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다마모에-기운 없을때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스카이뷰2 2019. 4. 22. 09:33







신중년, '힘 없는 인생들'이 두려워하는 건 뭘까. 고령화 사회의 그늘은 다른 사회문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 사회를 병들게하는 큰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일본 영화 '다마모에(魂萌え!)'는 '은퇴한 삶'을 살기 시작한 '신중년'들의 인생을 다각도로 조명한 수작으로 보인다. 아주 쉬운 영화문법으로 '늙어가는 삶'의 외로움과 허망함을 세밀하게 그려내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내는 작품이다.

 

다마모에(魂萌え!)는 일본에서 유행한 신조어로서, ‘육체는 점점 쇠약해져 가지만 영혼은 갈수록 더욱 불타 오른다’는 뜻! 혼을 뜻하는 ‘타마’와 움트다라는 뜻인 ‘모에루’의  명령형을 결합시킨 것이다.  아무래도  초 고령 사회인 일본에선 이런 ‘다마모에 ’정신이 먹혀들고 있는 상황인듯하다.   다마모에!라는 생소한 제목의 이 영화는 사회적 약자인 '늙은 여자'들의 삶을 연민의 눈으로 그려내면서도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영화를 만든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클럽 진주군>으로 영화연출 능력을 보여줬던 바로 그 감독이다. 그 영화를 보고 사카모토 감독에겐 ‘영화적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이전 작품들에서는 ‘남성다운 연출력’을 보여준다는 평도 들었지만 ‘다마모에’를 기점으로 섬세한 단편 작가적 시선을 갖춘 감독이라는 평을 들었다.

  

인터넷 검색창을 쳐보니 1958년생인 사카모토 감독은 데뷔작으로 신인상을 타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그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상을 도맡아 탄 ‘상쟁이 감독’으로 일본에선 '재능'을 인정받은 감독 중 한명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사카모토는 영화 <박치기>의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한 덕분인지 역시 ‘생활영화’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생활영화’라는 장르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저 편의상 그렇게 명명했을 뿐이다. 아마 영화학도들은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생활영화에 강한 감독이 진정 재능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몇 몇 유명 영화감독들은  ‘일상생활’을 소재로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를 솜씨 좋게 엮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이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로 영화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만들어낸다는 것이야말로 감독의 재주이자 재능인 것 같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 감독들은 이 ‘일상성’을 재현해내는데 다소 약한 것 같다는 아쉬움을 준다. 그렇다고 우리 감독들이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체로 우리나라 영화들은 아직까지는 일본 영화에 비해 이 일상을 소재로 ‘가슴 찡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데 다소 처지지 않느냐라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그렇게 영화적 재주가 있는 사카모토 감독의  이 영화는 원작도 탄탄하다. 

 

원작은 ‘키리노 나쓰오(桐野夏生)’ 라는 유명여류 작가의 작품이다. 당장 배우로 나서도 될 정도로 수려한 미모의 이 여류 작가는 현재 일본에서 제일 잘나가는 여성 추리작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녀가 쓴 ‘부드러운 볼’이라는 나오키 상 수상작품을 꽤 오래 전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 영화가 더 반가웠다.

 

오래전 아사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아에라'는 키리노 나쓰오에 대한 장문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녀가 그렇게 잘 쓸 수밖에 없었던 '감동적인 배경'을 소개했다. 10년 이상을 무명작가로 하이틴을 상대로 하는 로맨스 소설, 청소년 소설, 만화 시나리오 분야의 작가로 활동하면서 로맨스 한 분야의 소설만 300권 이상을 읽고 일일이 분석해 분류 카드까지 만들었다는 거다. 그러니 그 ‘들인 공’이 문장에 그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녀의 노력하는 자세에 잠시 숙연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1951년생인 이 작가는 1998년에는 <아웃>으로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고, 1999년 <부드러운 볼>로 나오키 상까지 탔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상을 받아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다마모에’는 키리노 나쓰오가 2004년 마이니치신문에 1년간 썼던 연재소설의 제목으로 굉장히 인기를 끌었고, 이듬해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문학평론가들은 “키리노의 작품 중 최고 수준이다”라는 호평을 했을 정도다. 그만큼 일본사회에서 고령사회의 어두운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얘기일 것이다. 


