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서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혼미한 시절입니다. 자고나면 '탄핵 대통령'과 관련된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희한한 뉴스가 쏟아져 국민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대통령이 범죄자들이나 쓴다는 '대포폰'을 애용했다는 뉴스는 어린학생들이 들을까 걱정됩니다. 대포폰이나 대포차 대포 통장등을 쓰면 '엄벌'에 처한다는 대한민국 법이 그녀에게도 적용될지 지켜볼 겁니다.
그 와중에 유엔 사무총장을 10년이나 지낸 74세 원로 반기문씨가 '금의환향'했지만 그가 보여준 지난 1주일은 실망스런 나날이었습니다. 그를 둘러싼 이런저런 가십거리는 여기서 되풀이 지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본인이 화를 냈듯이 그를 둘러싼 시시껄렁한 에피소드 중 일부는 '허위'였다고 하지만 어쨌든 그가 움직이는 곳곳마다 '잡음'이 따라나왔다는 건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너무 컸던 만큼 그 '반작용'이 실망으로 나타난 걸 겁니다. 여기에 여성대통령 탄핵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은 신경들이 너무 예민해져서 '관용'이나 '너그러움'같은 미덕을 상실해버린 탓도 큰 것 같습니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어떤 사람에대해 '이미지'만으로 기대를 건다는 건 때로는 터무니 없는 결과를 빚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우리가 최초로 뽑은 여성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적어도 그녀를 지지했던 51.6% 중 대다수는 그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최고 권력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맹목 지지했을 겁니다. 그 결과 오늘 이렇게 대한민국은 국제망신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치권에서 잘 포장해낸 '환상적 이미지'에 속아 막연히 그녀를 뽑았던 유권자들의 '원죄'도 이번 탄핵 사태에서 적잖은 부분을 차지한다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를 잘 모르면서도 막연히 기대를 걸었던 게 아닐까요. 반 전 총장 본인도 어쩌면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건 아닐까요. 유엔사무총장을 10년한 '경륜'으로 그냥 별 준비없이 대한민국 대통령직은 따논 당상이라고 반기문 본인은 물론 그의 추종자들은 '맹신'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일 1건'으로 귀국 이후 지난 1주일간 그가 보여준 '실수'는 본인은 '애교'로 봐달라 했지만 국민들은 그런 그를 보면서 '반기문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현실적 사고'를 하게 되면서 그의 지지율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여전히 제자리 걸음 아니, 하락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의 애교로 봐주기 어려운 실수들이 반총장의 '좋았던 이미지'에 상채기를 내고 있는 듯합니다.
예언가는 아니지만 반기문 전총장이 대권을 차지하는 건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고건 전 총리처럼 반기문씨도 '중도하차'할 가능성이 꽤 높아 보입니다. 반기문씨 정도의 '경륜'이라면 그렇게 전국을 이리저리 헤매지 말고 좀 진득하게 '상처받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진정성 어린 메시지를 차분하게 제시해 줬다면 더 좋았을 듯합니다.
뉴욕에서 날아오느라 쌓인 '시차'도 극복하기 전 70대 노부부가 팽목항이고 봉하마을이고 이러지리 뛰어다니는 게 그리 아름다워보이진 않았습니다. 꼭 그런 곳을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달래주는 방안을 제시하는게 더 도움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나 점잖은 이미지의 반 전 총장이 '돈 없다'는 타령을 했던 것도 신년 초부터 여간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 웬만한 국민들은 74세 원로 '대통령 지망생'의 입에서 그런 궁상맞은 소리가 나왔다는 것에 꽤나 실망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망하는 어르신이 그런 '시시한 하소연'을 했다는 건 힘없는 평민들로선 놀랍기도 하고 한심해보이기도 했을 겁니다. 아무리 대선은 '쩐의 전쟁'이라는 속된 말도 있지만 그래도 반기문씨가 직접 '돈 이야기'를 꺼냈다는 건 참모진들의 실수였다고 봅니다.
어쨌거나 '탄핵 시계'가 빨라지면서 대권을 향한 여러 주자들이 너도 나도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그 중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고 위로해줄 것 같은 사람은 아직은 보이질 않아 답답합니다. 지지율 1위를 달린다는 문재인씨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제 눈엔 '대통령 자질'이 부족해 보이니 큰일입니다.
