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정의화 국회의장은 왜 박대통령 요구를 거절했을까

스카이뷰2 2015. 12. 17. 10:50

                                                                                                                                                                                     

 

 

정의화 국회의장은 왜 박대통령 요구를 거절했을까

 

 

아무도 그 앞에선 감히 노(no)라고 못 말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속된 말로 ‘맞장’뜨는 용맹한 인사가 나타났다. 바로 정의화 국회의장이다. 48년생 신경외과 전문의 출신이라는 유순해 보이기까지하는 이 남자, 가만 보니 ‘역린(逆鱗)’을 건드린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마 야권 인사를 제외한다면 박대통령 면전에서 쓴소리를 하는 사람은 정의화가 유일한 듯하다. 

 

정 의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대놓고 해왔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박정희유신시절에 저항하다 등산 중 추락사했다는 고 장준하의 죽음은 타살이라고 단정지어 말한 사람도 정의화다. 사실 이런 말은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함부로 입에 올리기 힘든 얘기였지만 정의화는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단언한다”면서 그의 죽음은 실족사가 아닌 누군가에 의한 타살이었다고 확언했다. 효녀로 유명한 박대통령으로선 정의화의 이런 공격적인 발언에 아마 엄청 화가 났을 것이다.  

   

그녀의 레이저 눈빛 앞에선 천하장사도 꼼짝 못한다는 여성대통령으로선 자신보다 4세 연상인 이 막무가내 국회의장의 어깃장에 엄청 화가 났을 법하다. 하지만 ‘신 유신 시대’같다는 야당대표 문재인의 지적처럼 뭔가 박정희유신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사회분위기에 답답함을 느꼈을 ‘지식인층’에선 정의화라는 ‘뚝심’있어 보이는 국회의장의 이런 언행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꽤 많은 듯하다.

 

사실 ‘정의화의 쓴소리’는 심심하면 터져 나오곤 했다. 기자들 앞에서 그는 박대통령의 소통부족을 대놓고 지적하곤 했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전화번호를 주기에 두 차례나 직접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고 콜백도 없었다는 말도 했다. 의장공관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자신을 윗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대통령으로선 아랫사람인 국회의장이 그런 식의‘무례’를 범하는 게 괘씸했을 지도 모르겠다.

 

보도에 따르면 정의화 국회의장은 어제 (16일) 야당 반대로 국회에서 막혀 있는 노동 개혁 및 경제 활성화 관련 쟁점 법안들에 대해 직권 상정(심사 기일 지정)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직권 상정을 요청했던 청와대와 정면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 등 틈만 나면 국회의원들을 어린애 나무라듯 야단쳐왔던 대통령으로선 복장 터질 노릇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감히 내 말에 반대를 해... 아마 대통령은 어젯밤 한숨도 못 잤을 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으로선 한국경제가 위기인데도 아니라고 우기는 ‘무식한 국회의장’을 어떻게 혼을 내야할지

밤새 고민했을 수도 있겠다. 그만큼 대통령으로선 국회의장의 반대가 참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넓은 청와대 안방에서 혼자 불면의 밤을 지새웠을 대통령은 아마 오늘 아침 부하들에게 비상수단을 강구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오늘 오전 청와대 대변인은 “국회의장은 국회를 정상화할 책무가 있다”는 쓴소리를 내놓았던 것 같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는 대통령이 보기엔 국회의장이 '책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득 지난 여름 중인환시리에 대통령 말 한마디로 제거당한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이 떠오른다. 어쩌면 대통령의 눈엔 정의화도 거의 유승민 급으로 밉게 보였을 듯도 싶다. 

 

하지만 정 의장의 입장은 단호하다. 어제 오전 그는 기자들을 불러모아놓고 "국회법에는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서만 직권 상정이 가능한데, 지금 경제 상황을 그렇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여러 법률 자문의 의견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마 여러 법률가들에게 '법적인 자문'을 구했나보다. 왜 아니겠는가. 대통령에게 '항명'하려면 그 정도의 수고는 해야 했을 것이다. 

 

정 의장은 또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날 자신을 찾아와 직권 상정을 사실상 요청한 데 대해 "메시지가 왔길래 오히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좀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었다"며 "국민도 제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못 한다는 점을 꼭 알아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는 대통령을 의식한 화법으로 들린다.

 

비록 대통령에겐 맞장뜰지라도 '하늘같은' 국민에겐 오해받고 싶지 않다는 얘기도 숨어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을 전시나 사변이 일어난 국가비상사태로 보는 국민은  별로 없는 듯한 분위기여서 정 의장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는 듯하다.   

 

정의화가 그렇게 말한 이면엔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지시받는 상황이 연출된 듯한 모양새에 화가 났다는 속내도 숨어있는 듯하다. 엄연히 삼권분립이 법으로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국회의장에게 '명령'을 하는 건 못참겠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대통령이 '훈육주임'은 아니라는 얘기일 거다.

 

사실 우리  대통령은 미국의 오바마나 독일의 메르켈이 자국의 국회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좀 알았으면 좋겠다. 오바마나 메르켈은 국회를 '아래'로 보는 대신 동등한 국정파트너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박대통령은 요 며칠사이에 국회를 질타하는 걸 너무 자주 해왔다.

 

좋은 소리도 세번 들으면 지겹다는데 말이다. 같은 여성 최고 지도자인 메르켈은 독일 국회의원들과 무려 17시간이나 마라톤 협상까지 해가면서 행정부를 도와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는 '미담'을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에게 보고해야할 것이라고 본다. 글로벌 시대인 21세기에 대한민국은 대원군 시대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마저 감돈다는 게 요즘 여론인 것 같다.    

 

'직권상정'은 안 하겠다는 소신이 확실해 보이는 정의화의장은  "(이런) 초법적 발상을 행하면 나라에 혼란이 오고, 경제를 더 나쁘게 하는 반작용까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까지 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가 직권상정을 하면 성을 갈겠다고 방송마이크에 대고 공언할 정도다. 그러니까 대통령의 발상이 법을 넘어선 거라는 쓴소리를 직설적으로 한 것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이렇게 사사건건 ‘법’을 따지고 드는, 야당 출신도 아닌 바로 새누리당 출신인 국회의장이 그런 식으로 나온다는 게 너무야속하게 보였을 것 같다.  

 

야당 의원이 몇 년 전 트위터에서 자신에게 욕한 걸 잊지 않고 청와대에 초청해서까지 왜 그러셨냐고 따지는 ‘뒤끝’ 있다는 여성대통령으로선 정의화의 이런 발언들을 ‘바위’에 새겨놓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연한 ‘법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국회의장과 자고나면 국회를 비난하는 대통령의 충돌이 언제 어떤 모양새로 끝이 날지 궁금하다. 참고로 대통령은 B형, 국회의장은 O형이다. 혈액형 대진표로 따진다면 O형이 B형을 이기는 것으로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