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보수성향 매체에서 의뢰한 여론조사에서마저 나타나고 있다. 개성공단 전격 폐쇄로 상승행진을 해온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한 반면, 더민주 지지율과 문재인 지지율은 급반등했다. 성인군자처럼 필리버스터에 양비론을 폈던 안철수와 국민당 지지율은 모두 급락했다.
'호남의 사위'를 내세우며 한때 호남인들의 호감을 샀던 안철수는 호남에서 조차 3위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 국민은 '자력'으로 뭘 해볼 생각은 안하고 그저 남 비판하는데 열을 올리거나 자신의 정체성은 드러내지 않고 평론가처럼 '훈계질'이나 하려드는 신인 정치꾼에겐 금세 등을 돌리는 것 같다.
오늘(2일) 보수 인터넷매체라는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2월 28~29일 이틀간 전국 성인 1천31명을 대상으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전주보다 무려 5.8%p나 급락한 42.2%로 나타났다. 반면에 부정평가는 4.2%p 높아진 53.8%로 조사됐다. 콘크리트 지지층의 '열혈지지'로 그래도 42%대의 지지율이 나왔다는 건 대통령에게 큰 위로가 될 듯하다. 하지만 부정평가가 다른 어느때보다 높아진건 대통령으로선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필리버스터라는 우리에겐 생소한 야당의원들의 무제한 토론이 8일 넘게 24시간 내내 비록 국회방송과 유튜브를 통해서만 생중계됐지만 워낙 '테러방지법'에 대한 더민주 의원들의 비난 연설이 강력했던 탓인지 1주일새 이 테러방지법에 대한 국민적 인식은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 국정원 직원이 37만명이라는 더민주 비례대표 전순옥의 발언에 적잖은 국민들은 '깜놀'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한 가장 큰 요인은 필리버스터에 크게 호응했던 20·30대가 박 대통령에게 냉소적 태도를 보인 탓이 크다는 분석도 나왔다. 20대와 30대에서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각각 70.0%, 75.6%를 기록했다. '젊은 그대들'의 맹렬한 '인권의식'이 대통령에게 부정적 견해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지역별로는 의외로 강원도와·제주도의 부정평가가 73%로 가장 높았고 전남·광주·전북이 71.5%, 그리고 총선 최대 승부처인 서울이 65.4%로 뒤를 이었다. 정당 지지율도 급변했다. 새누리당은 필리버스터 정국 속에 살생부 논란까지 겹쳐선지 전 주일보다 7.4%p나 급락한 37.5%였다.
반면에 필리버스터로 '대박'난 더민주는 지난주 20.7%에서 24.5%로 급상승했다. 지지율이 이렇게 대폭 상승했으니 필리버스터 '유지'를 강력 주장하는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 같다. 하지만 '온건한 노인'표정의 더민주 대표 김종인은 "선거를 망치면 책임 지겠느냐"며 노인답지 않게 고함을 지르며 원내대표 이종걸을 제압했다는 기사도 나온 만큼 앞으로 더민주 내부의 강온파 간의 알력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모난 놈 옆에 있다 정맞는 꼴'로 더민주 주도하에 진행됐던 필리버스터는 결국 국민의당 지지율을 한 자릿수로 주저 앉혔다. 지난주 10.3%에서 8.9%로 여당과 야당을 싸잡아 비난했던 안철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그래도 호남을 버팀목으로 삼아왔던 국민당은 호남에서마저 더민주에게 상석을 양보하고 말았다.
지난주 22%의 지지율을 보였던 더민주가 이번주에는 33.2%의 지지율로 10%이상 급등한 반면, 국민당은 지난주 30.2%에서 이번주 22.1%로 곤두박질쳤다. 그야말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는 모양이다. 기고만장하게 더민주를 탈당했던 호남출신 의원들의 신세가 처량맞게 됐다.
차기대권후보 지지도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문재인은 전주보다 2.1%p 상승한 20.9%로 1위를 탈환했고 김무성은 무려 5.9%p 급락해 16.4%로 2위로 떨어졌다. 안철수는 1.0%p 추락한 8.4%로 3위를 차지했다. 이번 조사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호남 민심의 급변이다. 문재인 지지율은 10.7%p 급등해 22.0%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지난 주 1위였던 안철수는 7.7%p 급락한 16.5%에 그치면서, 19.3%를 받은 박원순에게도 밀려 3위로 추락했다. 아무래도 이런 추세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서야 호남인들이 '진정 밀어줘야할 인물'이 누군지를 깨달은 듯하다. 특정인을 폄하할 의도는 없지만 민주당을 탈당한 안철수라는 신인 정치꾼이 그동안 보여준 언행을 조금만 유심히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이 같은 '민심의 급변'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할 것 같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필리버스터로 인한 강경한 야당의 모습이 야권 지지층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며 결집하는 효과를 낸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정도의 분석이라면 여론조사 기법을 모르는 일반인들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민심의 변화'란 누가 더 진정성을 갖고 진정 국민을 위하는 자세를 갖추는 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번 더민주의 필리버스터 '저항'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중도층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준 일면이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새누리당은 극력 부정하고 싶겠지만 필리버스터 정국은 이번 총선에서 여당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다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더민주가 무작정 필리버스터에만 의존하는 꼴을 보인다면 언제 또 민심은 홱 돌아설지 모른다. 어쨌거나 필리버스터라는 '새로운 정치 모델'은 적잖은 국민들에게 왠지 대한민국이 '자유토론'을 할 수 있는 선진국이 된 건 같은 '착각'을 잠시 갖게 한 것 같다. 아직 한국 민주주의는 멀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