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희롱한 브로커 윤상림의 행적
지난해 11월부터 수면위로 떠오른 ‘브로커 윤상림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를 돋운다.
우선은 개혁 세상이 됐다고 알고 있는 이 정권 아래서도 ‘예전 공화국시절’행태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은 ‘검은돈’거래가 백주에 일어나고 있었다는 점이 세간의 화제를 모은다.
위로는 현역 국무총리부터 아래로는 지금 수감 중인 ‘장군 잡는 여경’까지 그 중간으로는 엊그제 명예퇴직을 신청한 경찰청 차장과 현직 판사 변호사 검사 심지어는 집권당 대변인에 이르기까지 ‘사통팔달’ 통하지 않은 데가 없는 그의 ‘화려한 인맥지도’가 소개되면서 현 정권의 ‘검은 그늘’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아마도 전례 없는 ‘브로커 게이트’가 될 전망인 것 같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집안을 드나들던 한 사내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그 사내는 백부가 경영하는 병원에 자주 들러 이리저리 전화를 하곤 했는데, 특히 그 시절에는 아주 귀하게 들렸을 법한 ‘청와대’ 모 인사와의 잦은 통화로 백부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그 사내는 특히 검찰청에도 자주 전화하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그 자신이 명문 서울대 법대출신이라는 걸 앞세워 주로 법조계 인사들과 자주 통화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사내는 ‘화려한 통화솜씨’를 인정받아 백부의 맏사위로 ‘입성’했는데 결혼 후 알게 된 그의 정체는 ‘국졸 학력’이 전부인 날건달 브로커였다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당장 이혼감’이겠지만 그 시절만 해도 ‘일부종사’를 미덕으로 여기던 시절이라서 명문여대 출신의 맏딸은 그냥 저냥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그 이후 사내는 ‘브로커 솜씨’를 발휘해 ‘건설붐’이 일던 3공 시절에 이렇게 저렇게 줄을 타 처·자식 밥은 굶기지 않고 웬만큼 살았다는 얘기다.
이번 브로커게이트를 보면서 ‘집안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이제나 그제나 브로커들의 고전적 수법은 왜 그리 비슷한지 우스운 기분이 들어서였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 윤상림의 ‘수첩’에는 청와대· 총리실· 여당· 군· 검찰·경찰·법원, 대기업 등의 핵심 인물 1천여 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등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그는 상가(喪家)에 가서 그런 ‘수첩’을 과시하며 ‘형님 ·동생’으로 호형호제하는 인물들에게 전화를 걸어 “왜 안 오냐”고 호통을 쳐댔고 그러면 ‘신통하게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 저명인사들이 굴비 엮듯 주르르 ‘한 궤에 끌려오듯 왔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어느 누가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있었겠는가.
오죽하면 며칠 전, 자신의 비서가 이번 사건과 연루돼 자살해버렸고 본인 역시 ‘명예퇴직’이라는 ‘불명예’절차를 밟고 경찰을 떠난 경찰청 차장도 브로커 윤과의 금전거래를 시인하면서 ‘불가근불가원’의 두려운 존재였다고 말했을까.
신문에도 났지만 일단 이번 ‘브로커 윤 사건’의 특이점은 유수한 인사들이 브로커에게 ‘돈을 받은 게 아니라 주었다’는 정황이 유례없이 많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한 신문에 따르면 윤씨가 요 2,3년 사이에 ‘브로커 짓’으로 긁어모은 돈이 무려 25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시쳇말로 ‘허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솜씨를 발휘했길래.
더 우스운 건 집권여당 대변인 전병헌씨도 윤씨에게 5천만원을 건넨 것을 시인했다는데 그 명목이 ‘아파트 인테리어 비용’이었다는 것이다.
윤씨는 엄연히 ‘법조 브로커’인데 웬 인테리어?
아무튼 ‘핑계 없는 무덤 없다’했듯이 윤씨에게 돈을 준 명사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게다가 요 며칠새 청와대가 보여준 태도는 점입가경이다. 며칠 전부터 한나라당 의원 몇 사람이 청와대 관계자에게 윤씨의 청와대 출입기록을 보여달라고 공문을 띄워 보내자, 처음에는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보여줄 수 없다고 버티다가 어제서야 윤씨가 청와대를 들락거렸다는 것을 민정수석이라는 사람이 시인하고 나섰다.
그런데 또 이상한 점은 윤씨를 만났다고 시인한 청와대 비서관은 “어느날 갑자기 생면부지의 윤씨가 찾아와 경찰하위직 인사의 징계가 부당하니 구제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때 윤씨의 행적이 청와대관계자의 민첩한 추적에 의해 드러나 꼬리가 잡혔다고 한다.
그 경찰 하위직 인사가 지금 수감 중인 ‘장군 잡는 여경 강순덕’ 이라고 한다. 아무튼 얽히고설킨 이야기 실타래를 풀어내자면 영 복잡할 것 같다.
여기서 우리가 가만 살펴보면 좀 이상한 구석을 엿볼 수 있다. ‘청와대 사정담당 비서관’이란 자리가 어떤 곳인가! 그렇게 일면식도 없는 ‘뜨내기’가 덜렁 찾아가 ‘일개 여경’을 구제해달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만만한 곳인가.
사정담당비서관이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아무나’ 덥썩 만나주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은 영 어설퍼 보인다.
아무튼 윤상림은 어제 첫 공판에 나갔고 수감 중이다.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직 오리무중한 상태이다.
분명한 건 그가 국무총리와 골프를 칠 정도의 ‘막강한 급’의 브로커였고, 그의 브로커 경력은 하루 이틀에 쌓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윤씨는 10여 년 전에는 사단장 군단장들과 골프를 치며 ‘세’를 과시한 고교중퇴학력의 육군하사출신.
현직 청와대 고위인사를 ‘핸드폰 한통’ 으로 중인환시리에 불러낼 정도의 ‘내공’이라면 그가 그동안 저지른 ‘건수’와 그 ‘급수’는 아마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본다. 바로 이 점이 현 정권 실세들로 하여금 윤씨를 어떻게든 ‘감싸려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사건의 성질로 미루어 볼 때 ‘진짜 이야기’는 이 정권이 끝난 뒤에야 밝혀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꽤 많은 것 같다. 한나라당에서는 ‘청문회’를 열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연다고 해서 무슨 묘수가 있겠느냐고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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