영화제목이 암시하듯, 영화는 59세 여주인공을 비롯 그녀의 여고 때부터의 단짝 친구, 기타 여러 등장인물들이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낸 ‘중후한 연배’의 사람들 이야기다.

 부드럽게 물 흐르듯 진행하면서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어찌 보면 통속적이면서 전혀 새로울 게 하나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여주인공의 행로를 바라보며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59세 여주인공 세키구치 토시코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전업주부.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알뜰하게 살림해왔고, 자식들 살뜰하게 키워낸 그야말로 현모양처다. 남편은 일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회사원으로 60세에 드디어 정년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정년퇴임 파티’를 자기 집의 식탁에서 치른다. 그리고는 한 3년 만에 홀연 세상을 떠나고 만다. 요즘 같은 고령사회에서 너무 허망하게 일찍 가버린 셈이다.

 

드라마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남편의 장례를 무사히 치르고 집에 온 토시코는 아직 정지시키지 않은 남편의 휴대전화로 걸려온 한 여성의 전화를 받고 경악한다. 소위 ‘내 남자의 여자’다. 지금 막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는 토시코의 설명에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쪽’의 경악은 이쪽을 압도할 정도여서 여자의 ‘육감’으로 토시코는 상대의 존재가 범상치 않다는 걸 직감한다.

 

자, 이제 얌전하고 조신했던 우리의 토시코 여사는 어떻게 대처해나갈까? 일단 남편의 영전에 분향하러 오라고 그녀를 초대한다. 이렇게 해서 토시코는 모범남편이 이토 아키코라는 입사동기 직장동료와 10년 넘게 사귀어온 기막힌 사연을 알게 된다.

 

게다가 생전 남편이 취미활동으로 해오던 ‘메밀국수 동호회’회장을 통해 매주 목요일 남편이 동호회에 간다는 핑계로 나가서는 꼬박꼬박 ‘그녀와의 밀회’를 즐겼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이렇게 토시코가 엄청난 배신에 괴로워하는 데 미국유학 보냈던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어떻게 하면 자신이 더 많이 차지할까만을 궁리한다. 애인과 동거중인 딸도 더 이상 토시코에겐 위로의 상대가 아니다. 무자식 상팔자 소리가 나올법도 하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것에 사무치도록 외로워진 토시코는 아들과 한바탕하고는 늦은 밤, 무작정 가출했지만 정작 갈 데가 없다보니 캡슐 호텔에서 숙박을 해야할 처지가 되었다. ‘인생막장’의 사람들이 머무는 숙박 시설엔 다양한 인간군이 모여 있다. 남편의 그늘 아래 안락한 중류층 삶에 익숙해져 있던 토시코로선 기상천외한 인물들과 만나게 된다.


캡슐 호텔의 상주자인 미야사토 할머니는 처음 본 토시코에게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다. 심약한 토시코는 마지못해 들어준 것인데 기가 막히게도 이 할머니는 다 들었으면 1만엔을 내놓으라고 생떼를 부린다. 맨입으로 남의 쓰라린 경험을 들을 순 없다는 게 자신의 지론이라면서.

 

여기에 한 술 더 떠 할머니는 세상물정 모르게 생긴 천생 여염집주부 스타일인 토시코가 야밤에 캡슐 호텔에 숙박한 데는 필시 곡절이 있을 거라면서 그 사연을 들어주겠다고 자청한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 들어주는 값 1만엔을 더 내라는거다.^^(그 캡슐 호텔 1박 숙박료는 3천5백 엔!)

 

아무튼 이틀 동안 거기서 시달리던 토시코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자식들에게 ‘독립선언’을 한다. 자신은 아직 젊다며 너희들의 보살핌이 없어도 살아갈 나이니까 너희는 너희대로 나가 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자식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세계 어디서나 부모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는 존재인 것 같다. 아직 젊기만한 엄마가 홀로 된 사실을 위로해주기 앞서 유산을 어떻게 분배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은 듯 했고, 엄마는 그런 자식이라면 필요 없다고 다부지게 선언한 것이다.

