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더스틴 호프만과 엠마 톰슨의 빛나는 연기 STAFF 감독, 각본ㆍ조엘 홉킨스 | 촬영ㆍ존 드 보맨CAST 하비ㆍ더스틴 호프먼 | 케이트ㆍ엠마 톰슨 | 매기ㆍ에일린 앳킨스 | 수잔ㆍ리안 바라반DETAIL 러닝타임ㆍ93분 | 관람등급ㆍ12세 관람가 마음 약해지기 쉬운 요즘 같은 계절엔 누군가 혹은 무언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어진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동네 극장 앞을 지나가다 ‘런던, 가을, 인연...’이라는 매혹적인 단어의 조합이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런던의 가을, 가슴 벅찬 인연이 찾아왔다. 용기를 내요...당신’ , 버버리 코트 차림에 백발이 성성한 더스틴 호프만과 역시 버버리 코트를 입고 롱부츠를 신은 엠마 톰슨이 서로 다정히 바라보는 포스터에 끌려 그냥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라는 다소 진부한 제목이 좀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금세기 최고의 ‘전설적 배우’라는 더스틴 호프만과 우아한 영국의 대표적 여배우 엠마 톰슨이 다정한 연인의 포즈로 행복해 하는 사진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무조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역시 ‘이름값’하는 배우들의 영화는 마음이 헛헛했던 관객에게 큰 위로가 된 것 같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만난 나이든 연인들의 평범한 러브스토리였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착하고 순수하게 만들어 주는, 아주 좋은 여운을 남겨준 영화였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스토리로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고 눈물겹게 만드는 영화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 러닝타임 93분인 이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단출하다. 뉴욕에 사는 광고 음악 작곡가 하비는 외동딸의 결혼식을 위해 바쁜 일정을 쪼개 런던으로 떠난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딸아이는 자신이 아닌 새 아빠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섭섭한 소식을 전한다. 설상가상으로 회사에선 느닷없이 해고 통지까지 날아온다. 백발이 성성한 하비의 런던 여행은 대책 없이 꼬여만 간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이제는 ‘아웃사이더’의 신세로 몰락해 가는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건 참아내기 어려운 일이다. 하비는 우울함을 달래려 카페에 들렀다가 우연히 공항에서 일하는 케이트와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특별한 호감을 느낀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도 흔해서 이렇게 뻔한 걸 영화로 만들겠다고 나선 감독이 무모하게까지 느껴진다. 요즘 세상에 누가 이렇게 밋밋하고 재미없는 스토리를 보러 영화관에 가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 이 영화, 시간이 흐를 수록 사람을 점점 끌어당기는 마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엔 그저 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로 자칫 졸릴 정도였지만 주인공 하비역을 맡은 더스틴 호프만과 역시 내로라하는 여배우 엠마 톰슨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 속에 관객은 어느 새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연기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그만큼 신예 감독인 갓 마흔을 넘긴 조엘 홉킨스의 역량이 눈부시다고나 할까. 영국 태생인 홉킨스 감독은 직접 쓴 시나리오 <Last Chance Harvey>를 들고 엠마 톰슨에게 찾아가 여주인공을 맡아줄 것을 제안한다. 홉킨스의 데뷔작 <점프 투모로우(Jump Tomorrow)>에서 감독의 재능을 이미 알아본 엠마 톰슨은 그 자리에서 출연을 수락했고, 바로 뉴욕의 더스틴 호프만에게 이메일을 보내 의견을 물었다. 연락을 받은 더스틴 호프만은 48시간 만에 엠마 톰슨에게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평소 몸값보다 훨씬 낮은 개런티에도 불구하고 촬영을 위해 런던으로 날아와 주었다. 더스틴 호프만과 엠마 톰슨, 그들이 보여주는 명품 연기는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에서 시작되었다. 엠마 톰슨은 더스틴 호프만과의 호흡에 대해 “우리 사이엔 ‘케미스트리’가 있다’고 말하며 ‘그런 상대는 원한다고 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닌데, 이번 영화에 함께 출연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더스틴 호프만은 엠마 톰슨과의 호흡에 대해,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감정을 짜낼 필요도 없었고 힘들어 연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며 만족감을 표현했다. 그리고 ‘엠마 톰슨과 유머 감각이 비슷해 촬영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있는 케이트를 연기할 때의 장면이 정말 좋았다’며 ‘어떤 배우에게서도 보지 못한 삶의 진실이 묻어났다’고 칭찬했다. 두 사람의 연기 호흡에 가장 감명 받은 이는 바로 조엘 홉킨스 감독이었다. 이제 막 감독으로 데뷔한 조엘 홉킨스는 더스틴 호프만과 엠마 톰슨이라는 두 '거장 배우'가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와 촬영현장을 유연하게 운영했다. 그는 ‘더스틴 호프만 같은 대배우는 관객들이 점점 캐릭터에 공감하고 동조하게 만들 줄 안다’고 밝히며 그가 있었기에 하비가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관객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을 거라고 감탄했다. 말하자면 이 젊은 재주꾼 영화감독은 그의 비범한 재능에다 ‘귀인의 도움’까지 받는 행운 속에서 독특한 로맨스 영화의 전범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더구나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아온 이 재기 넘치는 감독은 런던을 마치 파리나 프라하처럼 멋진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마술을 보여주었다. 파리의 세느강이 연상되는 해질녘의 템즈 강변, 낭만적인 세인트 폴 성당과 서머셋 하우스, 모던한 느낌의 사우스 뱅크 센터 등이 바로 하비와 케이트의 데이트 장소로 관객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게다가 은행잎 가득한 눈부신 가을의 런던이라는 도회적 이미지가 이 영화의 가장 든든한 매력 포인트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감독은 자신의 고향 런던이 가진 매력을 재발견할 수 있는 신선한 기회를 선사하고 있다. 흔히 러브 스토리라면 화려하고 멋진 남녀 주인공이 등장하는 비현실적 스토리가 주종을 이루는 영화판에서 이 ‘마지막 로맨스’는 수수한 사랑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어쩌면 바로 우리 이웃이나 혹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든 감독의 재능이 보통사람들의 사랑을 새롭게 만들어 냈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사람들, 그것도 이제 인생의 종착역에 점점 다가가는 황혼열차에 탑승한 힘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마지막 사랑’이 그들을 구원해주는 ‘마지막 선택’이라는 걸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 자연스러움이 숙연함마저 불러일으킨다. 사랑은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절절하게 그려낸 영화는 쉽게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키작은 백발의 연인 더스틴 호프만을 위해 키큰 엠마 톰슨이 하이힐을 벗고 낙엽 휘날리는 보도를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야말로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스산하고 싸늘한 만추(晩秋) , 어느새 80객이 된 더스틴 호프만과 함께 마지막 로맨스에 빠져볼 것을 강추! *PS- '추억의 영화'니까 안방에서 DVD로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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