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김천지원 성범죄전담재판부 서경희지원장(가운데)류경은(좌측) 박승혜판사(우측). (CHOSUN.COM사진)
어제(5일) 우리 블로그는 1만명 가까운 네티즌들이 몰려들어 하루종일 와글와글했다. 새로 글을 올린 것도 아닌데 어떤 루트로 네티즌들이 방문하는지는 몰랐다. 하루 지난 오늘 아침에서야 다음 측이 집계한 '게시글 베스트'에 2011년 썼던 '삼총사 여성판사들 -전국 유일 성범죄 전담재판부 구성'이라는 제목의 글이 1위를 차지한 걸 알았다. 대구 지법 김천지원의 세 여성판사 이야기를 다뤘던 글에 방문객이 몰려온 것이다.
3명의 여성판사중 7년전 당시 30세로 '막내'였던 박승혜 판사가 서울 서부지법 영장전담판사가 돼 어제 '미투 고발'로 자신의 여비서에 의해 '정치적 생매장' 당한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일약 유명해진 덕분이었다. 네티즌들이 이 '안희정사건'에 얼마나 관심이 높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박승혜 영장전담판사는 5일 오전 1시30분 "범죄 혐의에 대해 다퉈 볼 여지가 있고, 피의자가 도망할 우려가 있다거나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는 점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7년전 보도된 위의 사진 속 맨 오른쪽에 환하게 웃으며 앉아있는 여성이 바로 박승혜 판사다.
81년생으로 올해 37세인 박 판사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2007년 판사에 임관됐다. 그러니까 김천지원이 첫 부임지였다.
이번 안희정사건은 처음엔 남성판사에 의해 영장이 기각됐고 어제 여성판사인 박판사에 의해 다시 기각됐다. 속된 말로 '대한민국 검찰이 새됐다'는 댓글들이 차고 넘쳤다. 안희정으로선 한숨 돌린 셈이고 방송국에 뛰어가 안희정을 고발한 그 여비서와 그녀를 돕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속상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우리 블로그는 안희정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의 파렴치함이 여비서에 의해 폭로됨으로써 '깜냥도 안되는 인간'이 대통령하겠다고 나대는 꼴이 사전에 차단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말이 안되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대한민국은 아무래도 지도자 복이 지지리도 없는 나라라고 생각해왔던 게 여전히 유효하다는 상황에 그저 씁쓸할 뿐이다. '가장 강력한 차기 대선후보'였다는 안희정의 '두 얼굴'이 드러났다는 건 그나마 하늘이 도운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투운동'이야 당연히 찬성이다. 하지만 손석희 뉴스룸처럼 '언론의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분별력'도 상실한 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다는 여성을 무작정 인터뷰 대상으로 앉혀놓고 '가해자는 죽일놈'이라는 여론을 유도했다는 것 또한 한심한 일이라고 본다. 손석희씨에게 묻고 싶다. 만약 안희정이 무죄판결을 받게된다면 무슨 말을 할지. 아니 무죄 판결이 나오지 않더라도 과연 방송이 '법보다 위에 선 것처럼' 한 인간을 무조건 매도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범법자'에게도 인권은 보장해줘야하는 것이다. 매스컴이 법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이번 '안희정 사건'에 대해 과연 두번씩이나 영장을 청구한다는 게 옳았던 것인지 묻고 싶다. 법에 대해 별 아는 것 없는 나는 물론이고 네티즌의 대다수가 이번 '안희정사건'은 구속사유는 아니라는데 공감했다. 우리 블로그에서도 '미투운동이 수상하게 흐르고 있다'는 제목으로 글을 썼지만 도대체 그 여비서의 행실이 과연 진정한 '미투 피해자'이냐는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됐었다. 이걸 또 일각에선 2차 가해 운운하면서 난리를 폈었다. 하지만 법원은 결국 두 차례 모두 영장을 기각했다. 그렇다면 검찰의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말이다.
어쨌든 박승혜 판사는 7년전 김천 지원의 '막내 여판사'로 성문제 전담 재판을 할 당시만 해도 자신이 오늘날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구속을 면한 안희정이나 그걸 지켜본 '미투 피해자'라는 여비서 그리고 그녀를 성급하게 불러내 인터뷰했던 손석희와 영장청구했던 검사들은
지금 과연 어떤 심경일까. 미투 직격탄을 제대로 맞은 '안희정 사건'은 과연 어떻게 '엔딩 신'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아래 글은 2011년 11월30일 우리 블로그에 제가 썼던 글입니다. 다시 소개합니다.
삼총사 여성판사들-전국 유일 성범죄 전담재판부 구성
보랏빛 장식무늬가 돋보이는 법복차림의 여성판사 3명이 법대(法臺)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아침신문에 실린 이 사진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볼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여성법조인들 사진이다.
3명으로 구성되는 재판부 판사 전원이 여성으로만 구성된 건 이번 경북 김천지원 ‘성범죄전담재판부’가 처음이다. 이제까지는 대체로 법정의 법대에 앉은 3명의 판사는 대부분 전원 남성이거나 여판사가 ‘양념’처럼 한 명 끼여 있었다. 더구나 여성 부장판사는 드물었다.
