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유승민 기자회견, 탈당·무소속출마 선언.."시대착오적 정치 보복"

스카이뷰2 2016. 3. 24. 00:35


'유(劉)', 이제는 '무(無)'     (대구=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23일 오후 대구 동구 화랑로 자신의 의원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6.3.23     hihong@yna.co.kr

 3월23일 심야 대구 의원 사무실에서 기자회견 하는 유승민(대구=연합뉴스)




드디어 올것이 오고 말았다. 유승민이 새누리당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3월23일 심야, 기자회견장의 유승민을 보는 전국 시청자들의 대부분은 혀를 찼을 것 같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집권여당이 자당의 국회의원 한 사람을 저렇게 '집단 린치'를 가하듯 코너로 몰아붙인  '질나쁜 장면'을 연출한 일은 전무후무할 것 같다. 소위 친박 핵심들은 유승민에게 야비한 언사로 모욕하며 당을 떠나라고 협박했다.


뒷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수준낮은 정치게임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 한 남자가 이토록 화제의 중심에 서서 국민들의 집중적인 시선을 받은 건 아마 헌정 사상 전무한 일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 대해 적잖은 진보지식인들은 '봉건 왕조시대'같다는 비아냥을 퍼부었지만 결국 유승민은 '탈당'이라는 사약을 마셔야 했다.    


여성대통령의 눈밖에  났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정치탄압'을 받았던 정치인은 또 나오기 어려울 듯 싶다. 어쨌든 정치막장극의 1막은 유승민의 탈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유승민 현안'으로 무려 50일 가까이 국민의 안전을 어지럽혔던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 그리고 청와대 주인과 그를 추종하는 친박무리들... 그들은 모두 국민에게 사과해야한다고 본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극심한 '유승민 피로감'을 느꼈다. 비열한 도시에서 추악한 패싸움을 벌이는 조폭무리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던 새누리당과 청와대 핵심부의 저급한 정치극은 아마도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 같다. 지난 22일 한 조간신문1면엔 톱타이틀로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라는 문학성 짙은 제목을 앞세워 '유승민 현안'에 대한 새누리당 지도부의 비겁한 행태를 나무라는 기사를 실었다.


비단 이 신문 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매스컴이 특히나 수다떨기 좋아하는 종편에서는 '불쌍한 희생양'

유승민을 편드는 혹은 비꼬는 기사를 보도함으로써 유승민의 체급은 엄청나게 불어났고 이제는 '당당한 대권후보 반열'에 올라섰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뒤끝이 오래간다'는 평을 듣고 있는 섬세한 여성대통령의 분노 덕분에 유승민은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아무래도 유승민은 '누님 대통령'에게 한턱 단단히 내야할 것 같다. 오죽하면 한때 살생부에 올랐다며 난리를 쳤던 정두언도 "나도 좀 저렇게 키워주시지"라는 한탄아닌 한탄을 했겠는가.


유승민은 심야 기자회견에서 특유의 감성적 문장을 선보이면서 '문사적(文士的) 재질'을 뽐냈다. 물론 그 누구보다도 유승민 본인의 심적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 상태였겠지만 구경꾼 입장인 국민들로서는 그가 어떤 문장으로 탈당 무소속 선언을 할지 조금은 궁금했을 것이다. 


 유승민은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저의 고민은 길고 깊었다"며 "저 개인의 생사에 대한 미련은 오래 전에 접었다. 그 어떤 원망도 버렸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그 말의 행간속에 깊은 한탄과 비애가 숨어있는 것 같다.  "마지막까지 제가 고민했던 건 저의 오래된 질문,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였다. 공천에 대해 지금 이 순간까지 당이 보여준 모습, 이건 정의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상식과 원칙이 아니다"라고 절규했다.


 "부끄럽고 시대 착오적인 정치 보복"이라며 친박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원망을 버렸다는 고백과는 다소 괴리감이 느껴지지만 인간이기에 그런 참기 어려운 수모를 참아낸 울분을 토로한 것이라고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유승민은 자신의 공천 보류를 문제삼은 정체성 문제에 대해 "결국 정체성 시비는 개혁의 뜻을 저와 함께 한 의원들 그 죄밖에 없는 의원들을 내쫓아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며 "공천을 주도한 그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애당초 없었다"며 날을 세웠다.  


 "진박, 비박 편가르기만 있었다. 국민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국민 권력을 천명한 헌법 1조 2항입니다"라며 지난 해 여름 원내대표 직을 물러서면서 말했던 '헌법 조항'을 다시한번 내세우며 국민과 헌법만이 자신의 정치적 버팀목임을 시사했다.


'헌법'이야 유승민 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버팀목이기에 더 강한 호소력을 발휘했다고 본다. '헌법'이 지켜주는 한 제아무리 최고 권력자라도 두렵지 않다는 게 유승민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친박계 3선의원 홍아무개는 헌법보다는 의리가 먼저라는 궤변을 말했듯이 대통령을 둘러싼 소위 친위세력에겐 헌법을 들먹이는 유승민이 한없이 미울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유승민은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수는 없다"며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원칙 이 지켜지고 정의가 살아있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며 또 한번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했다. 탈당까지 해야하는 처절한 사투를 해야했던 유승민으로선 어쩌면 당연한 절규인지도 모르겠다.

 

유승민은 "권력이 저를 버려도 저는 국민만보고 나아가겠다 ,제가 두려운 것은 오로지 국민 뿐이고 믿는 것은 국민의 정의로운 마음 뿐이다. 저에게 주어진 이 길을 용감하게 가겠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결코 멈추지 않겠다, 보수의 적자, 대구의 아들답게 정정당당하게 나아가겠다"며 대구 민심에 호소했다. 이쯤되면 아마도 청와대 안방에 홀로 있을 여성대통령으로선 거의 참을 수 없는 분노감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선 생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어쨌건 대구민심은 4월 13일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지금으로선 헤아리기 쉽지 않지만  유승민이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던 별 것 아닌 말 몇마디로 탄압받고 있는 희생자 이미지'로 비쳐질 때는 승리의 여신은 '가엾은 유승민'의 손을 들어줄 것도 같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게 선거결과인 만큼 20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결과를 지켜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