오히려 지지율이 바닥인 신당의 유승민씨가 진정성 면에서 그나마 좀 나아보이는 것 같지만 그 역시 왕년에 '박근혜의 비서실장'출신이었다는 '원죄'탓에 국민들로부터 큰 지지는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은 '지도자 복(福)'이 그리 많은 나라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현명하고 억척스런 국민들 덕분에 어떡해서든 잘 되어갈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 ( 아래 글은 2009년 3월 우리 블로그에 썼던 영화 에세이입니다)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주연을 맡은 영화 ‘그랜 토리노’는 아주 쉽고 자연스러운 영화여서 모처럼 안락한 기분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지만 끝내는 사람을 울리고 마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영화인생 55년차, 팔순의 노장은 이제 숙수(熟手)의 솜씨로 ‘이것이 나의 영화다’라고 속삭이듯 외치듯 자유자재로 관객의 공감을 끌어냈습니다. 미국에서도 처음엔 6개의 개봉관에서만 상영했다가 입소문이 퍼져 한달만에 3천개 가까운 극장에 이 영화의 간판이 붙었다고 합니다. 개봉 5주차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호응을 받았다고 합니다.
언제 적 클린트 이스트우드인지... ‘황야의 무법자’로 다가온 그였지만 언제부터인지 그는 점점 생활 속에 녹아드는 그래서 자연스럽고 그래서 더 친밀감이 느껴지는 영화를 우리에게 선사했습니다.
조금은 냉랭한 분위기의 마스크지만 그것이 바로 매력이기도한 그는 젊었을 때나 중년시절 그리고 이제 황혼의 장년기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매력과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강단 있으면서 반듯해 보이는 인상에서 동양적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언뜻 기억나는 그의 예전 영화 '용서받지 못한자' ‘사선에서’ ‘앱솔루트 파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밀리언달러 베이비’ 등을 거쳐 오면서 나이 들어가는 한 남자 배우의 모습을 지켜봐왔지만 그는 나이 들어가는 배우의 초라함보다는 오히려 당당하면서도 더 다정한 분위기로 스크린을 장악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랜 토리노’는 1972년 미국 포드사가 만든 자동차 이름이고 영화는 이 차를 둘러싼 이야기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영화관에 갔기에 더 큰 감동을 느꼈나봅니다.
팔순 노장은 그랜 토리노를 통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 부모와 자식, 상처받은 사람들의 치유법, 다문화 국가인 미국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그는 아주 쉬운 화법으로 우리에게 호소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한 분야에서 대가의 경지를 이룬 사람들은 그 분야가 어떤 것이든 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 역시 대가의 솜씨가 빚어낸 작품답게 보는 사람을 안심하게 만들고 하나도 어렵지 않게 말하면서도 진한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1955년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5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영화판에서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영화의 모든 것’을 해봤고 그 영광을 누려왔습니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그루’로서 ‘영원한 현역’으로서 여전히 그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는 2008년에도 두 편의 영화를 제작 감독 주연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젊은 영화감독들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막판 스퍼트’를 내고 있는 듯합니다. 일부에선 ‘그랜 토리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지상에서 감독·주연을 맡는 마지막 작품일 것이라는 말도 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 “이 영화는 내 나이의 이야기이고 나한테 딱 맞는 역할이었다”고 말했듯 ‘그랜 토리노’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55년 영화인생을 보내면서 터득한 모든 것이 자연스레 녹아있습니다.
1950년 한국전에 참전했던 월트 코왈스키는 자동차회사를 다니다 은퇴하고 아내마저 먼저 보낸 뒤 매사가 못 마땅한, 괴팍한 ‘독거노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가 살고 있는 주택가는 이제 점점 퇴락해 제3 세계 이민자들이 속속 모여들어 그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베트남이나 라오스 태국에 살던 ‘몽족’ 일가가 새로운 이웃인 것이 월트는 영 못마땅합니다.
월트는 아들내외나 손자 손녀와도 화목하게 지내질 못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홀로된 아버지를 요양원 같은 곳에나 모실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대학생이 되는 손녀는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그랜 토리노 자동차를 물려달라고 칭얼대기나 합니다. 이러니 월트가 ‘정붙이고’ 살아갈 존재는 그와 함께 늙어온 데이지라는 강아지밖에 없습니다.
옆집은 북적대는 대가족에다가 와글와글 시끄럽습니다. 이것도 월트를 화나게 만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월트는 자신의 애장품인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는 옆집 소년 타오를 발견하고 혼찌검을 내줍니다.
그 사건으로 오히려 타오와 월트 노인은 거의 가족처럼 친해집니다. 오죽하면 노인은 "내 자식보다 이 동양놈들과 더 통하니...'라고 말할 정도가 됩니다. 몽족 불량청소년들은 타오를 끌어들이려다 실패하자 타오와 그 누나를 괴롭힙니다. 월트는 그 몽족 남매를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영원히 격리 시킬 궁리를 한 끝에 어느 날 밤 행동으로 옮깁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장엄한 희생, 아름다운 헌신, 위대한 휴머니즘이 어떤 것이라는 걸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인류평화 같은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된 인생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합니다. '존재'자체로 젊은 세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클린트 이스투우드의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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