有故)'가 벼락치듯 연출된 것이다.
‘야당대표 제명 쇼’라는 전무후무한 정치촌극이 일어난 지 꼭 22일만인 10월26일에 터진 ‘대통령 시해’라는 이 충격적인 사건은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만약 어떤 작가가 정치소설을 쓰면서 이런 식으로 전개해나갔다면 너무 인위적이고 유치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만큼 비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어쩌면 이런 극적인 드라마가 20세기 말 대한민국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이런 '비현실적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의 무궁무진한 산실(産室)이기에 ‘김영삼 강제제명, 박정희 암살’이라는 1979년 10월에 있었던 ‘역사’는 우리에게 숙연한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유신의 심장부를 쐈다’는 기막힌 명언을 남긴 김재규는 어쩌면 김영삼과 대한민국의 정치적 운명을 바꾼 장본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개인적으론 ‘김영삼’이라면 ‘여공들의 눈물을 닦아준’ 인정 많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맨먼저 떠오른다. 김영삼과 박정희의 운명을 갈라놓은 1979년엔 상징적인 사건사고가 유독 많은 해였다.
가발 수출회사 YH무역의 여성 노동자 172명이 서울 마포구에 있는 신민당 당사에 찾아가 당내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당시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YH무역의 여공들과 면담했다. 사회 맨밑바닥에서 땀흘리며 살아온 죄밖에 없는 이 여공들을 '딸들처럼' 따스하게 보듬어준 것이다.
여공들의 그런 한맺힌 하소연을 자상하게 들어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김영삼은 정치인으로서 할 의무를 제대로 한 것이다. 그 여공들을 위로해주며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우리 신민당사를 찾아 준 것을 눈물겹게 생각한다”며 “우리가 여러분을 지켜주겠으니 걱정말라'며 여공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요즘 어떤 정치인이 이런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지 별로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요리조리 눈치만 보면서 기회주의적 처신이 만연하고 있는 정치판 아닌가 말이다. 그만큼 삭막한 세상이 된 것이다.
결국 이 ‘YH여공’사건은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당시 22세밖에 안된 여성 노조위원장이 경찰 진압과정에서 안타깝게 숨지고 노조원 전원 구속당하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이 사건을 계기로 급속한 전기를 맞이했다.
이 사건 직후 김영삼은 미국 유수의 신문인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갖고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라고 주장했고 당시 여당은 그 내용을 문제 삼아 10월 4일 국회에 징계동의안을 제출, 김영삼을 징계, 의원직을 박탈한 것이다. 제명 당하면서 김영삼은 그 유명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라는 절규를 쏟아냈고, 이 문장은 김영삼의 손꼽히는 '어록'으로 남게 됐다.
김영삼의 강제제명은 10월17일 부마항쟁을 촉발했고, 결국엔 10월26일 박정희 유신정권이 끝장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여공들의 눈물과 뉴욕타임스와 김재규의 총알이 대한민국의 정치적 운명을 바꿔놓은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88년을 살다보면 벼라별 일들을 겪게 된다. 하물며 대한민국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의 88년 생애, 그것도 엄혹한 군사독재정권시절을 온몸으로 저항하며 결국은 ‘군인들과 손잡는 3당합당’이라는 극한의 드라마를 연출하면서까지 ‘정권’을 잡게 된 풍운아의 운명에는 그야말로 온갖 드라마가 스며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개인적으론 이 ‘가여운 여공들의 눈물’을 닦아줄 줄 알았던 정치인 김영삼의 ‘따스한 마인드’를 최고로 꼽고 싶은 것이다.
경남고와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고인은 26세 때인 1954년 헌정사상 최연소로 국회의원 뱃지를 단 이래 9선의 최다 국회의원 경력과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까지 지낸 ‘대성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빈자나 부자나 권력자나 누구나 예외 없이 한줌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앞에 겸허해져야 한다는 걸 전직대통령의 서거를 보면서 새삼 숙연하게 깨닫는다.
*이 자리를 빌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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