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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 필리버스터와 독일 영화 <타인의 삶>-당신이 도청당하고 있다면

스카이뷰2 2016. 2. 29. 18:44



    독일영화 <타인의 삶>-2007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수상작


 



지금 대한민국은 '필리버스터 열풍'이 불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오늘로 7일째를 맞고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필리버스터는 건국이래 초유의 '일하는 국회 상'을 보여주고 있어선지 '국회방송'의 시청률이 지상파를 넘어서는 이변까지 연출하면서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 있다.


12시간 가까이 똑바로 선 채 '자유자재'로 필리버스터를 해낸 더민주 의원 정청래는 그동안의 '비호감 이미지'를 많이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성으로선 최고 기록을 세운 은수미는 그녀의 토론에 감동받은 네티즌들이 '소액기부'를 소나기처럼 퍼부어 무려 2500건이 넘는 후원자들을 모으는 '횡재'를 했다고 한다.   


더민주당은 모처럼 이번 필리버스터로 '대박'을 터뜨렸고, 당내 비상대책위원회에도 끼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던 더민주 원내대표 이종걸은 그 동안 당했던 '인간적 수모'를 한방에 날려보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다. 더구나 작년 10월 청와대에 초청받아갔을때 '섬세한 여성대통령'으로부터 "저한테 왜 그년이라하셨죠"라는 기상천외한 기습적인 질문에 뒤통수를 맞는 '정치적 횡액'을 당한 이종걸로선 이래저래 간만에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회복하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듯하다.  


대한민국 국회의 이번 필리버스터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도 들을 만큼 여기저기서 호감지수를 높이고 있다. 물론 보수층은 싸늘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지만 말이다.

1980년대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끌려가 팬티바람에 눈까지 가리고 3시간동안 죽을정도로 구타당하는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는 고백을 한 정청래나 '살만큼 고문'을 당했다는 이대학생회장 출신 서영교의 고백은 네티즌들에게 뭉클함을 선사했다.


대통령이 통과시키 않으면 곧 큰일날 것처럼 말했던 '테러방지법'은 더민주 의원들의 필리버스터에 의해 철저히 그 '정체'가 벗겨졌고 국민들의 사생활을 감시한다는 더민주 의원들의 주장 탓인지 거의 국민저항마저 일어날 기세다. 늘 '이기는 선거'를 해온 대통령으로선 이번 더민주의 '필리버스터 반란'으로 크게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번 필리버스터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이 멋대로 국민들의 핸드폰을 무단 감청하거나 금융계좌를 마구 뒤지고 일상의 동선을 추적한다는 '테러방지법'은 더민주 의원들에 의해 '국민스토킹 법' '빅브러더 법' '유신부활법' '인권 테러법' '아빠따라하기 법' '국정원 하이패스법' '국민감시법' '국민주권강탈법'으로 불리며 난타당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 국회는 유신시절 박정희정권에의해 폐지된 이래 43년만에  필리버스터가 재등장함으로써 국회의원들 특히 야당의원들은 막강 권력자 대통령에 맞설수 있는'신무기'를 확보한 셈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필리버스터는 지금 이 시각 전세계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동독의 비밀경찰이 예술인들의 일상을 도청하는 독일영화 '타인의 삶'을 다시 소개합니다.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 The Lives of others).’


제목에서부터 왠지 문학적이고 무언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을 듯한 무거운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게다가 독일영화! 영화는 러닝타임이 140분이나 되고, ‘자유’가 없던 동독시절의 도청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서 볼까말까 망설였습니다.


