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스 워드 모자(母子)의 눈물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울었다. 아는 이 하나 없고 살아갈 특별한 재주도 없는 ‘이방인 모자’가 미국 땅에서 버텨온 지난 30년의 세월.
‘진주’가 조갯살이 타들어가는 아픔 속에 생겨나듯 ‘잡초 같은’ 모자는 마침내 ‘진주’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고 그렇게 울고 있었다.
미국 풋볼 영웅으로 세계를 뒤흔든 하인스 워드와 그 어머니 김영희씨는 고국 방문 사흘째인 어제 서울시장실에서 함께 울었다.
미국의 그라운드를 누비며 MVP라는 최고의 영광을 따낸 당당한 아들은 ‘명예 서울시민증’을 받고나서 답례인사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들의 눈물을 본 어머니 역시 손수건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눈물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눈물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특히 온갖 역경을 이겨낸 사람의 눈물은 진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한다.
‘인생’이라는 다루기 힘든 거친 야생마의 잔등에 올라탄 채 떨어지지 않으려 애써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 신산한 고통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함께 울지 않을 수 없다.
‘인생’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진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흘리는 그 눈물은 그러기에 한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된다.
하인스 워드는 1976년 서울 동대문에 있는 이화대학 부속병원에서 태어났다. 30년 전 그 시절, 흑인과 결혼해 ‘검은 피부의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은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당시 우리 사회 분위기는 그랬다.
‘백안시’당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처럼 풍요롭지도 않은 시절, 세인의 눈은 얼마나 차가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결국 그들 모자는 대한민국을 등지고 ‘두려운 땅’ 미국으로 떠난다.
그곳에서도 그들 모자를 환영해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남편 하나 믿고 갔건만 그로부터도 버림을 당한다. 그리고 닥쳐온 시련의 계절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자그마한 동양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막노동 뿐이었다. 그래도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했다. 어머니는 하루 세 군데를 돌면서 험한 일을 하느라 손톱이 다 빠졌다. 그래도 극빈자 연금은 한사코 마다했다. 아들을 당당하게 키우고 싶은 어머니의 소망이었다.
그렇게 해서 기죽이지 않고 키운 아들이 바로 ‘아메리칸 풋볼’의 영웅 하인스 워드다!
하인스 워드 같은 ‘지극한 효자’가 또 있을까? 겉모습은 흑인에 가깝지만 그는 영락없는 ‘조선시대 장남’같은 그런 분위기다.
‘효’를 강조하는 유교의 예절교육을 철저히 받은 듯한 그의 언행을 보면서 그 어머니의 ‘가정교육’이 얼마나 철저했나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모친을 대하는 그 극진한 마음 씀씀이는 아마도 이 땅에 아들가진 어머니들이 모두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어머니들은 대부분이 ‘공부 잘하는 것’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 아마도 아이들의 ‘정신교육’에는 미처 신경을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받들며 키운’ 아이들에게선 ‘워드 같은’ 효심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본다. 지금같은 혼돈의 시대에는 그런 ‘효의 정신’이야말로 가정과 사회를 반듯하게 지켜주는 기둥역할을 할 텐데.
하인스 워드는 말끝마다 ‘마이 맘’을 빼놓지 않는다. 텔레비전 뉴스에 출연해서나 대통령 앞에 가서나 서울시장 앞에서나 그 누구 앞에서도 워드는 ‘우리 엄마가요’를 꼭 접두사처럼 꺼낸다. 그럴 땐 철모르는 일곱 살짜리 아들이다.
워드는 인생에 가장 어려웠던 순간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을 때도 “우리 엄마가 나보다 더 고생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늘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워드는 ‘미국 애’가 아니라 ‘한국 애’같다. 그것도 ‘요즘 애’들이 아닌 조선시대의 아이들 같다. 요새 미국이나 한국에서 저런 ‘효자’는 거의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장한 아들’을 키워낸 ‘엄마’는 인생에 하도 시달려와선지 웃음기를 별로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를 가거나 서울시를 가거나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엄마’는 수심 가득한 얼굴이다. 급기야 아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런 김영희씨는 이런 말로 자신의 속내를 내비쳤다.
“한국 사람 안 쳐다보고 생각 안 하고 살아온 30년이었다.” “내가 한국에 워드 데리고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 놈 거지밖에 안 됐겠지. 여기선 누가 파출부라도 시켜줬을까”
“한국 사람들은 말이야. 좀 그렇지. 미국에서도 한국 사람들끼리 사이가 별로 좋지 않잖아. 이민 온 사람들이 우리들을 무시하고 한국 사람들끼리 인종을 더 차별하잖아. 그러면서도 왜들 그렇게 머리는 노랗고 빨갛게 물들이고 다니는지...”
“내가 그렇게 힘들 때는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우리 워드가 유명해지니 관심을 참 많이 가져준다. 그래서 부담스럽지 뭐. 세상사는 게 다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했다.
아들하나 데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살아남은’ 여인의 사무친 한이 절절이 느껴진다. ‘유명해지니까 관심을 가져줘 부담스럽다’는 그녀의 말이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렇잖아도 정치인들은 ‘워드 모자’를 이용해 ‘한 건’하려는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각 정당에선 ‘혼혈 차별 금지법’ 같은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안 하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만 왠지 속 보이는 짓 같이 여겨진다는 게 보통사람들의 느낌일 것이다.
‘효자 아들’ 워드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부끄러운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랑스럽다. 여러분에게 사과한다. 그런 생각을 한 것에 대해. 여러분들의 환대에 너무 감사 한다” “나를 위해 희생한 나의 엄마. 정말 사랑해요”
그 말에 ‘엄마’도 함께 운 것이다. 그 눈물 속에 지난 30년 세월의 온갖 한이 다 녹아내렸을 것이다.
워드의 엄마는 아들에게 늘 ‘혼자 힘으로 일어서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한다. 요새 그 엄마는 ‘잘나갈 때일수록 자만하지 말라’는 말을 다 큰 아들에게 신신당부한다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와 아들이 우리 앞에서 흘린 그 눈물의 의미는 진주보다 더 귀하다. 인생의 소중한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 눈물이다.
하인스 워드 모자의 눈물은 팍팍해진 우리 사회에 ‘봄비’처럼 스며든 것 같다. 모처럼 ‘눈물의 힘’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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