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KBS 아침마당이 사람 울리네요

스카이뷰2 2006. 4. 22. 13:42
 

        KBS 아침마당이 사람 울리네요


오늘 아침 난생 처음으로 텔레비전 방송국의 ‘시청자 전화투표’에 참가했습니다. 무려 세 통! 이나 전화를 걸었죠. ‘응원하는 팀’을 꼭 1등 시키고 싶어서 그야말로 본능적인 승부근성(?)으로 전화를 건 겁니다.


가끔 ‘불우이웃돕기’ 프로그램을 보며 ARS후원금을 보낼 때 전화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오락프로그램에 출전한 전혀 생면부지(生面不知)한 사람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전화기 버튼을 누른 건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죠.


2주전에도 우리 ‘skyview의 블로그’에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만 토요일 아침엔 별다른 일이 없으면 꼭 ‘KBS의 아침마당’이란 프로를 즐겨봅니다.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아니면 이웃사촌이나 선후배끼리 팀을 이뤄 나와서, 각가지 ‘찡한 사연’을 들려주고 이어서 ‘개인기’를 자랑한 다음 ‘가창실력’을 뽐내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엄정한 심사위원들인 ‘시청자 전화투표’로 승부를 가립니다.


출연자의 면면도 어쩌면 그리도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보통사람’들인지요. 수수한 외모는 ‘기본’이고 소박하게 웃으면서도 ‘기어코’ 1승을 올리려는 ‘불타는 집념’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다보면 울다가 웃다가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프로그램입니다.


오늘 아침, 저로 하여금 ‘이성을 잃고’ 시청자투표에 참여하도록 만든 ‘세 모녀 팀’ 역시 가슴시린 인생사연을 들고 나왔습니다.


46세의 두 아주머니와 22세의 ‘말만한’ 처녀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포니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깜찍하게 묶고 나온 진희정이라는 처녀와 그 엄마, 그리고 대모님의 사연은 이랬습니다.


‘복스럽게 생긴’ 희정이는 엄마가 소개하기 전까지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선천성이 아니라 어릴 때 열병을 앓은 끝에 ‘정신지체장애인’이 됐답니다.

 

같이 나온 후덕한 얼굴의 대모님은 공부방 선생님으로 희정이에게 한글을 깨쳐주시고 희정이가 정규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헌신적으로 돌봐주셨답니다. 그리고 엄마! 장애아를 저렇게 성숙한 처녀로 키우기까지 그녀가 겪었어야할 신산의 계절이야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젊은 엄마는 모자달린 웃옷을 입고 나와 꼭 희정이 큰언니처럼 보일 정도로 밝게 웃더군요. 그 혹독한 ‘모정의 세월’을 가슴에 숨긴 채.


아나운서가 “제일 고통스러웠던 일”이 무엇이었냐는 ‘비수 같은 질문’을 하자 엄마는 희정이 동생이 “누나한테만 잘해준다”고 투정부릴 때였다고 말했습니다.


곧이어 카메라는 희정이 남동생을 비쳐주었습니다. 의젓한 청년으로 자란 남동생을 소개하는 자막에는 ‘연세대 통계학과 1학년’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빠! ‘큰바위 얼굴’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아빠는 무슨 가방회사 ‘전무님’이라는 자막이 나왔는데 ‘장애인 딸’을 키워낸 부모의 ‘도통한 듯한’ 표정이 서려있더군요.


희정이의 대모님은 이 프로그램에 어떻게 나오시게 되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희정이가 우리도 모르게 인터넷으로 신청을 했답니다”라면서 너무 자랑스러운 표정이었죠.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희정이가 인터넷! 으로 텔레비전 방송국에 신청했다니 정말 대단하죠.


늘씬한 아나운서 언니보다 더 키가 크고 조금은 뚱뚱해 보이는 희정이는 ‘순한 양’처럼 수줍어하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희정이는 엄마와 대모님께 자기가 직접 쓴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초등학생이 쓴 것처럼 삐뚤빼뚤한 글씨였지만 희정이는 엄마와 대모님께 “저를 이렇게 키워주신 것”에 너무 감사드린다며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편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아마도 그 화면을 본 전국의 많은 시청자들이 따라 울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이 절로 들더군요.

희정이의 편지 낭독이 끝나자 엄마는 희정이를 너무 사랑해주시던 할머니가 지금 제주도에서 암투병중이셔서 오늘 이렇게 나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주도! 이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하면 ‘2박3일’제주도 여행권이 상품으로 나오거든요. 물론 희정이네가 제주도 갈 비용이 없어서 방송국에 나온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많은 시청자들은 희정이를 제주도에 보내주자는 ‘무언의 약속’을 하고 전화버튼을 눌렀을 것 같았습니다.


희정이는 노래도 잘했습니다. 뚱보 여가수 방실이가 불렀던 ‘첫차’라는 쉽지 않은 노래를 무난히 소화해냈습니다.


제가 난생처음 시청자심사위원이 되어 전화버튼을 눌러댄 덕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희정이네는 일단 이번 주 참가팀 들 중엔 1등을 차지해 ‘본선’에 올랐습니다.


사실 이번 주 참가한 나머지 세 팀들도 ‘떨어뜨리기’엔 아까운 사연과 노래솜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희정이네가 그중 ‘발군의 실력과 따라준 운세’ 덕택에 본선진출을 한 겁니다.


본선은 지난 주 1등을 차지한 ‘떠꺼머리 총각형제 팀’과의 한판 겨루기입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 형제인 이 팀도 그 전(前)주에 막강 ‘십자매 팀’을 꺾고 올라온 막강실력파들이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였습니다. 그래서 희정이를 응원하는 저로서는 아까 한 통을 한 데 이어 연거푸 두 통! 이나 전화를 건 겁니다.


엄마가 암 투병 중인 이 총각 팀도 오늘 올라온 ‘뉴 페이스’ 희정이한테는 좀 떠는 눈치였습니다. 어쨌든 승부의 세계는 냉엄한 거니까요!


두 팀의 불꽃 튀는 노래대결이 끝나고 바로 시청자 투표 결과가 화면에 뜨기 시작했습니다. 원, 무슨 대단한 월드컵 경기라도 보듯 저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팽글팽글 돌아가는 숫자계기판을 뚫어지게 쳐다봤습니다.


두두두둥!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가 세 번이나 응원전화를 건 우리의 희정이팀이 이번 주 챔피언이 됐습니다. ‘말만한’ 처녀 희정이는 겅중겅중 뛰면서 좋아했습니다. 소감을 묻자 티 없이 맑은 눈에 눈물을 달고 희정이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할머니 금방 갈게!”라구요.


챔피언이 앵콜송을 부르며 이번 주 아침마당은 막을 내렸습니다. 사람을 실컷 울려놓고요! 이상하죠? 이렇게 울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면서 기운이 나는 것 같아요. 꼭 무슨 드링크제를 마시고 나면 잠깐 기운이 솟는 것처럼.


자 ! 벌써 다음 주 토요일이 기다려집니다. 오늘 1승을 거둔 희정이가 새로운 도전자를 맞아 어떤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줄지 지금부터 긴장이 되는 군요. 물론 다음 주에도 저는 기꺼이 시청자 심사위원 노릇을 할 계획입니다.^^

희정이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