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

우디 앨런의 ‘미드 나잇 인 파리’

스카이뷰2 2017. 5. 25. 11:49



 

 



세계 영화계의 독보적 멋쟁이 감독 우디 앨런은 35세 연하 한국 입양아 출신 어린 아내'순이'와 살고 있는 덕분인지 여전히 ‘청년의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싱싱한 청년기운이 창창해 보인다. 그런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야말로 ’숙수(熟手)의 솜씨가 한없이 투명하게 빛나는 탁월한 수작인 듯하다.   


어떤 재료든 그의 손에 들어가면 슬렁슬렁 주물러 내놓더라도 아주 ‘맛있는 영화’로 탄생한다. ‘천재’가 아니고선 이렇게 자연스럽게 영화의 묘미를 보여주기도 힘들 것 같다. 그런 우디 앨런이 2011년 내놓은 ‘미드 나잇 인 파리’는 2012년 봄 아카데미 영화제 각본상과 골든 글로브상 각본상을 받았고,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의 영광을 안은 작품이기도 하다.  


저렇게 세련되고 멋있게 만든 영화가 1935년생 노감독(영화제작당시 77세)의 손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한국의 최고령 유명감독 임권택 감독은 우디 앨런보다 한 살 연하다.  그런데 임감독은 더 나이들어 보인다. 영화적 감각도 조금은 고루한 경향이 있다. 반면 우디 앨런에겐 팽팽한 감수성이 현악기의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시중 우스갯소리는 우디 앨런에게 어울리는 듯하다.  


‘거장 감독’의 예우나 대접을 마다하는 듯한 우디 앨런 감독은 늘 청년기운을 발산하며 촬영장을 누비는

165cm 단신(短身)의 재주꾼이다. 천재들이 대부분 그렇듯 얼굴엔 약간의 신경질적인 섬세함이 늘 묻어 있지만 마음은 여려보이는 듯한 그런 ‘최고의 감수성’이 예술의 도시 파리를 무대로한 영화를 저렇게 솜씨있게 빚어낸 원동력이지 싶다.  


러닝 타임 95분짜리 길지 않은 이 영화는 관객에게 ‘파리 명소 관광여행’을 알뜰히 구경시켜줌과 동시에 우리네 일반인들이 평소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온 예술과 인생과 철학에 대해 ‘쉬운 화법’으로 명강을 펼친다.  영화는 우디 앨런 감독의 ‘예술관과 인생관’을 파리라는 빛나는 무대 위에서 원맨쇼처럼 화려하게 펼쳐보이고 있다.


‘까칠한 도시 남자’의 전형이라고도 불릴만한 우디 앨런은 ‘원조’ 뉴요커답게 멋에 살고 멋에 죽는 그런 댄디한 스타일이다. 그런 멋쟁이 감독이 파리에 반해 내놓은 이 영화에서 우리는 1920년대 ‘파리의 지붕 밑’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던 아메리카의 청년 작가들, 헤밍웨이나 스콧 피츠제럴드, 아직 유명해지기 전인 청년 화가 피카소와 달리 등을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더구나 파리여행 가이드로 깜짝 등장하는 프랑스의 전 대통령 사르코지의 모델 출신 부인 카를라 부르니를 알아보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영화는 할리우드 유명 시나리오 작가 길 펜더와 약혼녀 이네즈가 부모와 함께 파리로 예비 신혼여행을 가면서  시작한다. 웬만한 미국의 신혼커플은 파리로 신혼여행가는 걸 최고 멋진 신혼여행으로 친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옛 연인과 함께 파리로 여행간 여성 칼럼니스트가 호텔 객실 창문을 열고 '오 파리!'를 외치며 감격해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1920년대 미국의 젊은 예술가들 중 헤밍웨이도 파리 예찬론자였다. 파리를 사랑한 헤밍웨이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당신이 젊은 시절 파리에 살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면, 당신이 평생 어디를 가든지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처럼 그대 옆에 머무를 것이다.”  


‘마음의 축제’라고 말할 만큼 파리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시공간의 무대로 다가온다. 예술가들이 왜 파리를 사랑하는지를 알 것만도 같이 ‘파리의 공기’는 달콤하다. 딱히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파리는 사람들에게 멋진 감수성을 선사하는 감각적으로 풍요로운 도시다.


이 도시에서 ‘문학청년’인 남주인공 길은 ‘소설을 써야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지만 ‘현실주의자’인 약혼녀 이네즈는 ‘비에 젖은 파리’를 좋아하는 약혼남이 그저 못마땅하기만 하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신데렐라 공주는 ‘서글픈 현실’로 돌아가야 하지만 영화속 문청(文靑)은 자정의 파리 도심에서 1920년대를 풍미했던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피카소와 그들의 연인들과 함께 예술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간 TV드라마 '닥터 진'의 송승헌처럼 영화 속 남주인공은 자신이 ‘사숙(私塾)’해온 1920년대 작가들과 대화하는 자체만으로도 살맛이 난다. 물론 그 시간에 현실적인 약혼녀는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춘다. 


영화 화면에는 파리의 그 유명한 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에펠 탑, 세느 강변, 베르사유 궁전,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 로댕 미술관,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 등 파리의 유명한 관광 명소들은 물론, 생에티엔 뒤 몽 교회, 지베르니 정원, 1784년에 오픈한 유서 깊은 레스토랑인 그랑 베푸르, 오랑주리 미술관, 팔레 가르니에, 방돔 광장 등 파리의 곳곳을 자상하게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파리를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에겐 ‘추억의 거리’에 대한 향수가 일어날 정도로 감독은 관객의 ‘여행 본능’을 자극한다.  


‘그 좋은 시절’로 일컬어지는 1920년대의 파리 예술인들은 오히려 1890년대 빛나는 시대(벨 에포크)를 그리워한다. 반면 1890년대의 로트렉, 고갱, 드가 같은 화가들이 르네상스시대를 그리워하면서  진지하게 담론하는 모습에선 어느 나라나 자신의 시대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까다로운 존재들인 예술가들의 ‘복고적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르네상스 시대를 ‘골든 에이지’로 꼽는다.  


어쩌면 ‘그 좋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예술가들 아니 인간 모두의 공통적인 운명의 패턴일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방황하는 마음들을 달래기 위해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이라는 시 구절이 경구처럼 회자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원한 댄디 보이’ 우디 앨런 역시 1920년대의 ‘풍요로운 예술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도 다가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바치는 ‘헌사’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 같다. '오리지널 뉴요커'인 이 노감독은 요즘 유럽의 예술적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 영화, DVD로 꼭 보시길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