고전적이면서도 윤택하고 풍성한 느낌의 영국영화에 비해 독일영화는 그들의 언어처럼 조금은 딱딱하고 굳어있는 듯하면서도 인생의 ‘기본법칙’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는 아주 독특한 연출력을 보여주곤 합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제목답게 ‘타인의 삶’은 인간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동독의 유능한 비밀경찰 비즐러가 도청을 맡게 된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인 크리스타의 삶을 축으로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게다가 ‘도청’까지 당해가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동독 예술가들은 기본적 자유마저 억압당한 채 은유적인 저항을 무대에 올리면서 간신히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나가려 하지만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들은 그들의 그런 작은 저항의 몸짓마저 용서하려 들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참아내기 어려운 ‘자유 없는 세상’은 사회의 ‘공기 청정기’라고도 할 수 있는 예술가들에겐 말할 수 없이 참아내기 어려운 시련일 겁니다. 동독 정권은 도청을 통한 철저한 감시 속에 조금이라도 정부에 반항하는 예술가들을 그들의 설 자리인 ‘무대’, 곧 일터에서 무자비하게 제외시켜버립니다.

 

정부 당국자에게 협력하는 것은 영혼을 팔아버리는 것 같아 예술가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저항했다가는 생존 자체가 위협 당하게 되는 극한 상황이어서 그들은 비밀스럽게 서로의 고통을 얘기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갑니다.

 

도청!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단어입니다. DJ정부시절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던 임동원 신건, 이런 떵떵거렸던 고위관료출신들이 ‘도청지시’라는 죄목으로 푸른 수의를 입고 영어의 몸이 되는 걸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당시 함께 구속된 국정원 2차장은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된 딸이 자살한 비극도 겪었었지요.

 

그 때 중앙일보 회장하다가 주미대사로 발령받았던 홍석현 씨는 ‘도청의 피해자’였지만 그의 ‘언행’이 공개돼 결국은 그 좋다는 주미대사직을 내놓게 되었었지요. 홍씨는 주미대사를 시작할 무렵 “장차 유엔총장에 도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혀 독자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지금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런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저도 좀 민망해 했거든요. ‘내일 일을 말하면 귀신이 웃는다’는 일본 속담이 생각났었지요. 결국 유엔 총장 자리는 온화하고 겸손해 보이는 반기문 씨에게 돌아갔지요. 아무튼 도청의 불똥은 이곳저곳으로 튀어 그때 스타일 구긴 분들이 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도청실무자’중의 한 사람은 “내가 입을 열면 여러 사람이 다친다”는 웃지 못할 고전적 협박멘트를 날려 국민을 웃기기도 했었지요.

 

‘도청’은 비단 DJ정부 시절에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YS때는 무슨 ‘미림사건’인가하는 제목부터 요상한 도청사건이 터졌었지요. 그 이전엔 예전 한나라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현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씨가 부산 초원복집에서 “우리가 남이가, 장관이 얼매나 좋은 자리인데...”라는 말들을 한 것이 도청돼 세상을 뒤집어 놓았었죠.

 

그 밖에 박정희정부시절이나 기타 전· 노 정권에서야 말할 것도 없이 수많은 도청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세월과 함께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졌지만 지금이라도 인터넷 검색창에 ‘도청’을 쳐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수많은 사건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올 겁니다. 그만큼 흔하디흔한 ‘정치사건 용어’입니다. 도청, 투옥, 고문 이런 단어들은 한때 대한민국에서 굉장히 횡행했었지요.

 

미국에서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마저 물러났고, 세계 어느 나라나 이 ‘도청’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을 정도일 겁니다. 범세계적인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도청문제’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체제유지를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 악용되기도 했었지요. 

 

‘타인의 삶’은 바로 이런 낯익은 정치 용어인 ‘도청’을 주제로 14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내내  관객에게 잠시의 ‘자유’도 허락하지 않고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즐거운 몰입의 시간이어서 전혀 괴롭지 않지요.^^ 

 

영화를 보시는 분들은 ‘동시대를 살아온 인간’으로서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삶에서 아련한 정서적 공감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한 나라의 정신적 파수꾼인 예술인들이나 지식인들의 생존방식은 독재국가나 자유국가나 비슷할 겁니다.

