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오늘 아침, 삼색 인생에 세번 울다

스카이뷰2 2006. 4. 8. 13:39
 

     오늘 아침,  삼색(三色) 인생에 세 번 울다


토요일 아침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가족들이 팀을 이뤄 나와 노래자랑을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한다.


부부 혹은 형제, 자매, 사위와 장모, 모자·부녀 등등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 드는 사람들끼리 갖가지 ‘눈물어린’사연을 들고 나와 성심성의껏 장기자랑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전국 시청자들의 엄정한 ‘전화 투표’에 의해 ‘승자’가 가려지는데 매주 볼 때 마다 뭉클한 사연들로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동안 기억에 남는 가족 팀은 앞 못 보는 어머니와 곧 군입대할 아들이 나와 3회 내리 우승을 차지했던 ‘모자 팀’ 과 젊은 엄마가 세상 뜬 뒤 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세 자매 팀’, 일본에서 날아온 ‘소학교 5년생’ 재일동포 어린이와 고모 팀이다.


그 밖에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간 출연해온 팀들  모두가 우리네 ‘인생극장’의 쟁쟁한 ‘카수들’로 시청자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오늘 아침에도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들이 말하는 인생이 너무 서럽고 야속해서, 그렇지 않아도 ‘인생’이라는 매정한 ‘생물’에 요 며칠 마음이 시렸던 차에 ‘울고 싶었는데 뺨이라도 맞은 양’ 울어버렸다.


오늘 ‘그랑프리’를 거머쥔 전남 벌교에서 올라온 ‘10 자매 팀’의 사연이 가슴을 에었다.

‘십자매’의 대표 격으로 ‘출전’한 38세 된 ‘맨 큰언니’와 스무 살 터울의 ‘맨 막내’가 듀엣으로 노래를 하기 전 말한 사연은 이렇다.


스무 살에 첫 딸을 낳은 엄마는 ‘남들 다 낳는 아들을 난들 못 낳을 소냐 싶어 줄줄이 아이를 낳다 보니 ‘딸만’ 열을 낳게 된 것’이다. 먹을 것 제대로 없는 농촌살림에 ‘열’이나 되는 딸을 낳은 엄마는 ‘죄인’이었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그 ‘엄마’를 비쳐주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는 거의 ‘장군 같은’ 무표정으로 이제는 당당히 앉아 있고, 그 옆에 ‘아빠’는 오히려 ‘순한 색시’같은 표정으로 약간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띠고 ‘얌전히’ 앉아있다. 엄마가 전라도 진한 사투리로 사연을 말하기 시작하는데 방청객들도 거의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호랑이 시어머니가  딸만 낳는 며느리가 미워 미역국은커녕 밥도 해주질 않아 굶곤 했다. 추운 겨울 날 불도 때주지 않아 갓난 애기랑 냉방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애기 낳고 바로 나가 밭일을 했다. 산후 조리라는 말은 아예 모르고 살았다.’


이런 얘기를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그 말들이야말로 어떤 ‘최루탄’보다 강한 성능으로 눈물샘을 공격해왔다. 오! 맙소사. 그야말로 ‘출산 여성 잔혹사(史)’에 기록될 만한 이야기들이 아닌가.


그 얘기를 듣고 ‘맨 큰언니’는 눈물로 마스카라가 범벅이 된 것도 모른 채, 철없던 시절 부모님 속을 상하게 해드린 것에 대해 용서를 빌면서 ‘저도 자식 낳고 살다 보니 부모 마음을 조금은 알겠어요’하며 또 운다.


그 말에 옆에 있는 ‘맨 막내’도 덩달아 울고. 아무튼 눈물바다 속에 그래도 자매팀은 발군의 노래실력으로 ‘금주의 챔피언’이 된 것이다.


상품으론 제주도 여행권 2 매. 딸 열 키우느라 여행 한 번 못 가본 엄마 아빠에겐 최고의 선물이다!

자매팀은 다음 주에 또 나와 ‘2승고지’를 노린다. 그래도 해피엔딩이어서 눈물은 웃음으로 바뀌었다. 인생이 그러하듯이.


텔레비전 시청 후 집어든 조간신문도 ‘토요 판’이어서 그런지 가슴 저미는 ‘인생 스토리’들을 특집 인터뷰 식으로 다루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을 사로잡고 있는 ‘하인스 워드 모자 열풍’ 탓인지 ‘왕년의 인기가수’ 윤수일의 인터뷰가 신문 한 면을 가득 채웠다. 스포츠 신문도 아니고 유수한 일간지에 나온 쉰이 넘은 윤수일은 ‘지천명(知天命)’의 연륜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무언(無言)의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윤수일은 “하인스 워드도 훌륭하지만 김영희여사가 더 위대한다. 힘들게 나를 키웠던 돌아가신 어머니도 그 못지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섯 살 때 내가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아챈 뒤엔 매일 거울을 보면 코를 꾹꾹 눌렀다’고 한다.