그렇기에 국내 최초로 김천지원의 ‘삼총사, 여성판사들’로 구성된 재판부는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부장판사 서경희 대구지법 김천지원장(49세)을 필두로 류경은(31) 박승혜(30)판사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야말로 ‘여인천하’라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의 첫 여성판사는 1954년 법관으로 부임했던 故 황윤석이다. ‘황판사 사건’으로 더 알려진 고인은 서울법대 출신으로 1953년 제 3회 고등고시에 두 번째 여성합격자로 법조계에 발을 디뎠다. 최초합격자는 바로 한 해전 합격했던 故이태영이다. 알려졌다시피 이태영은 당시 야당정치인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로 임명되지 않았고 황윤석이 스물다섯의 ‘어린 나이’에 ‘대한민국 제1호 여판사’의 영광을 안은 것이다.
수재로 소문났던 황 판사는 명성에 걸맞게 ‘명판사’로 이름을 알려가던 무렵 1961년 4월 21일 자택에서 ‘감기약’을 잘 못 복용해 유명을 달리했다. 32세로 요절한 것이다.
그 이후 여판사 출현은 그리 많지 않다가 사법시험의 정원이 1천명으로 크게 늘어나면서 ‘여판사’도 대거 등장했다.
현재 전국 법관 2610명 중 여판사는 670명으로 전체의 25.7%를 차지하고 있다. 판사 네명 중 한명의 비율이니 이제는 ‘희소성’에선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여성판사’라면 최고의 전문직 중 하나로 대접받고 있다. 몇 해 전 탤런트 송일국이 여판사와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마 연예인 남편을 맞은 ‘첫 여판사’일 것이다.
예전엔 ‘여판사’나 ‘여검사’라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고고한 분위기의 전문직여성들이라는 이미지가 대세였다. 하지만 요즘은 인기탤런트와 결혼하기도 하고, 운동권 출신 남편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거나 같은 판사끼리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일도 일어나는 둥 ‘보통여자’들과 별 다르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최근 대법관으로 임명된 한 여성은 남편이 갑자기 ‘출가(出家)’해 본의 아니게 이혼당해야 했을 만큼 특이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요즘 여성법조인들은 일반인들 못지 않게 지지고 볶는 ‘보편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는 말이다.
요즘은 또 남성법조인들도 예전같지 않다. 요 며칠 전 뉴스에 따르면 꽤나 특이한 ‘남성판사’들도 적잖은 것 같다. 40대 중반의 최은배라는 부장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살림을 팔아먹은 이날을 잊지 않겠다”며 FTA국회통과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강심장’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품격 있는 법관’의 자세를 중시하는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대한민국 부장판사가 대통령에게 뼛속까지 친미라며 ‘공격’한다는 건 상식있는 사람들로선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요샌 워낙 세상이 급변하다보니 ‘중립’을 지켜야하는 법관들마저 이렇게 ‘선동’의 글을 세상을 향해 공개적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튀는 법관’에 대해 최고 직속상관인 대법원장이 ‘징계적 발언’을 하자 최 부장판사를 편드는 ‘동류(同流)의 판사들이 “최 판사를 건드리면 가만 안 있겠다’며 조폭성 글을 앞다퉈 법원 게시판에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런 세상인 만큼 여성판사 3명으로 전담재판부를 구성해 재판을 하고 있다는 ‘뉴스’는 신선한 소식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요 근래 ‘죄질’이 매우 나쁜 성범죄자들에 대한 ‘형량’이 너무 후하다는 지적과 함께 남성판사들 ‘눈높이’로 보는 탓이 크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세태를 감안하면 이들 ‘여성전원재판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꽤나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김천지원 성범죄 전담재판부’의 세 여성판사는 자신들이 국내 최초의 여성전원 재판부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처음 알고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게다가 ‘성범죄’에 대한 재판부라 더 눈길을 끌고 있다는 걸 여판사 3인은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라는 것이다. 그만큼 ‘중책’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서경희 부장판사는 “피해자들이 증언하면서 당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줄일 수 있어요. 여성판사에게 말하는 게 남성 판사에게 말하는 것보다 정서적으로 편한 건 사실이니까요”라고 말했다. ‘성범죄’라는 특수범죄의 피해자인 대부분의 여성들이 법정에 와서까지 ‘수치심’을 느껴야 할 정도로 대한민국 법정의 현주소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법정에 증언하러 나왔던 한 성폭행 피해 여성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여판사들이라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정말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고 한다. 김천지역의 김모(51) 변호사는 "처음에 재판부를 봤을 때에는 의뢰인도 나도 깜짝 놀랐지만 익숙해지니 좋은 점이 많다"며 "남성 셋으로 구성된 재판부보다 재판을 세심하게 진행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전원 여판사로 구성된 재판부에 대한 여론이 괜찮은 것같다.
이들에게는 여성 재판부로서 고민도 있다고 한다. 남성 피고인의 처지를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서 지원장은 "혹시 남성 피고인의 성장 환경이나 행동 양식 등을 깊이 있게 고려하지 못할까 봐 우려되기도 한다"며 "여성만 있기 때문에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잡아내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수다 떨듯'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세 여성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여성 법관을 편안하게 여긴다는 것은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좀 더 개선돼야 한다는 증거다. 궁극적으로 법관의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성폭력 피해자가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법원이 되면 좋겠다"
‘법’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지만 너무 너그러운 듯한 요즘 성범죄형량 판결을 이 세 여성판사들이 확 뒤집어엎는 ‘혁명적인 형량’을 때려 성범죄 피해를 줄이는데 공을 세웠으면 좋겠다. 아무튼 보기 좋은 이 세 여성판사 삼총사들의 건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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