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엄기영 앵커의 외로워야할 직업군

스카이뷰2 2006. 3. 2. 14:01
 

         엄기영 앵커의 ‘외로워야 할 직업군(群)’


2006년 3월 현재 대한민국은 혼돈의 격랑 속을 힘겹게 헤쳐 나가는 돛단 배 같다. 국민 누구나가 우러러 존경할만한 스승의 존재도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원로로 꼽히는 분들이 경고의 말씀들을 어쩌다 할라치면 현 정권의 실세 총리라는 사람부터 나서서 눈썹을 치켜뜨고  말대꾸를 해댄다.


1960년대 모택동의 어린 홍위병들이 ‘광란의 폭동’을 일으키며 중국을 쓰러뜨리려던 시절과 지금 대한민국이 매우 유사하다는 게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권력을 쥔 집단들이 흔들어대는 깃발아래 일률적으로 모여들어 ‘의도된 대세’를 만들어 내고 행여 반대 의견이라도 내놓을라치면 대번에 ‘수구 꼴통’으로 내몰려 만신창이가 되고 마는 게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이런 아수라장 광풍 속에 오랜만에 조용하면서도 심지 깊은 말이 들려와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현 정권으로부터 강원도지사 출마 제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MBC 앵커 엄기영 씨는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야가 선거를 앞두고 좋은 인재를 발탁하는 거야 나무랄 일이 아니지만 외로워야할 직업군이 있습니다. 판·검사 등 법조인과 기자 등 현직 언론인들은 어떤 금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또 “현직 언론인을 마치 같은 당원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 선진국에서는 이런 예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라며 언론과 정치의 분리라는 평소 소신을 말하면서 거듭 출마설을 부인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말이 바로 ‘외로워야 할 직업군’이다. 흔히 이런 비슷한 말들은 해왔지만 현직 방송인이 정치권의 영입을 거부하면서 내놓은 말이어서 오랜만에 신선한 표현으로 느껴졌다.


‘외로워야 할 직업군’으로는 비단 판 ·검사나 언론인뿐이 아닐 것이다. 연구실을 지켜야 할 학자나 자기와의 싸움 속에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할 예술인들도 ‘외로워야할 직업’인 것이다.


그렇기에 작년 말 대한민국은 물론 전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황우석 사건’ 같은 것이 ‘외로워야할 직업군’이 이를 거부할 때 어떤 재앙을 받느냐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진 대로 황우석씨는 연구실 밖을 뛰쳐나와 정권 실세들과 어울리는 데 많은 시간을 받쳤고, 온갖 경조사를 챙겼고, 사방 군데서 답지하는 ‘수 백 억원의 성금’에 정신을 잃었다. 그렇게 해서 자초한 사건이 바로 ‘논문조작’이고 황씨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자기 인생이 전락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형벌’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외로운 것’은 싫은 법이다. 하지만 엄기영씨의 표현대로 ‘외로워야할 직업군’은 엄연히 존재한다. ‘외로워야하는’것이 그 직업의 운명이고 본질인데도 그것을 거부할 때는 반대급부의 부작용이 따르는 것이다.


학자나 예술가나 판·검사나 언론인이나 모두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기 길을 고수할 수 있을 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도 적지 않은 수가 정계로 이동한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뒤끝이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기야 요즘엔 여야를 막론하고 브라운관을 누비다가 여의도로 직행한 사람들도 적지 않고, 대통령이 변호사 출신이어선지 변호사출신들도 상당수가 정치인으로 변신해, 그중에는 일단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도 더러 없지 않다. 하지만 엄기영 씨 말처럼 ‘외로워야 할 직업군’의 사람들이 변신했을 때 국민들이 그들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엄기영 씨는 자신이 ‘외로워야 할 직업군’에 속한다는 것을 직시하고 어떤 ‘금도’를 나름대로 세워놓고 처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요즘 세태에선 보기 드문 ‘프로 정신의 소유자’로 평가하고 싶다.


정치인이라고 다 옳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엄기영씨의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열린당 의원 이광재 씨가 라디오에 출연해 했다는 말은 역시 ‘혼탁함’이 감지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40대 초반의 이광재씨는 ‘대통령의 오른팔’로 그 동안 그가 해온 언행을 감안할 때 나이에 비해 정치판의 ‘때’가 많이 묻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엄기영씨가 출마거부를 거듭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이씨는 “제 고향 평창 출신인 엄기영 선배와 응원하고 힘 합쳐 좋은 결과를 낳도록 하겠다”며 영입의사를 거듭 밝혔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쪽에서 분명 거부의사를 밝혔는데도 그런 건 아랑곳 않겠다, 기어이 영입하고 말겠다는 ‘권력자의 오기’같은 게 읽혀져 개운치 않다.


 ‘평안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안 하는 법’인데 ‘자기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을 굳이 ‘진흙탕 속’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중이 드러났다고나 할까. 아무튼 ‘순수한 발언’을 한 엄기영씨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듯해 보인다. 하기야 ‘대통령의 오른팔’로 행세하려면 그 정도의 막무가내 배짱은 있어야 하겠지.


아무튼 엄기영 씨의 ‘외로워야 할 직업군’ 발언은 요즘 한창 시끄러운 정치판에 한줄기 깨끗한 바람을 불어넣어 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우리당에서 요즘 ‘당의 명운’을 걸고 영입에 공을 들이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강금실 씨의 불분명한 태도는 ‘유권자들’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혹자는 강씨와 열린당의 ‘샅바싸움’같은 이런 연출 장면들이 실은 강씨의 지지율을 올리려는 ‘정치 쇼’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