남보다 ‘하얀 피부, 오똑한 코를 가진 죄’로 여섯살바기 꼬마가 거울 앞에서 제 코를 꾹꾹 눌러대는 광경이란....


윤수일이  어렸을 때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과 한국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을 미국으로 거둬가려는 정책을 내세워, 그의 집에도 여러 차례 찾아왔다고 한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내가 잘 키울 수 있다’고 당당히 답변하며 그들을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역시 ‘어머니’는 강하다.


사춘기 시절, 자라면서 ‘튀기 소리’들을 때 마다 그는 어머니에게 ‘그 때 왜 나를 미국에 보내지 않았느냐’고 소리 질렀던 것이, 쉰이 넘은 지금 후회된다고 했다. ‘운다고 옛사랑이 돌아오지 않듯이’ 효를 바치고 싶은 부모님은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시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식들이 그러하듯 서로를 ‘최고의 연민 상대’로 바라보는 것이 부모 자식의 본질적인 운명이지만, 서로 엇갈리는 ‘운명’ 속에 ‘불효자는 웁니다’를 노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런 윤수일 이야기를 읽다 보니 어느새 눈가가 젖어왔다. 그래도 그는 ‘뮤지션’으로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해 덜 안쓰럽다.


윤수일은 흑인 혼혈출신 가수들의 어려운 사정을 말하면서 “현실과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겠는가”라는 말도 했다. 30년 전 윤수일이 데뷔할 무렵엔 그래도 그는 ‘백인형 꽃미남’의 프리미엄도 적지 않게 누렸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나마 ‘검은 혼혈아’들은 무대에서 더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다.


한때 사업도 크게 했던 윤수일은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난 혼혈을 앞세워 동정을 끌어내 성공한 가수가 아니다. 음악성으로 승부를 걸어 왔다.하지만 난 행운아다”


일각에선 우리 민족 특유의 ‘냄비근성’으로 ‘하인스 워드 열풍’ 이 곧 사그라들 것을 염려하고 있다. 윤수일도 그런 현상을 걱정한다.


이 땅에 사는 혼혈의 어린 꼬마가 제 외모가 남과 다르다는 사실 하나로 기죽어 하는 일은 더 이상 없도록 하는 게 정부 당국자들이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세 번 째로 나를 울린 인생사연은 이렇다. 생계를 위해 4.5톤 화물트럭을 함께 몰며 고속도로를 누비는 50대 부부의 이야기다.


‘먹고 살기 위해’ 밤낮 없이 달려야 하는 이들 부부는 남편이 몇 년째 ‘불치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10년 전부터 신장병을 앓고 있는 남편은 하루 네 번씩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투석’을 한다.


달리는 트럭 속에서 30분 만에 투석을 끝낸 남편은 지쳐 코를 골며 곯아 떨어졌다.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제게는 생명의 소리예요. 뒷좌석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손을 뒤쪽으로 뻗어 남편의 손을 만져보죠.”


그렇게 해서 ‘살아있는 남편의 증명’이 되는 코고는 소리가 고맙고 또 고맙다는 아내의 말에 눈시울이 시큰해져 온다. 아마 이런 이야기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철모르고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에겐 전혀 실감이 안 가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내 온’ 사람들에게 그녀의 ‘고마워하는 마음’은 그대로 ‘이심전심’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네 인생의 기본은 바로 ‘연민과 감사’이니까.


‘트럭 운전사 부부’의 일상은 그야말로 고달프다. 이틀 동안 이들 부부가 10여 차례 고속도로를 바꿔 타고 달린 거리는 무려 1200km. 휴게소에서 남편은 뒷좌석에 아내는 운전석에 합판을 깔고 잠시 눈을 부친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이렇게라도 함께 잘 수 있어 좋습니다. 꼭 신혼 단칸방 같죠?” 장성한 자식들이 있지만 각자의 삶이 빠듯하다 보니 자식에게 손 벌릴 생각은 아예 하질 않는다.


그저 이렇게 부부가 손을 꽉 잡고 험한 인생길을 헤쳐 나가려 한다. 교대로 운전대를 잡는 이들은 이런 말로 서로를 위로한다. “피곤해도 자동차 타고 여행 다니는 심정으로 일하지 뭐! 일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는 거 아냐?”.

그렇지 않아도 어제 신장병으로 이틀에 한 번씩 투석을 해야 하는 50대 독신 여성을 우연히 만나 그녀의 ‘고통스런 투병기’를 잠깐 들었다.


25년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교편을 잡고 살아오다 ‘병’을 얻어 귀국한 그녀는 ‘맛있는 거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고 화장실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면 복받은 삶’이라고 규정했다.


트럭 운전사 부부의 ‘길 위에서 달려야 하는 일상’도 어찌 보면 눈물 나게 감사한 인생일 것이다.


오늘 아침 나를 울린 ‘삼색 인생 스토리’도 결국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Bravo, Bravo, Our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