 

그 와중에 토시코는 남편의 동호회 멤버 중 한명과 잠시 ‘로맨스’를 꿈꾸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일장춘몽’! 남자란 존재는 나이가 젊거나 많거나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지... 겨우 두 번째 만남인데 바로 싸구려 러브호텔로  직행하려는 게 아닌가. 몹시 실망한 토시코는 혼자 생맥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전철 안에서 어둠이 깔린 창밖을 내다보면서 어금니를 뽀드득 갈며 요노나카(이 놈의 세상)!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거의 진저리를 치는 듯한 그녀의 발성법에는 한없이 순진했던 사람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피맺힌 절규가 묻어난다. 그만큼 그 여배우의 연기력은 실감이 났다. 어쩌면 여배우 자신도 주인공과 비슷한 연배여서 정서적 공감대를 이뤘던 것 같다.

 

그렇다고 토시코는 안방에 틀어박혀 끙끙 앓고만 있지 않았다. 영화를 동경했던 그녀는 하얀 장갑을 끼고 영사기를 돌리는 영사실 아가씨를 찾아간다. 당신 같은 일을 해보고 싶다고, 영화를 무지무지 좋아한다고...아주 절실하게 부탁하는 토시코를 향해  그 아가씨 하는 말이 걸작이다. 그럼 극장 안 청소부나 도우미나 하시라고, 아줌마 연세에는 어렵다고... 이게 바로 우리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토시코 여사는 기어코 ‘시네마 천국’에 나오던 영사실 할아버지 같은 사범을 삼고초려해 ‘한 수 ’가르침을 요청한다. 쉰아홉 세키구치 토시코는 남편도 떠나고, 자식도 다 필요 없다는 걸 알고 헛헛해 하면서도 우울증에 빠져버리는 건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어나간다. 거실 벽을 꽃무늬 벽지로 새로 바꾸고, 영사기 돌리는 훈련을 스스로 시작한다. 그녀는 이제 무엇이 자기를 구원해줄지를 알게 된 것이다.

 

하얀 장갑! 하얀 장갑으로 상징되는 단 하나의 ‘로망’, 그것은 그녀가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이다.결국 ‘하고 싶은 일’이 그녀를 구원해 준다는 것이. 아마도 ‘빈 둥지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수많은 한국의 중년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할 테마인 듯하다.  어느 연인이 있어 ‘하얀 장갑’처럼 영원한 열정으로 변치 않고 그녀를 돌보겠는가.  어느 자식이 엄마를 위해 그 ‘하얀 장갑’ 역할을 대신해주겠는가 말이다. 

 

이 영화는 나이 들어가는 중년의 불안한 심리를 수채화처럼 담백하고 맑게 그리고 있다. ‘내 남자의 여자’처럼 통속적인 기폭제로 시작했지만 결국 그런 건 다 부질 없는 ‘한때’이고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가야하는 건 ‘자기만의 세계’, ‘자기만의 일’이라는 걸 아주 유연하고 세련된 필치로 보여주고 있다.

 

주연을 맡은 후부키 준 이라는 여배우의 마스크와 연기가 일품이다. 이젠 환갑이 지난 이 여배우는 일본 최고 인기 연예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가 일본에선 명함깨나 내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캡슐 호텔의 지배인으로 나오던 노다 역의 토요카와 에츠시는  ‘훌라 걸스’에서 아오이 유우의 오빠로 나왔던 매력있는 남자배우다. 감독의 연출실력이 뛰어나선지 배우들의 연기력이 뛰어났다. 

 

여주인공이 여고 때 친구들과 함께 보트놀이를 즐기다가 애송이 연인들로부터 봉변을 당하자 그녀들은 벌떼들처럼 그들을 향해 일갈하는 장면도 인상깊다. “청춘이면 다야! 우리도 인생이 있어!” 

이 영화, 아마도 ‘육체는 점점 점점 쇠약해져 가지만 영혼은 갈수록 더욱 불타 오르는’ 이 세상 모든 '힘없는 신중년'들에게 바치는 송가(頌歌)인 듯하다. 아마 감독은 60세가 되는 게 두렵다고 친구에게 한탄하는 59세 토시코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육십을 두려워 마세요, 아직 갈 길은 멉니다. 당신에겐 변치 않는 연인 '하얀 장갑'이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