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의원의 사과방문은 이뤄지기 어려워졌다. 이국종이 12월1일 한 시사프로의 전화인터뷰에서 '그냥 각자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거다'라는 '쿨한' 발언으로 완곡히 그 의원의 방문을 사절한 것이다. 어쨋건 '블루칼라'들이 많이 지지한다는 정의당 의원으로선 이번에 구설수를 단단히 겪은 셈이다. 정의당에 대한 이미지가 엄청 나빠졌다는 건 일종의 '이미지 비지니스'인 정치판에선 꽤 손해본 장사다.
어쨌거나 한국사람들은 요즘 오랫만에 '의사같은 의사'를 만난 것에 대해 위로받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의료인들과 대형 병원에 대해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불신을 해왔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늘 변함없는 '무표정'의 이국종에게서 그나마 '진정성'을 발견했던 것같다.
사경을 헤매다가 간신히 살아난 25세 귀순병사에 대해 이국종은 '현빈을 닮은 잘생긴 젊은이로 남한 대중문화에 대해 많이 알고 또 궁금해 한다"고 전했다. 그 병사의 정신건강을 위해 부모형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소녀시대'의 노래를 들려주거나 한국드라마 미국 드라마를 틀어주고 있다는 소식에 네티즌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온 나라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귀순병사 이야기에 집중하는 동안 이국종은 어제(1일) 한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비장미 넘치는 발언'으로 또 다시 국민들을 뭉클하게 했다. 그는 “외과 의사로서 저한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며 “외과의사들은 그렇게 의사 수명이 길지 않다”는 말을 했다. 69년생 이국종으로선 '칼'을 써야하는 외과의사의 한계를 느낀 발언일 것이다.
그 인터뷰에서 '꿈'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제가 외상센터를 맡는 한 적당히 타협하면서 가지는 않겠다. 제 손끝에서 이렇게 치료되는 환자분들이 잘못되지 않고 큰 의료사고 없이 잘 마쳐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로서는 당연하면서도 절실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좀 '뜨기만 하면' 정치할 생각 없느냐는 실례되는 질문을 종종하는 게 거의 관습처럼 된 것 같다. 그 인터뷰에서도 이국종에게 정치권에서 러브콜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했다. 지금 그런 질문을 할 때냐 말이다. 그러자 이국종은 “저는 의료시스템 말단에서 수행하는 사람이지, 정책을 만들지 않는다”며 “제가 아는 굉장히 훌륭한 정치인들이 많이 계시다. 그런 분들을 그저 도와드릴 뿐이지, 제가 주제넘게 감히 나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고 한다. 우문의 현답이었다.
'중증외상센터'라는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하기도한 병원의 한 파트가 이번 '귀순병사 사건'으로 인해 널리 알려진 것은 늘 '적자'로 '병원장에게 불려가 야단을 많이 맞아왔다는 이국종에게 그나마 한 숨 돌릴 수 있는 '국가적 지원'을 받아내는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 어제 보도에 따르면 내년 예산에서 외상센터 지원에 2백억원 정도를 배정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국종은 '아직 갈길이 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1조원의 특활비'를 쌈지돈처럼 쓰고 있다는 한심한 공무원들을 생각하면 2백억원은 그냥 껌값이다. 제발 '그놈의 특활비'를 좀 국민들 위해 꼭 필요한 곳에 쓰라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는 걸 문재인 대통령은 아느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이국종은 '1년에 집에 들어가는 날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고 웬만한 일상은 세평 남짓한 병원 구석 연구실에서 해결한다는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버텨볼 때까지 버티겠다'는 결기 어린 발언을 해 국민들에게 박수 받고 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만난 어제도 이국종은 웃지 않았다. 해군 소령 제복 차림으로 청와대에 간 그는 여전히 '수술방 이국종'처럼 잔뜩 긴장된 표정이었다. 하지만 할 말은 또박또박 다 했다. 그가 '문재인 대통령 각하'라는 표현을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오히려 환호했다. 그만큼 이국종의 진정성을 믿기에 '이국종이 쓰는 각하라는 말이 신선하게 들렸다'는 칭찬이 속속 댓글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사실 온종일 '생사를 가르는 순간'을 집도하고 있는 이국종에겐 그런 지엽적인 문제로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가소로울 지도 모르겠다. '치사율 10%'가 넘는 전쟁같은 수술실에서 360일 가까이 살아가야만하는 '숙명'을 타고난 이국종이라는 한 의사의 존재가 우리 국민에게 큰 울림을 선사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