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서울, 슬픈 시위대!
슬픈 시위대! 비 내리는 서울 종로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 초점 잃은 눈에서 흐르는 눈물과 온몸을 의지하고 있는 하얀 지팡이를 허공을 향해 휘두르는 그들의 분노를 지켜보면서 ‘살아있는 자의 슬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9일 오후 4시쯤의 일이다.
‘안마업(業)은 목숨!’ ‘우리는 볼 수 있으면 안마 같은 건 안 한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정부는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우리의 생계를 앗아간 헌재의 판결을 규탄한다’
그들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이런 피켓을 들고 비를 맞으며 종로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시위대 중에는 아주 앳된 소년들도 적지 않아 보는 이들의 가슴에 애잔함을 불러 일으켰다.
앞으로 ‘길고 긴 인생’을 살아야 할 저 ‘소년 장님’들에게 닥쳐올 ‘생계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들의 부모들이 언제까지나 보살펴 줄 수는 없을 터인데 이 험난한 세상에 저 소년들은 누구 손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나.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스치자, 사람 많은 종로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절로 눈물이 나왔다. 저 소년들에게 삶이 ‘견뎌나가야 하는 고통스런 과정’으로만 다가간다면 저들은 누구에게 눈물로 하소연해야 하나!
아주 오래 전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친구가 서울 삼양동에 있는 한빛 맹학교라는 곳에서 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취재 겸 그 친구를 찾아간 일이 있다.
그 친구는 ‘시각장애인 소년소녀들’의 감수성이 굉장히 예민하다고 말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친구가 새 옷을 입고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이들은 “선생님 예쁜 옷 입고 오셨죠. 멋있어요.” 라고 말해 친구를 놀래켰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친구는 “아 이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할 텐데” 라며 사명감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지금 그 학교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제 거리에서 마주친 ‘어린 시각장애인들’을 보면서 20여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어린 장애인들에게 꼭 ‘안마업’ 말고도 그들의 예리한 감수성을 살리면서도 생계의 방편으로 삼을 수 있는 ‘어떤 직업’ 교육이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관련 부처가 학계와 논의하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인간으로서 ‘볼 수 없다’는 가장 고통스러운 ‘천형(天刑)’을 안고 살아가야할 시각장애인들에게 지난달 25일 결정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청천 하늘의 날벼락’같은 것이었다.
헌재는 ‘시각장애인만 안마사를 할 수 있게 한 법률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결정 이후 시각장애인들은 서울 마포 대교에서 ‘투신’하는 시위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 여지껏 들어왔던 어떤 시위대의 소식보다도 충격적이면서 그 절박함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그런 시위였다.
시각장애인들에게서 ‘생업’을 빼앗아간다는 건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살지 말라’는 소리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헌재의 판결은 어디까지나 존중해야겠지만,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데 판결은 그렇게 나왔다할 지라도 저들의 절박한 삶에의 절규를 정부에서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시각장애인들이 ‘한강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며칠 전 신문에는 40대의 독신 시각장애인이 자신이 살고 있던 9층 아파트에서 투신,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이 실렸다. 그는 14년 전 유전성 질환으로 시력을 잃고 방황하다 2001년 뒤늦게 맹아학교에 입학해 침술과 안마를 배웠고, 2003년에는 안마수련원에 들어가 작년에 안마사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새로운 삶’에의 의지를 갖고 출장안마사로 일하면서 한 달에 번 수입은 고작 20여만 원. 13평짜리 아파트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했지만 그런대로 버텨왔다. 그러다가 헌법재판소의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 이후 주위사람들에게 ‘이제 시각장애인은 다 죽게 생겼다’는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와 그 중에서도 유관부서인 보건복지부에선 이런 ‘복지 사각지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만 했던 장애인들에게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정권 들어 쓸데없이 무슨 ‘과거사 진상규명’인지를 비롯해 우스꽝스럽지도 않은 온갖 위원회들을 만들고 국민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코미디 같은 정치현실엔 고소를 금할 수 없다. 그 돈으로 저들 장애인들의 ‘생계’를 도울 수 있는 장기적 대책을 마련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철없는 어린 학생들에게 ‘양극화 타령’이나 하러 실업고교를 찾아 돌아다니던 정동영이나 김한길 같은 열린당 지도부들의 천박한 ‘선동’에 대해선 국민이 이미 준열한 한 표로 ‘심판’을 내렸다. 권력자들도 이제야 ‘국민 무서운 걸’ 어렴풋이 알았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저렇게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비 내리는 서울 거리에서 피어린 절규를 쏟아내고 있는 ‘슬픈 시위대들’에게 정부가 무슨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았다는 소식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인 것 같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외국에서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사’이외에도 다양한 직업교육과 사회적 혜택을 주어 그들의 생존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해 준다고 한다.
‘평등 좋아하는’ 좌파 정권인 현 정권의 권력자들은 쓸데없는 ‘평등’을 찾아내려 하지 말고 제발 저렇게 ‘목숨 부지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이 사회의 그늘에 살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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