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 TV는 요리가 점령하고 있다. 지상파든 종편이든 케이블이든 돌리는 채널마다 ‘먹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특히나 곱상하게 생긴 젊은 ‘셰프님’들과 어눌한 억양의 ‘구수한 아저씨’요리사들이 저마다의 솜씨를 뽐내며 대한민국 ‘여심’을 TV앞으로 불러들인다. 그 덕분에 차승원이나 이서진이 제2의 전성기를 보내는 중이다. 좀 극성스럽다 싶을 정도로 텔레비전의 요리프로그램들은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삼시세끼’를 걱정해야하는 주부들을 겨냥해 아예 ‘삼시세끼’라는 타이틀을 달고나온 요리프로는 왕년의 톱스타 이서진 덕분인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다. 석기시대나 현대문명 사회나 하루세끼를 먹으며 살아가야하는 인간들에겐 어쩌면 가장 ‘인간적 고민거리’의 첫 출발점이 바로 이 ‘먹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더구나 요즘처럼 ‘1인 세대’가 늘어가고 있는 ‘외로운 시대’엔 어쩌면 육신의 허기보다도 허허로운 영혼을 달래주는 ‘힐링 음식’을 ‘누구와 함께’ 먹는다는 이미지를 공급해주는 ‘요리 프로’그램이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요리가 화제의 중심으로 등장한 건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그러니까 한국의 요리열풍은 일본에서 건너온 풍조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24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 만화가 원작인 일본 영화 ‘심야식당’은 외로운 도시의 사냥꾼 같은 도쿄 뒷골목 인생들이 어슬렁어슬렁 모여드는 야심한 시각 벌어지는 ‘인생극장’의 적나라한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심야식당’은 일본에서 만화로 크게 히트한 뒤 드라마로 만들어져 대히트했고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 셰프를 맡았던 고바야시 카오루라는 60대 중반 남자배우가 ‘마스터’를 맡아 소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서민의 요리’를 한상 차려내면서 삶에 지친 도시의 루저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화려한 도쿄 야경이 압도적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면서 시작하는 영화 ‘심야식당’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네온사인 가득한 도심의 뒷모습을 보면 ‘일본에도 저런 후진 동네도 있네’라고 할 정도로 초라하다. 하지만 그 골목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심야식당은 상처받은 영혼의 휴양지 같은 힐링 캠프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없는 사람들이 모처럼 어깨펴고 밥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쿄 심야식당인 것이다. 왼쪽 뺨에 깊이 패인 흉터가 있는 마스터지만 이리저리 채이며 밤늦게 허름한 심야식당에 들어선 ‘손님들’을 위해 그들이 주문하는 ‘집 밥 요리’들을 성심껏 차려 내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집밥 요리’는 피곤한 도시인들의 영혼을 치유해주는 ‘엄마표 요리’같은 소박함으로 그들의 상처를 위로해준다. 심야식당의 영업시간은 철저히 ‘고객위주’다. 심야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지친 고객들을 위해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다. 투박한 스타일의 마스터는 손님들의 허기와 마음을 달래줄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만들어 내놓는다는 ‘영업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심야에 식당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은 평범한 인생은 아니다. 누구나 ‘사연 깊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마스터는 그들의 ‘고백 본능’에서 나오는 ‘구질구질한’ 그렇고 그런 사연들을 경청한다. 어쩌면 심야식당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장점’은 바로 이 ‘자기 고백’의 시간과 장소라는 점인지도 모르겠다. 얼굴 한 쪽의 흉터로 봐선 분명 ‘사연’이 있음직해 보이지만 인정많아 보이는 마스터와 경제대국 일본 사회에서 낙오해 어쩔 수 없이 하류인생을 살아가야하는 루저들이지만 그들은 서로의 아픈 사연을 털어놓고 들어주는 ‘심야식당’에 모여 하루의 시름을 그렇게 잊는다. 그렇기에 심야식당은 일본사회의 부조리를 치유해주는 ‘힐링 판타지’의 장소인지도 모르겠다. 심야식당 메뉴는 소박하다. '문어 소세지', '바지락 된장국', '계란말이'등 평범한 사람들이 집에서 자주 해먹음직한 음식들이다. 심야식당에서는 '나폴리탄', '마밥', '카레라이스‘가 ’사연있는 고객들‘이 주문하는 주요 메뉴다. 요란하고 화려한 요리보다 그저 늘상 먹어온 음식을 또 먹으면서 그들은 먹는 것보다 서로의 아픈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로 매일 심야에 모여드는 것이다. 심야식당 옆 작은 파출소 순경으로 나오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마흔 살 오다기리 조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그에게 날마다 음식을 배달해주며 파출소 문밖에 서서 그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배달 아가씨’의 수줍은 짝사랑의 모습도 정겨워 보인다. 이 일본 뒷골목 심야식당에 등장하는 ‘사연들’은 현대 일본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조폭에 시달리는 게이와 2011년 대지진 쓰나미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아픈 사연, 고향을 떠나 무작정 상경한 처녀의 실연, 그리고 해체되는 가족의 슬픈 풍경 등, 일본 사회 뿐 아니라 현대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변두리 인생들의 ‘하루살이’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스토리’를 ‘힐링 푸드’를 내세운 음식을 통해 끌어나가는 50대 중반 마스오카 조지 감독의 저력이 돋보이는 따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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