 

이 영화에서는 감수성과 자존심이 침해당하는 걸 제일 괴로워하는 예술가들의 세세한 삶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한편 그들을 ‘도청’하는 냉혹한 비밀경찰의 의식변화도 아주 예리하게 보여주는 감독의 연출 솜씨가 대단합니다. 이 감독에겐 드라마를 엮어나가는 특출한 재능이 있어 보입니다. 

 

1973년생인 플로리안 헨켈 본 도너스마르크(이름이 엄청 길지요^^) 감독은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금년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에 앞서 2006년 벤쿠버 영화제, 로카르노 영화제, 런던 영화상, LA 비평가협회상, 유럽 영화상, 골든 글로브 상에서 각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등등 아주 많은 상을 타는 ‘상복’도 누렸습니다.

 

독일 태생이지만 뉴욕 브뤼셀 런던 등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러시아 생트 페테르스브르크대학에서 러시아어를 런던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 ,경제학을 전공한 ‘학구파’ 신인 감독이라고 합니다. 그런 젊고 패기만만한 감독의 데뷔작이 이렇게 세계적인 상을 골고루 받은 예는 그리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신인감독의 작품이어선지 ‘신선미’가 화면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80년대 동독의 풍경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과 그들의 역할에 맞는 뛰어난 외모입니다.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인 비밀경찰 비즐러 역의 울리쉬 뮤흐와 극작가 역을 맡은 세바스티안 코치, 그리고 영화 초반부에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자살한 연극연출가 알버트 역의 폴크마르 클라이네르트라는 배우의 생김새는 실존인물들보다 훨씬 더 생생해 보였습니다.

 

몇 년전 작고한 울리쉬 뮤흐는 ‘독일의 안성기’라고 하는군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비밀경찰로서 당대 최고의 극작가를 도청하면서 극작가의 삶에 동화되어가는 과정을 차분하고 태연한 눈빛으로 연기하는 모습이 일품입니다. '도청 기술자'로서 그가 보여주는  집요함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그가 극작가의 집에서 브레히트의 시집을 훔쳐와 소파에 누워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장면과 극작가가 자신의 집에서 애인에게 들려주는 열정의 소나타를 도청관리실에서 ‘함께 들으면서’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으로 꼽을 만합니다. 역시 문학이나 음악같은 예술이 주는 정서적 영향력은 냉혹한 비밀경찰들에게도 그 저력을 발휘하나 봅니다.   

 

세바스티안 코치는 뮤흐와 함께 독일을 대표하는 연기파배우라고 하는데요, 지성미로 잘 포장된 그 수려한 외모는 역시 ‘유럽 출신 배우’답게 당당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웬만한 유럽출신 배우들에게서는 남녀 모두 자존감으로 충만한 기품과 자신감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유럽의 오랜 문화예술적인 전통이 백그라운드로 작용하고 있어서일 겁니다.


피아노 치는 솜씨가 일품인 세바스티안 코치의 표정연기는 어쩌면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 같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공산정권시절 예술가들을 괴롭혔던 문화부 장관을 만나자 극작가는 이렇게 묻습니다. “왜 나는 도청을 안했지요?” 그러자 능글맞은 표정으로 장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에 관련한 도청자료가 제일 많을 걸, 당신 집안의 벽면을 자세히 살펴보게” 그런 말을 듣고 극작가는 장관에게 “당신 같은 쓰레기가 어떻게 장관을 했지”라고 소리칩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발언 같지요?^^    

 

인간은 누구나 공기와도 같은 ‘자유’를 누리고 살 천부적 권리를 타고났다는 당연한 명제를 다시한번 떠오르게 한 영화입니다. 오랜만에 제게 문화적 충족감을 선사한 ‘타인의 삶’이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자세한 스토리는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모처럼 만난 흥미진진한 영화라고나 할까요?  암튼 요즘 말로 '강추'입니다! DVD로 감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