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김경수
나의 선한 친구 A에게
친구야 잘있니? 더워도 너무 더운 요즘 더위 핑계 대고 한 열흘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 사이 정치인 중엔 제일 착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던 노회찬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명을 버렸고,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사정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은 진보 좌파가 아닌 사람들의 의견은 '적폐'로 내몰린다. 나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프리랜서'여선지 진보들의 행태도 한심하지만 보수들의 멍청한 언행들도 영 마뜩지 않다. 그래서 더 이상은 정치와 관련된 글들은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언론에 공개된 '드루킹이 김경수에게 전달한 재벌개혁 문건내용'과 하루 전 '김경수와 드루킹의 대화 내용을 보니 기가 막혔다. 가만있으면 이 살인적 무더위가 더 짜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그들의 대화는 화를 돋웠다. 그래서 이렇게 몇 자 적고 있다.
요 며칠새 노회찬을 죽음으로 내몬 특검의 댓글조작사건 수사는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경남지사 김경수와 드루킹으로 다시 수사방향을 틀었고 그 덕에 철통 보안을 자랑한다는 '시그널'을 통한 드루킹과 김경수의 은밀한 대화가 한 언론에 죄다 공개됐다. 그들은 1년 반 뒤 자신들의 대화가 이렇게 만천하에 알려질지는 꿈에도 몰랐을 거다.
이 드루킹 사건이 맨 처음 터졌을 때 분명 김경수는 드루킹과는 그저 한번 인사한 사이라고 했었다. 지지자들이 한 둘이냐며 천연덕스럽게 반문까지 했다. 하지만 어제 오늘 공개된 '드루킹과의 밀담'을 보면 김경수라는 52세된 신출내기 정치인의 뻔뻔한 거짓말에 그저 할 말을 잃는다. 대한민국 대선후보가 해야할 '정책 발표 자료'를 애걸하며 부탁할 정도라면 그 둘은 무슨 사이라고 해야겠니.
김경수는 2017년 1월 5일 드루킹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이렇게 매달린다. “재벌개혁 방안에 대한 자료를 러프하게라도(대략적으로라도) 받아볼 수 있을까요? 다음 주 10일에 (문 대통령이) 발표 예정이신데 가능하면 그 전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포함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목차라도 무방합니다”라고 .
난 이 대목이 믿어지지 않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작년 1월이면 한창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전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시점이다. 여성대통령은 자신이 탄핵 당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겠지만 촛불든 시민들은 이미 '새 대통령'을 갈망하고 있던 때였다. 제일 웃기는 건 탄핵이 안될거라면서 '탄핵 기각 축하 5단 케이크'까지 만들었다는 후일담이다. 3단도 아닌 5단 케이크!!!
그런 시절에 드루킹이라는 정체불명의 인사에게 '유력 대선후보의 대변인'이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전직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총애를 받았다던 '서울대 인류학과 출신' 김경수가 '재벌 개혁방안'자료를 러프하게라도 받아볼 수 있겠냐는 SOS를 드루킹에 보냈다는 건 내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웠다. 오죽 급했으면 '목차라도 무방하다'는 갈급한 문자까지 보냈겠냐 말이다. 그래도 모든 면에서 명색이 세계 10위 권 안팎을 드나든다는 대한민국의 '대권'을 곧 거머쥐려는 사람의 최측근이 인터넷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논객'에게 재벌개혁안을 부탁했다는 건 넌센스가 아니겠니...
어쨋든 대한민국은 아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문명국가여선지 드루킹과 김경수의 '은밀한 대화'가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됐고 아무 힘없는 백면서생에 불과한 나마저 화가나 이 염천 더위에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보도에 더 놀란 건 드루킹이 김경수에게 보낸 재벌 개혁 계획 보고 중 들어있던 '개성공단 2000만평 개발 계획'이 이틀 후 '문재인 후보'의 페이스북에 실렸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2017년 2월 9일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개성공단 2000만 평 확장 계획을 밝혔다. “정권 교체를 이루면 당초 계획대로 개성공단을 2단계 250만 평을 넘어 3단계 2000만 평까지 확장하겠다. 그 밖에도 다양한 남북 경협사업을 추진하고 우리 기업들의 북한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장려할 것”이라고 썼다는 것이다.
그럼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그도 드루킹의 존재를 간접적으로나마 알았을 거라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 게다가 부인인 김정숙씨도 그 바쁜 후보연설대회장에서 드루킹이 대표로 있다는 경인선이라는 조직에 인사가야한다며 다섯 번이나 목청을 높여 경인선을 부르짖던 장면이 동영상 뉴스로 소개까지 됐으니...아무래도 그녀 역시 드루킹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거라는 '합리적 의심'을 해 볼 수 있다.
상황이 이쯤 되면 경남지사 김경수는 '이실직고'해야할 텐데 아직 김경수가 '양심고백'을 했다는 이야기는 보도되지 않고 있다. 지금 인터넷에는 드루킹에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본명이 김동원이라는 49세의 드루킹은 지금 옥중에 있으면서 몇 달 전에는 한 보수 매체에 '편지'를 보내 '혼자 죽지는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리고는 우연의 일치인지 노회찬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고 드루킹과 김경수의 '은밀한 대화'가 공개되면서 특검은 김경수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항간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드루킹이 이 정권과 '엄청난 거래'를 시도하다가 결국은 저렇게 됐다 박근혜 때 최순실과 문재인 김경수와 드루킹이 다를게 뭐냐, 아무래도 특검에게 희망을 건다는 건 무리다 등등 온갖 확인되지 않은 주장들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측에선 '이건 최순실 국정농단보다 더 질이 안 좋다'며 철저수사를 부르짖고 집권한 세력측에선 별 것 아닌걸 침소봉대한다고 억울해 하는 중이다.
착한 친구 A야, 나는 드루킹이 어떤 인물인지 별 아는 건 없지만 아마도 그는 대단한 학벌이나 내세울만한 배경이나 세력은 없고 독학으로 '출세의 길'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평범하지만 비교적 똘똘한 인간형이었을 것이라고 유추해본다. 그런 그가 봤을 때 곧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후보의 대변인을 지내는 서울대 출신 인물은 엄청 부러운 존재였을 지도 모르겠다. 또 정치인 중 가장 '착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으로 알려졌던 경기고 출신의 노회찬 같은 사람도 드루킹에겐 '가까이두고 싶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드루킹은 김경수를 비롯한 좌파 집권세력이 자신의 '인사청탁'을 들어주지 않자 토사구팽당했다는 쓰디쓴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앞에선 깨끗한 얼굴로 착한 척하면서 뒤로는 온갖 추접한 일들을 저질러온 자들'이라며 절규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아직 젊은 정치인에 속하는 '실세'김경수의 외모는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선 비교적 단정하고 괜찮아 보였다. 그래선지 온라인 카페에선 젊은 여성들을 주축으로한 '김경수 팬클럽'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의 생일이라며 뉴욕 한 복판 전광판에 '해피버스테이' 를 실었던 '문재인 팬 클럽'처럼...
착한 친구 A 야, 그러고보니 너는 지금 집권세력의 유력인사들이나 자유한국당을 수술하러 들어간 비대위원장 김병준과도 잘 알고 있는 사이지... 이 더위 지나면 한 번 만나서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렴. 날씨도 더운데 오늘은 이만 쓸게. 무더위 잘 지내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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